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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루(一日)

기자명 승한 스님

문학적 감각 탁월한 생철학적 관조

산사의 하루가 그림처럼 묘사
선사의 생명애가 물신 풍겨져
고단했던 내 행자시절 떠올려
‘하루하루에 살자’는 각오 중요

떠들썩한 계곡물에 산은 다시 조용하고
고요한 절집에 하루는 더욱 길다.
꿀을 캐느라 노란 벌들은 시끄럽고
집을 짓느라 자줏빛 제비들은 분주하다.
溪喧山更寂(계훤산갱적)
院靜日彌長(원정일미장)
採蜜黃蜂鬧(채밀황봉료)
營巢紫燕忙(영소자연망)
원감충지(圓鑑沖止, 1226∼1292)

산사의 하루가 그림같이 묘사됐다.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떠들썩해지자 산은 오히려 더욱 조용해진다. 그런 절집의 고요가 긴 하루를 더욱 길게 한다. 기막힌 반어법이자 대구법이다. 불현듯 나의 행자시절이 떠오른다. 새벽 2시50분부터 밤 10시까지, 절집의 하루는 정말 고되고 길다. 내일 오는 것이 끔찍하기만 하다. 하지만 최소 6개월은 버텨야 한다. 그래야 중 되는 교육 받으러 갈 자격이나마 생긴다. 그때까지 못 견디면 짐 싸야 한다. 큰스님과 대중들 점심공양 차려드리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무슨 잠이 그리 쏟아지는지, 골방에 처박혀 나도 몰래 코를 골다 벼락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뼈아픈 아픔은 따로 있었다. “너는 중 되기 틀렸는갑다. 일찌감치 포기해라.” 내가 잘못할 때마다 떨어지는 큰스님의 불호령이었다. 하루는 지긋하고, 내일은 끔찍하고, 그럴수록 번뇌망상의 에너지는 높아지고, 그 잡념과 갈등으로 ‘떠들썩’하게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꿀 캐’느라 잉잉거리는 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절망으로 잠들고, 그래도 기어코 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다음날 새벽 2시5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도량석을 돌고 대종을 치고.

그 고비의 순간에 네 가지 구호가 나를 살렸다. ‘하루하루에 살자’ ‘먼저 할 일을 먼저 하자’ ‘여유 있게 하자’ ‘단순하게 하자’. 긴 세월 전해오는 삶(생활)의 지혜였다. 어느 새벽, 눈 비비며 도량석을 돌고 대종을 치다 문득 떠오른 그 구호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치유와 구원으로 이끌어주었던 그 구호들.

‘하루하루에 살자’는 구호는 특히 그랬다. ‘하루’는 바로 지금 내 삶의 총량이고 끝이었다. 내 삶에 내일이 올지 안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은 다만 또 다른 오늘 ‘하루’일 뿐이었다. 나는 오늘 하루만 최선을 다해 살고, 오늘 하루의 삶에만 충실하면 되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 이루어진 퇴적물이 현재 내 삶의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자 그 지겹고 힘들던 행자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만 행자생활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하루가 길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내일이 오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내일은 단지 내가 또 감사하게 살아야 할 또 다른 하루일 뿐이었다. 새벽 2시50분부터 밤 10시까지, 눈 뜨면 시작이고 눈 감으면 끝이었다. 행자생활의 즐거움을 찾자 비로소 ‘떠들썩’하게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계곡물 소리가 떠들썩하면 떠들썩할수록 더욱 조용해지는 산사의 맛을 느꼈다.

하물며 도를 이룬 선사임에랴. 원감충지 선사는 어느 날 산문 안을 경행하다가 계곡물이 우렁차게 흘러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선사는 그것에 인간의 체온을 불어넣었다. ‘떠들썩하다’고. 티끌 하나에서도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는 선사의 불성과 탁월한 문학적 감각이 어우러진 생철학적 관조였다.

3행의 ‘꿀을 캐다’도 정말 멋들어진 문학적 감각이자 생철학적 관조이며, 선사의 생명애가 물신 풍겨지는 시구다. 이것은 또한 직역의 맛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떠들썩한’을 ‘요란한’, ‘시끄러운’ 등으로, 꿀을 ‘캐다’를 ‘따다’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인간미는커녕 생동성과 문학성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늘어진, 심심한 번역이다. 때문에 한시를 비롯한 외국문학을 우리말로 번역할 땐 반드시 직역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작품의 문학성과 예술성, 그리고 작가(시인)가 의도한 원래의 뜻과 맛이 그대로 전달된다.

샛길로 빠졌다. 이 시의 원래제목은 ‘한중잡영(閑中雜詠)’이라는 오언절구 중 한 수(首)다. 원감충지 선사가 읊은 ‘한가한 가운데 여러 가지를 읊다’는 시 중 한 작품이라는 말이다. 오늘 소개한 시는 그 중 한 수로 필자가 ‘하루’와 ‘一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꿀을 캐는’ 벌처럼, ‘분주하게 집을 짓는 제비’처럼, 단순하고 여유 있게 먼저 할 일을 먼저하고 살면 하루하루의 삶이 더욱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하지 않을까.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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