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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총림 송광사 율주·부산 관음사 회주 지현 스님

틱낫한 스님 강조한 참여불교 궁극적 지향은 나와 세상의 평화

틱낫한 스님은 전 세계인에게 이해와 사랑을 전한 선지식
불편한 몸으로 3시간 강연하는 것 보며 수행‧기도 힘 실감
우리가 수행하면 지금 여기에서 스님 법신과 만날 수 있어

지현 스님은 “스승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평화로운 세상과 ‘늘기쁜마을’이 이루고자 하는 정토는 한 길이다. 이 길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스승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실천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지현 스님은 “스승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평화로운 세상과 ‘늘기쁜마을’이 이루고자 하는 정토는 한 길이다. 이 길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스승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실천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스승님. 틱낫한 존자님. 한국의 제자 지현은 향 사르고 구 배 드리며 전별하는 예를 표합니다.

저희의 삶과 수행의 길에 이해와 사랑 그리고 평화와 행복의 씨앗을 심어주신 스승님의 열반 소식은 밝은 한낮에 갑자기 태양이 사라진 듯한 아득함입니다. 

저희는 스승님의 열반을 애도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 채 망연자실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때, 큰스님의 자비로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 스무리띠(smṛti) 사마타(samatha) 프라즈나(prajna)의 수행으로 사랑과 연민을 기르고 기쁨과 평정된 마음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고통스러운 우리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평화와 행복을 꽃피우라’고 타이르십니다.

스승님은 눈 없는 이에게 눈이 되어주시고 손발 없는 이에게 손발이 되어서 이해와 사랑을 전하신 선지식이셨습니다. 물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비가 되어 내려도 물은 죽지 않는 것처럼, 스승님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셨어도 스승님의 법신은 늘 저희의 마음속에서 빛이 되고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허공은 다함이 있을지라도 스승님의 은혜는 다할 수 없습니다. 저희의 마음속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가꾸고 꽃피워서 스승님의 서원을 만분의 일이라도 갚고자 하옵니다. 그리고 다시 거룩한 원력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실 때까지 정진하기를 서원합니다.

스승님께서는 세 차례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1995년, 2003년, 2013년입니다. 스승님께서 처음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저는 스승님을 법문으로만 접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어서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2003년 당시 스승님의 부산 강연회와 조계종 행자교육원에서 법문하시는 일정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 스승님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이때부터로 기억됩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은 저에게 있어서 수행의 전환점이 되었고 분명한 이정표와 생생한 경책이 되었습니다. 베트남으로 귀환하실 때 순례에 동참한 매 순간은 감동의 정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아주셨을 때 스승님을 영접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때 스승님께서는 부산 범어사에서 2시간 반 동안 법문을 하셨었지요. 사실 당시 스승님께서는 거의 탈진 상태이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수많은 대중 앞에서 인자하신 미소로 평소처럼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 날에는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1만 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강연하셨습니다. 당시 걸음도 잘 못 걸을 정도로 아픈 상태이셨습니다. 그러함에도 역시 조금도 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시며 3시간 가까이 강연을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뵈면서 수행의 힘과 기도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무엇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스승님과의 인연은 깊어졌습니다. 지난 2018년 7월에는 스승님의 제자이신 찬콩 스님께서 이끄시는 태국의 플럼빌리지에 방문하여 스승님을 뵈었습니다. 2019년 5월15일에는 미국, 유럽, 태국에서 온 일곱 분의 플럼빌리지 법사단께서 관음사를 찾아주셨습니다. 법사님들께서는 관음사 신도들에게 걷기 명상, 먹기 명상, 통합이완 명상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또 마음 나눔과 법문 등 관음사를 찾아오신 많은 분이 하루 동안 플럼빌리지 수행을 배우고 실천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플럼빌리지, 그곳은 사원이면서 명상 수행 센터이자 세계적인 평화 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는 결코 불교 색채를 강조하거나 개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국적, 인종, 종교, 성별의 차이를 초월하여 사람들이 모입니다. 스승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수행공동체를 운영하시는 동시에 불문(佛門)에 출가한 수행자의 일원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이 전하셨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은 오롯이 불교의 ‘계(戒), 정(正), 혜(慧)’ 삼학(三學)에 기초한 법음(法音)이었습니다. 플럼빌리지의 ‘다섯 가지 마음챙김 수행(The Five Mindfulness Tranings)’에는 스승님의 가르침이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담겨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경, 진정한 행복, 진정한 사랑, 자애로운 말, 그리고 경청, 자양과 치유. 오늘의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된 불교의 오계(五戒)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관음사 대중에게 스승님은 ‘우리 스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친숙한 분이십니다. 관음사 대중은 항상 법회와 신행, 전법과 복지 전반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관음사는 플럼빌리지의 수행법에 기초하여 ‘행복한 삶을 위한 예경명상’이라는 기도문을 제작해 신행의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관음사 신도라면 누구든 국내에서 발행된 틱낫한 스님의 모든 저서를 섭렵했습니다. 관음사 교사불자회 자림회는 스승님의 책을 교재로 공부했습니다. 또 2000년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자비명상법회’는 스승님의 책을 읽고 명상하며 오랜 기간 공부를 이어 온 단체입니다. 이 법회는 플럼빌리지의 공동체 운영방식을 따르며 누구에게나 열린 법석을 지향합니다. 

저는 관음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부터 신도님께 명상 수행을 강조해 왔습니다. 실제로 모든 법회를 명상과 연계시켜왔습니다. 어린이 법회에서도 명상은 필수입니다. 심지어 관음사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 산하 다정한어린이집 원생들도 명상할 수 있습니다. 3~5분 정도의 명상이지만 그 효과의 탁월성은 30년이 넘는 운영 경험으로 인증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플럼빌리지 명상 노래는 어린이 명상의 길잡이로 삼기에 더없이 좋은 교재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명상 수행과 평화운동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주창자이시기도 합니다. 스님의 참여불교는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법(緣起法)에 근거합니다. 스승님께 불교는 이미 참여하고 있는 불교입니다. 세상과 관계 맺지 않고 세상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미 불교가 아니라고 당부해 주셨습니다. 참여불교의 궁극적 지향은 나와 세상의 평화입니다.

스승님의 참여불교와 관음사의 사회복지사업은 사상적 배경이나 목적에서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승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평화로운 세상과 ‘늘기쁜마을’이 이루고자 하는 정토(淨土)는 한 길입니다. 이 길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스승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실천임을 믿습니다.

수백 권의 저서와 강연 활동으로 세계인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신 스승님. 2018년 고국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하신 스승님께서는 처음 출가하신 바로 그 도량에 머무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지도하셨습니다. 저는 한 달 전 즈음 스승님의 제자를 통해 스승님과 영상통화를 하였습니다. 눈빛으로 마음으로 전하신 스승님의 가르침을 가슴속 깊이 새깁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글로 옮긴 책 가운데 ‘기도의 힘’을 펼칩니다. 스승님께서는 명상 수행의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명상은 불교 수행의 골수입니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참모습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우리를 불안, 근심, 우울에서 해방시켜 주고, 분명한 앎과 자비를 선물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 우리 모두에게 자유, 평화, 기쁨을 안겨 줍니다.” 

다시 스승님의 책을 펼칩니다. ‘지금 이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이 책에는 마치 지금을 위해 하신 말씀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서 탑을 쌓겠다는 제자가 있다. 그 친구들이 “여기 사랑하는 스승 잠들다”라는 묘비를 세우고 싶어 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절 땅을 낭비하지 말게. 나를 좁은 구덩이에 넣지 말게! 재를 뿌려서 나무들이 자라도록 돕는 게 훨씬 낫겠지. 그래도 탑을 세우고 싶다면 묘비명에 “나는 여기 안에 있지 않다”라고 쓸 수 있다. 두 번째 묘비명을 “나는 저기 밖에도 있지 않다”라고, 그래도 여전히 말을 듣지 않으면 “당신들이 숨 쉬고 걷는 데서 나를 볼 수 있으리라” 이렇게 쓸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는 늘 내 주변에서 연속되는 나를 보는 수련을 해 왔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육신이 분해되기야 하겠지만 그것이 나의 죽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언제까지나.’

태양이 온 누리를 비추듯이 공기가 모든 곳을 감싸듯이 스승님의 법신도 그렇게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챙김 수행을 하면 지금 여기에서 스승님의 법신과 만날 수 있고 부처님의 법신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삼가 큰스님의 왕생을 기원합니다. 걸음마다 맑은바람 생각마다 연화정토 나무아미타불.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1월28일 조계총림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에서 봉행된 ‘틱낫한 스님 49재 초재법회’에서 지현 스님이 조사 형식으로 설한 추모법문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619호 / 2022년 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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