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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가 앗아간 행복, 되찾을 수 있을까요”

  • 상생
  • 입력 2022.01.28 18:59
  • 수정 2022.01.28 19:39
  • 호수 1619
  • 댓글 0

몽골 출신 아리오나씨 퇴근길 교통사고로 목·허리 크게 다쳐
통역사 활동 등 이주민 지원 자처…사고 후 매일 끔찍한 고통

몽골 출신 아리오나(44)씨는 사고가 났던 날을 잊을 수 없다. 플라스틱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마친 뒤 고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아리오나씨의 차를 뒤에 달려오던 트럭이 세게 들이박은 것이다. 졸음운전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는 이 사고로 목과 허리를 크게 다쳤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고, 검사 결과 목과 허리 디스크가 심하게 손상됐다. 머리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면서 귀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교통사고이기에 조금 더 몸 상태를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집에서 진통제를 먹으며 고통을 견뎠다. 그러나 먹을 때 뿐이었다. 허리를 타고 다리까지 참을 수 없는 통증이 계속됐고, 결국 아리오나씨는 8월 수술대 위에 올라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진통이 계속됐다. 5개월이 지난 지금도 걷는 것은 물론 앉아있기도 버거울 정도로 허리와 다리, 팔 저림과 통증이 심하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수도 없다. 이주민센터에서 통역을 돕고, 아이들을 돌보던 그녀의 평범한 일상은 사고 후 지옥으로 변했다.

아리오나씨가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17년. 그녀는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기억했다.

“4년 동안 만나던 남자친구가 유부남이었어요. 출산을 앞두고 그 사실을 알았죠. 긴 시간 동안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에 분노가 차올랐지만 차마 아이를 지울 수 없었어요. 친정엄마가 ‘아이는 내가 돌볼 테니 너의 인생을 살라’고 하셨어요. 그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다시 출발하겠다고요.”

그렇게 몽골에 아이를 두고 2006년 홀로 한국땅을 밟았다. 아이가 한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그녀는 순대공장에 취업했다. 몸은 고됐지만 꿈이 있었기에 꾹 참고 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몽골에 두고 온 아이가 눈에 밟혔다. 사무치는 그리움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외출도, 휴식도 반납한 채 공장일에만 매달렸다.

부쩍 수척해진 그녀를 본 지인은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며 소개팅을 주선했다. 그때 14살 연상인 현재 남편을 만나게 됐다. 두 번 다시 남자는 만나지 않을 거라는 아리오나씨의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남편은 첫 만남에서부터 한없이 다정했다. 그러나 몽골에 아이가 있었고, 꿈이 있었기에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남편은 아이도 한국에 데려와 키우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지원해주겠다고, 좋은 남편이 되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변함이 없었다. 몽골에서 아이도 데려와 친아들처럼 키웠고, 한국말이 서툰 아리오나씨를 배려해줬다. 매사에 성실했기에 벌이는 적어도 행복했다. 그들의 사랑은 쌍둥이 아들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하루하루가 기쁨의 연속이었다.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이 법률 문제 등으로 한국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본 그녀는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이주민센터에서 봉사했고, 김포경찰서에서 통역사로도 활동했다. 빠듯한 경제사정으로 밥 한끼 먹기 어려운 몽골인들을 위해 몽골 음식점도 차렸다. 이렇게 그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몽골 이주노동자들의 울타리가 돼 줬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몽골인들의 사랑방이던 식당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마땅한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식당을 닫으면서 월세와 생활비 부담이 커졌다. 결국 아리오나씨는 인천에 있는 한 플라스틱 공장에 취업했다. 매일 12시간씩 근무하고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힘든 상황에 처한 몽골인들을 외면하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는 몽골인들을 도왔다. 이렇게 1년 6개월이 흘렀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교통사고가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멈췄다. 그녀에게 남은 건 만신창이가 된 몸과 병원비 고지서뿐이었다. 보험사 측에서는 아리오나씨가 평소 디스크를 앓고 있었기에 트럭운전자 과실이 아니라며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았다. 1000만원이 넘는 병원비는 고스란히 그녀가 떠안아야만 했다.

“제 잘못도 아닌데 왜 이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외국인이라서 한국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일까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눈물만 나옵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19호 / 2022년 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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