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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무등

기자명 성원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2.02.07 11:30
  • 수정 2022.02.09 14:53
  • 호수 1619
  • 댓글 27

‘시법평등 무유고하(是法平等 無有高下)–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젊은 한때, 불교에 귀의하고 출가하여 강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어느 날 ‘금강경’을 음독(音讀)하다가 제23장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에 이르러 이 경구(經句)를 접하고 얼마나 놀랐으며, 얼마나 두려웠고, 얼마나 환희로웠던지 이 문구를 주제로 글을 쓰려니 지금도 그 설렘이 울컥 밀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 차별 없는 평등하고 깨끗한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시절과 위치에 따라 그 평등의 깊이는 다를지 몰라도 평등의 가치를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 그랬었다. 당시 생각한 평등의 가치는 지금의 생각과 다르겠지만 자신의 주변과 사회와 역사를 보는 모든 관점에서 평등은 가장 소중한 판단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

출가 후 승가의 일상을 쫓으며 잠시 잊고 있었던 평등의 관점을 부처님의 가르침 그 가운데에서 다시 발견하였으니 실로 경이로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형이상학적 논조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구절을 접하고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허공을 걷다가 다시 발이 땅에 닿은 듯 기뻤다. 혼자 생각하기를 2500년 전 젊은 고타마도 우리와 같은 문제를 고민하였고, 그 답을 명확히 찾아 경전에 기록하여 전해주었다는 사실을 새로 인식했을 때 정말 수많은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게 된 것만 같았다.

출가 전 광주의 무등산(無等山) 이름이 너무 좋아 몇몇 친구들과 일부러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무등(無等)–등급이 없다는 그 말뜻이 얼마나 황홀했던지 일정 내내 친구들과 그 주제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광주 항쟁으로 어수선했는데 일행 중 한 친구가 “광주 사람들은 무등산 정기를 받아 평등한 세상을 이루고자 꿈꾸고 행동하고, 대구 사람들은 팔공산(八公山) 정기를 받아 모두 더 높은 공(公)의 자리에 오른다”고 설파했는데 모두 “그런 것도 같다”며 긍정했던 기억이 난다.

임인년 새해 벽두부터 수많은 스님이 모순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목탁을 울리고 나섰다. 여러 가지 시안 중에 차별이라는 이름의 불평등에 대한 항거를 분명하게 천명하였다. 먼 옛적 석가세존께서 분명 평등한 세상의 가치를 설파하셨고, 지고지순한 경지는 차별이 없음을 분명히 하셨다. 석가세존을 따르고 믿으며 살아가는 불자들과 스님들은 마땅히 차별이라는 이름의 불평등에 항거해야 할 것이다. 온갖 차별과 불평등으로 점철되어 불국정토가 완성되지 못한 현실의 세상은 우리들을 늘 아프게 하고 있다. 차별에 대항한다는 것은 불자에게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일일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렇듯 고귀한 사상을 가진 불교가 어떻게 하여 우리 사회에 그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사상을 가르쳐 실현시키지 못하고 이제 와서 그 차별받는 자가 되어 억울한 듯이 호소하는 모습으로 전락했는가도 더 깊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일찍이 발현시키지 못한다면 그 보물을 잃고 나서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숨겨진 듯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소중한 불교의 가치들을 찾아내어 모든 중생을 두루 이익이 있게 하는 적극적인 실천 계(戒)인 요익중생계(饒益衆生戒)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임인년 새해에는 차별의 억울함에 저항하는 불교가 아니라 온 세상에 붓다의 평등사상을 널리 전하고 실현해가는 불교의 모습으로 한 해를 살았으면 좋겠다.

너와 나 사이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는 부처님 세상을 꿈꾸며, 우리나라가 진정 무등(無等)하여 평등(平等)한 그날까지 더욱더 지혜를 모으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19호 / 2022년 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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