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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중한담(山中閑談)

기자명 김태형

어떤 것도 ‘그저’ 이뤄진 것은 없다

새 소리로 깨는 산중 겨울 아침
산과 숲 무대 삼아 나를 위로해
계곡 아래 겨울 잠자는 물고기
살아있는 조계산 진짜 터줏대감

우화각 아래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 보조국사와 인연이 있는 물고기들이다. 종종 점심나절 먹이를 주면 이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큰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우화각 아래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 보조국사와 인연이 있는 물고기들이다. 종종 점심나절 먹이를 주면 이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큰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산사에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산다. 물론 신도들과 등산객, 관람객들도 있지만 365일 산중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새들은 가장 흔하게 보고 함께 하는 생명들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에는 특정한 개체들만 자주 만나지만 그들과 함께 아침을 연다는 것은 행운이며 행복 그 자체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산중의 새들은 아마도 천상에서 인간 세상을 위로하고자 내려온 악사(樂士)들 혹은 가수, 시인들이 아니었을까. 계절마다 다양한 새들이 악사로 등장해 여러 음악을 들려주어 때로 적막할 것 같은 산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아침이면 수많은 새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대합창을 하고, 때로는 홀로 휘파람을 불며 적막한 어둠속에 애잔함을 드리우기도 한다. 이런 새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맛보기도 한다.

산과 숲이라는 무대에 다양한 새들이 출연하여 대합창과 독창, 중창으로 노래하면 나는 그저 청중이 되어 편안하게 즐기면 그만이다.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전해주는 새들에게 뭔가 보답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먹다 남은 빵과 과자부스러기 등을 특정한 곳에 놓기도 한다. 출연료로는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도 들어 조금은 미안하다.

지금은 꽁꽁 얼어 두터운 얼음장이 가득한 우화각 아래 계곡에는 산중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고기들이 산다. 지금은 겨울잠에 들어 계곡 축대 틈이나 바위 아래서 머물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점심나절이면 종종 우화각 난간에 앉아 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점심공양으로 나온 떡이나 국수, 혹은 빵 등을 호주머니에 넣어 가면 준비 끝.

우화각 아래 물고기들은 어쩌면 송광사 창건 이전부터 아니 조계산이 생긴 이후로 이곳에 살고 있는 진짜 터줏대감들이다.

‘조계산 송광사지’에도 이들 물고기 얘기가 전한다. 바로 ‘토어의 전설(吐魚傳說)’이다.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고자 이곳에 왔을 때 먼저 선점해 있던 적도(賊徒)들이 국사를 시험하고자 살아 있는 물고기를 공양으로 드렸다. 국사가 태연히 이 물고기들을 삼키자 적도들은 국사가 불살생의 계율을 어겼다며 비방하고 박해를 가하려 했다. 그러자 국사는 “심공성해(心空性海)에는 죽이고 살림(殺活)이 자재하니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라고 하고는 바로 뱃속의 물고기들을 물속에 게워냈다. 그러자 물고기들이 모두 살아나 헤엄쳤다고 한다. 지금의 물고기들이 바로 보조국사가 삼켰다가 게워낸 고기들의 후손들이라 했다. 또한 이들 물고기들을 함부로 잡아 먹거나 죽이면 국사의 신통력으로 재앙이 뒤따른다는 경고까지 적혀 있다.

간혹 우화각에 앉아 먹이를 주다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뜰채로 떠서 매운탕 끓여 먹으면 맛있겠다고….

요즘 사찰의 문화재관람료(입장료) 문제로 말들이 많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고 산사와 그 주변의 환경들은 거저 오늘에 이어온 것이 아니다. 절집에서 잘 보존하고 지켜온 것을 어느 관광객들의 말처럼 홀라당 건져서 매운탕 끓여 먹으려 하는 심보들하고는…. 절집, 특히 산사의 모든 것은 어느 하나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스님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것들이다.

김태형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jprj44@hanmail.net

[1619호 / 2022년 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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