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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녁 식탁에 오른 것들 - 이승하

기자명 동명 스님

모든 생명체는 내 생명의 은인

먹는 것 중 온전한 내 것은 없어 
여러 희생 모여 차려진 식탁 보며
목숨 값에 합당한 삶 사는지 반성
뭇생명에 늘 참회하고 감사해야

손을 씻고 모두 식탁에 앉는다
반주(飯酒)가 있고 꽃병이 있고
정겨운 대화가 있고 은근한 분위기가 있다
식욕을 자극하는, 눈앞에 펼쳐진 성찬

바짝 익혀서 나온 것들
어디서 달아나다 잡혔는지
너무나 고소하여 목구멍을 타고
슬슬 잘도 넘어간다

바싹 튀겨져 나온 것들
어디서 놀다가 잡혔는지
지극히 은밀하게 혀에 부드럽게
착착 감기는 맛이 있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이런 고소함과 향기로움을 제공했던가
내 일용할 양식이 된 수많은
싱싱하게 살아 있던, 펄펄 날뛰던 것들

입천장에 악착같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 산낙지를 먹으며 나는
사후의 내 몸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보시할 수 있을까

(이승하 시집, ‘나무 앞에서의 기도’, ㈜케이엠, 2018)
 

우리가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먹는 것 중에 온전히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기는 남의 살이며, 채소는 남의 몸이며, 과일은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한 야생동물의 먹이이다.

식탁에 놓인 먹음직스런 음식물과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기가 막힐 노릇일 수 있다. 물속에서 평화롭게 놀던 물고기가 그물에 갇혀 물 밖으로 끌려나오더니 긴 여행 끝에 우리집 식탁에 왔다. 순하디 순한 소가 어느 날 도살장에 끌려갔다가 토막 살해되어 부위별로 옮겨졌다가 마침내 우리집 식탁에 왔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재난이다.

육식동물들이 남의 살을 먹어야 하듯이 인간도 생존을 위해 육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육식을 비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푸짐한 저녁 식탁을 보면서 시인은 자신의 삶이 이들 동물들의 목숨 값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해본다.

바싹 익혀서 나온 고기를 보면서 시인은 “어디서 달아나다 잡혔는지/ 너무나 고소하여 목구멍을 타고/ 슬슬 잘도 넘어간다”고, 바싹 튀겨져 나온 물고기를 보면서 “어디서 놀다가 잡혔는지/ 지극히 은밀하게 혀에 부드럽게 착착 감기는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분을 돋아줄 술이 있고, 꽃병이 있고, 은근한 분위기가 있어, 정겹게 대화하기에 손색이 없는 식탁에서 시인은 스스로 생각해본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이런 고소함과 향기로움을 제공했던가”

고려말 나옹화상이 이렇게 노래했다. “부디 남의 소중한 것 탐하지 말라(勤汝莫貪他重物), 나중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하리니(它年必有劫還時).”-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 ‘모기(蚊子)’에서

많은 동물들이 남의 살을 먹고 살듯이 우리들의 육식도 필요악일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입천장에 달라붙어 생존을 쉽사리 놓지 않는 산낙지를 씹으며 사후의 자신의 몸을 생각해본다.

“무엇을 위하여 [내 몸을] 보시할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동물만이 아니다. 우리는 식물들도 생존 본능과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음을 안다. 다만 식물은 동물처럼 살려고 몸부림을 치지 않고, 고통을 느끼는 통점(痛點)은 없거나 약한 것 같다. 채식만 함으로써 남의 고통을 덜 유발하는 태도가 생긴 이유다.

생존하는 모든 이는 이렇게 남의 것을 먹고 산다. 생존한다는 것은 남의 것을 먹고 산다는 것과 동의어이므로 지나치게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시인처럼 “나는 남을 위하여 무엇을 보시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은 필요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나의 경쟁자가 아니라 내 생명의 은인이다. 그러므로 뭇 생명체의 은혜로 살아가는 동안 늘 참회하고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하리라.

“나의 생존을 위해 뭇 생명을 희생했음을 참회합니다. 나의 생존을 위해 희생된 모든 생명체에게 감사합니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19호 / 2022년 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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