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해 여여정사 주지·가야불교연구소장 도명 스님

역사인식 바로 갖춰야 일본의 역사침탈에서 국가 수호 가능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등재 추진은 과거 침략사 호도가 본질
올바른 역사인식은 선택 아닌 필수…위정자 뽑을 때 고려사항
불교계, 호국불교 참뜻 바로 새겨서 가야불교 역사 지켜내야

도명 스님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질환이 발병하기 전, 우리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명 스님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질환이 발병하기 전, 우리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의 사도(佐渡)광산에 대한 유네스코 등재 문제로 한일 간의 외교적 갈등이 재점화 되고 있습니다. 일본이 자국의 광산을 역사적인 보존 가치가 있어 유네스코에 등재한다는데 왜 우리나라와 외교적 분쟁을 일으키는가 하고 궁금해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안은 외부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 본질은 역사 왜곡을 통해 일본이 과거 침략의 역사를 희석하고 새로운 제국주의의 부활을 노린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문제가 역사전쟁(歷史戰爭)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도광산은 1601년 일본 에도막부가 금광으로 개발한 이래 폐광된 1989년까지 400여년간 금, 은 등의 광물을 채굴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은 공개적으로는 광산의 갱도와 채굴, 선광, 제련시설 등의 외형적 유물만이 아니라 광산의 운영과 생산기술 시스템의 변천 과정도 중요한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다며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광산이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보여주는 현장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한국과 중국 국민을 강제 동원해 노동을 착취하고 고통을 주었던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한 진실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는 몇 가지 엄격한 심사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역사적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본은 역사적 진실을 감춘 채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배후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침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독도 영유권 문제, 위안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한반도 남쪽이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식의 임나일본부를 주장하는 교과서 왜곡문제도 꼽을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그들은 우리 역사와 강역을 축소하는 ‘반도 사관’을 만들어 대륙에 있었던 한사군을 한반도에 몰아넣었고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없애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이들의 역사 침탈은 단순한 궤변이나 허세가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바탕으로 하며 냉정한 분석과 판단에서 나오는 현실적 문제이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사실상 일본은 한반도의 고대국가들이 일본 열도에 최초로 문명을 전파한 상국(上國)이며 도래인들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문명을 모를 때는 분명 도래인이나 조선통신사 같은 문명 전파자들이 소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미 스스로 일본이라는 독자적인 문화와 막강한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을 가진 대국으로 성장한 입장에서는 과거의 역사가 자신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서기 663년 백강 전투에서 백제와 야마토 왜의 연합군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서 완전히 패해 눈물을 머금고 일본 열도에 웅거하게 됩니다. 이후 그들이 부활하게 된 것은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조총으로 군대를 무장하고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시기입니다. 임진왜란의 명분은 명을 치기 위한 정명가도(征明假道)라고 했지만, 그 배후에는 임나(任那)의 고토(古土) 회복이라는 국가적 정복사업이 있었습니다. 

임란 후 막부는 조선을 다시 정복하고자 전쟁의 패배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기록한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을 몰래 입수하여 연구하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한 하나는 승병과 의병이었습니다. 일본도 도요토미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봉건 군주들이 사무라이를 앞세워 100여년간 치열한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전쟁은 다이묘(봉건 영주) 휘하 정규군 사이의 전투였습니다. 스님이나 징집당하지 않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전투에 참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 입장에서는 조선에서, 특히 살생을 제일의 계율로 지키는 스님들이 전투에 나서고 글 읽는 선비나 농민 등 일반 백성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거는 행위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이러한 변수들이 전투에 끼친 영향은 실로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또 하나의 원인은 국조(國祖) 단군이었습니다. 한민족은 평소에 서로 싸우다가도 국난이 닥치면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단일민족 사상으로 똘똘 뭉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일합방 후 그들은 본격적으로 단군 지우기에 나섰습니다.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조선사 편수회’를 통해 관제 식민 사학자를 이용해서 국조 단군을 지우고 우리 고대사 전체를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한민족이 역사를 통해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희석하기 위해 수많은 고대사 서적을 불태우고 일부는 일본으로 반출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학교부터 중등, 고등교육 과정에 단군을 신화로 치부하는 세뇌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생각한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의 전략이 성공했음을 새삼 현실이 증명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한국불교의 정체성 중의 하나는 호국불교입니다. 이는 전 세계 불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특성입니다. 국난을 당했을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을 어겨가면서까지 이 땅을 지키고자 했던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와 이름 모를 수많은 스님들의 깊은 고뇌를 우리는 모두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선조스님들에게 있어서 영토를 지킨다는 것은 땅만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현재 불거지고 있는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 논란도 다른 나라 이야기로 흘려들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의 속어 중에 ‘똥 싼 놈이 큰소리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는커녕 오히려 갑질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광산의 피해자는 징병에 끌려간 이 땅의 백성이지 일본 국민이 아닙니다. 일본은 우리 정부가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할 것에 대비해 TF팀까지 구성하겠다고 합니다. 자기의 허물을 덮기 위해 먼저 선수 치는 뻔뻔한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소납의 속가 부친께서는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일본 광산으로 징용되어야 했습니다. 부친이 독자인지라 할머니께서는 징용 통지가 날아오자 3개월간 산속에 숨기기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끝내 발각되어 밀양형무소에서 형을 살고 결국 광산으로 징용되셨다고 합니다. 여쭤보지 않아 그 광산이 어디인지는 모르나 부친께서는 3년간 갱에서 채탄 작업을 하시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귀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탄광에서 마신 탄가루로 인해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해수천식을 달고 계셨습니다. 아침마다 숨이 넘어가는 기침 소리와 함께 반 종지씩 뱉어내는 가래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힘없는 나라 백성의 설움을 부친의 시련을 통하여 절절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이 난 뒤에 잘 고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병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나라 잃고 애국하기보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최고의 의학은 예방이듯 역사 문제도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는 질환이 발병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지금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 시즌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사람은 첫째 우리의 역사를 알고 뚜렷한 역사관을 가진 이여야 하며, 둘째 우리의 영토를 수호하고 자신의 목숨을 거는 정신으로 국민을 지키는 이라야 한다고 봅니다.

위정자가 자국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우리는 해방이 되었어도 일제의 식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안타까운 과거를 가진 채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를 소환하여 매국하고 이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지금 벌주자는 게 아닙니다. 지나간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실수는 되풀이됩니다. “한번 속는 것은 속이는 사람의 잘못이나, 두 번 속는 것은 속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합니다. 과거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나라가 어려워지면 세태에 편승해 매국하는 이들이 또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바로세우기 속에는 국내 주류 사학자들이 신화로만 치부해버리는 ‘가야불교’를 비롯한 불교역사 바로세우기도 포함됩니다. 가야불교연구소는 그동안 지역의 뜻 있는 여러 스님 그리고 전문 분야의 재가불자님들과 함께 매월 가야사를 연구하는 정기세미나를 지속해 왔습니다. 연구소는 고대 해상불교의 도래와 가야의 시초인 가락국의 건국이 가야사의 전면에 당당하게 자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주류 역사학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역사서에만 의존하고 있는지가 여실하게 드러나 더욱 비통한 심정입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또 이를 계기로 우리 역사서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바로세우기’에 전 국민적 관심이 절실합니다. 

국민과 위정자가 깨어 있는 역사의식과 중도사관(中道史觀)으로 역사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중일의 보이지 않는 역사전쟁에서 결코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강의는 2월11일 김해 여여정사에서 개최된 ‘가야불교연구소 월례 정기 세미나’에서 소장 도명 스님이 ‘사도광산 논란과 역사전쟁’을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20호 / 2022년 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