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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 최희정(정토심·54) - 상

기자명 법보

소심한 성격과 척추 측만증으로 부모님에겐 언제나 아픈 손가락
삼사순례로 우연히 들린 사찰서
법당 문턱 넘자마자 눈물 쏟아져

정토심·54
정토심·54

나와 부처님의 인연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불심이 깊으셨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하셨다. 1년에 몇 번 예쁘고 깔끔한 옷차림으로 외출을 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중 하루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어린 시절엔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를 다녔다. 그곳에 가면 군것질거리를 주기에 나는 간식을 먹는 즐거움에 동네 천막교회에 가 앉아있다가 몇 번이나 어머니에게 야단 맞으며 끌려 나오곤 했다.

불교와의 인연을 정식으로 맺은 건 20대에 어머니가 정토사라는 작은 암자로 나를 데리고 가신 것이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법당에 가서 절하는 법을 가르쳐 줬고 업장소멸을 위해 “지장보살님”을 간절히 부르라 했다.

사실 부모님께 나는 커다란 짐이자 가슴에 맺힌 돌이었다. 태어날 때도 약하게 태어났고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에, 둔하기 짝이 없었다. 친구들과 사귐도 원만하지 못했다. 외부활동을 하기보다는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밤 9시가 넘으면 겁이 나 바깥에 나가질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척추 측만증으로 척추가 굽게 됐다. 지금은 이것에 대한 정보가 많아 예방과 치료가 어렵지 않지만, 그 시절엔 정보가 없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년 뒤 병원에 갔을 땐 교정시기가 늦어 교정이 어렵고 수술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결과조차 장담할 수없다 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기에 부모님은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내게 “그냥 살자. 곱추도 사는데 이 정도 몸으로 못 살겠나.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괜찮아요.”

그렇게 나는 몸이 휘어진 채 살아왔다. 그런 자식이니 두 분 가슴에 내가 얼마나 아픈 자식이었을까.

어머니는 사찰에서도 알아주는 열성불자였다. 덕분에 주지스님도 나를 “○보살의 딸”로 알고 계셨다. 

어느 날 스님께서 내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불보살님은 자비로우시기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전생에 지은 업이 소멸하고 원래 받을 고통보다 적게 받을 것이고 항상 보살펴 주실 것이니 잊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라.”

출가해 스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신체적 조건이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 것 같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대 중반 이웃집 아주머니 중매로 한 사람을 알게 됐다. 내 조건이 평범하지 않음에도 개의치 않고 받아들여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됐다. 하지만 결혼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서로가 너무나 아프고 힘든 세월을 지내다 6년 만에 헤어지게 되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돌아온 내게 친정어머니는 현대중공업 협력 회사를 소개해 줬다. 아이들만은 힘든 삶을 살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과 절에 더 자주 갔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삼사순례에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은 순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법당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합장을 하며 절하는 모습에 함께 다니던 불자분들이 “아이고 착하다. 예쁘다”라고 하시며 아이들을 칭찬해주었다. 울산 정토사 삼사순례 덕분에 우리나라 사찰들을 참 많이도 다녔다. 

그때까지 내 서원은 하나였다. ‘금생은 이미 늦었으니 이렇게 살다 다음 생에 동진 출가해서 꼭 수행자가 되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다 1박2일로 가게 된 삼사순례에서 강원도 건봉사를 들르게 됐다. 때마침 순수정토 법문을 하시는 정전 스님의 아미타부처님에 관한 법문과 불력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아미타 부처님 육자명호를 부르면 아미타 부처님께서 구제해 주신다”는 스님의 법문은 당시 내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귓등으로 스쳐 들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다음 달 삼사순례에서 진도 용장사를 가게 됐다. 그런데 법당 문턱을 한 발 넘자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의도하지 않았기에 당황스러웠다. 저절로 절을 하게 됐다.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다른 분들이 쳐다보기도 했다. 법당에서 나와 종무소를 가니 스님이 계셨다. 스님께 나는 “어째서 법당문을 넘어서니 눈물이 나오느냐”고 여쭈었다. 

[1620호 / 2022년 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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