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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은 기독교 이전에 불교용어

  • 기자칼럼
  • 입력 2022.02.24 11:00
  • 수정 2022.02.24 11:03
  • 호수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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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계종에서 학인스님들을 위한 불교교재 제작에 참여했던 분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스님들이 공부하게 될 책이기에 자신이 담당한 부분을 집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말과 함께 몇 가지 아쉬움을 꼽았는데 그 중 하나가 ‘영성(靈性)’이었다. 영성은 근래 사람들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데 있어 사용되는 중요한 개념으로 종교계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나 의학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스님들이 종교의 보편적인 현상과 불교적 특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영성 개념을 적극 활용해야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영성이 기독교적인 용어라는 몇몇 분들의 반발에 부딪혀 교재에 반영되지 못했고 그는 이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영성은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잘 사용되지 않지만 경전이나 어록 등 과거의 기록을 찾아보면 불성, 자성, 법성 등과 같은 의미로 통용됐음을 알 수 있다. ‘대보적경(大寶積經)’에는 “여래께서 깨끗한 천안으로 관찰하시니, 일체의 무량한 불토에 모두가 ‘영성’을 가지고 있음이라”고 기록돼있다. 여기서 영성은 불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대보적경’은 당나라 시대 인도 스님 보리류지(菩提流支)가 706~713년 대승불교의 경전을 한데 모아 번역,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도 마음수행에 관해 저술한 ‘수심결(修心訣)’에서 ‘이렇게 모든 현상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 자리에 신령스런 앎(영지, 靈知)이 어둡지 않다. 이렇게 텅 비어 고요하고(공적, 空寂) 신령스런 앎의 마음이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라고 설한다. 보조국사에 따르면 본래면목의 영성은 고요하며 선정이다. 그리고 신령스러운 앎은 지혜와 같다. 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장 인경 스님은 2011년에 발표한 논문 ‘영성에 기반한 명상상담 모형탐색-보조국사의 수심결을 중심으로’에서 “보조국사의 정혜결사는 새의 양 날개처럼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음을 강조하는데, 선정과 지혜는 자성, 곧 영성에 근거한다”며 “정혜란 바로 공적영지(空寂靈知)이고, 이것이 바로 영성”이라고 설명했다.

‘불교대사전’에서도 이와 관련된 숱한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신묘부사의하여 인지를 갖고서는 헤아릴 수 없는 일 ‘영묘(靈妙)’, 영험이 신효한 부처님 ‘영불(靈佛)’, 중생이 본래 지닌 불성과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가 다르지 않다는 ‘영각불이(靈覺不二)’ 등 수없이 많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강설했다는 영취산(靈鷲山)도 신묘한 산이다. 상기 나열한 예시의 공통점은 ‘영’이 ‘신묘한’ 내지는 ‘불가사의한’으로 번역됐다는 점이다.

심리학계도 영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초월심리학으로도 불리는 영성심리학은 심리학의 제4세력으로 불리며 196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기본 심리학 중 제3세력인 인본주의를 창시한 매슬로가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인본주의가 영적이고 신비한 경험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점을 타파하기 위해 영성심리학을 제창했다. 현재 영성을 중시하는 심리학자들은 불교의 전통수행법에서 파생된 명상을 활용해 상담에 적용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는 영성의 의미를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모든 자녀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성품’으로 규정짓는다. 에베소서 3장16절에는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세례를 받아 유일신의 성품이 내재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렇듯 기독교와 불교가 바라보는 ‘영성’에 대한 관점은 다르다. 불교는 ‘본래성품’이지만 이웃종교는 ‘유일신의 성품’으로 해석한다.

윤태훈 기자
윤태훈 기자

이웃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는 이유로 불교 고유의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만약 이러한 이유로 사용을 꺼려한다면 불교 스스로의 설자리만 축소시키는 셈이다. 이미 ‘장로’ ‘자비’ 등 차용당한 사례는 수없이 많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미래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다. 불교는 지금이라도 고유의 단어들을 지키고 사용하는 데 주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 길이 불교의 정체성을 지키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발판이 된다. ‘영성’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윤태훈 기자 yth92@beopbo.com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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