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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골절상으로 혼수상태 빠진 가장의 눈물겨운 사투

  • 상생
  • 입력 2022.02.25 20:46
  • 수정 2022.02.28 06:22
  • 호수 1622
  • 댓글 1

네팔 이주노동자 케빈씨, 가족 위해 공장일에 야간 배달까지
오토바이 충돌 사고로 사경 헤매…병원비 4000만원 훌쩍 넘어

배달 일을 하던 케빈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다.

“케빈씨 가족이신가요? 케빈씨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수술을 해야하는데 의식이 없어 보호자 동의가 필요합니다. 지금 병원으로 빨리 오셔야 합니다.”

자정을 넘긴 시각 대구에 있는 한 병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미 라마씨의 사촌형이자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케빈(35)씨의 교통사고였다. 예상치 못한 전화에 미 라마씨는 옷을 제대로 챙겨입을 겨를도 없이 택시를 타고 급히 대구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본 형의 모습은 참혹했다. 혼수상태에 빠져 거동이 불가능했으며, 피가 흐르고 얼굴이 부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미 라마씨에게 의사는 사로고 인한 내뇌출혈과 머리뼈, 얼굴뼈 골절상이라고 설명했다. 지혈은 하고 있지만 골절 상태와 출혈이 심해 뇌 수술은 어려워 중환자실에서 약물을 투여하며 상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케빈씨가 사고를 당한 건 2월6일 자정 즈음이었다. 배달일을 하던 케빈씨가 옆에서 나오는 차량을 미처 보지 못해 피하지 못해고 그대로 부딪혀 쓰러진 것이다. 더군다나 충돌 당시 헬멧을 쓰고 있지 않던 터라 상태가 심각했다. 떨어지면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케빈씨는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후미진 동네다 보니 가로등도 제대로 켜지지 않았고 빨리 배달해야한다는 급한 마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형이 어린 나이에 결혼해 책임져야할 가족이 많아요. 그래서 쉬지 않고 일을 해왔어요. 다들 쉬는데도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하면서 나선 거예요.”

케빈씨가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아버지와 아내, 자녀 3명을 부양했지만 손에 쥐어지는 건 한국돈으로 고작 5만원 정도였다. 흉작으로 수입이 없을 때는 딸아이의 학비를 감당하기도 버거웠다. 생활은 빠듯했지만 하교 후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좋았다. 아빠로서 다짐했다. 돈 때문에 학교만큼은 절대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오지 않게 하겠다고.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사촌동생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되면 학비 걱정 없이 교육시킬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행을 결정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두고 낯선 곳에 가는 일은 속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기에 잠깐의 이별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2016년 1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도착한 그는 대구에 있는 한 고무공장에 취업했다. 고무를 녹여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케빈씨가 맡은 업무는 250도가 넘는 기계 앞에서 고무를 옮기는 일이었다. 강행군은 매일 12시간씩 이어졌다. 작업 현장은 말도 못할 정도로 열악했다. 내부 온도가 너무 높아 한 겨울에도 땀이 뻘뻘 흘릴 정도였다. 고된 작업으로 몸은 녹초가 됐지만 한국에서 보내는 생활비로 행복하게 생활할 가족들을 생각하면 외로움도, 괴로움도 잊은 채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또 안산에서 일하고 있는 사촌동생 미 라마씨도 큰 힘이 되었다.

고된 업무 환경에 동료들이 하나둘 이탈해갔지만 케빈씨는 꿋꿋하게 근무했다. 월급도 조금씩 올랐고 네팔에 보내는 액수도 많아졌다. 이렇게 4년10개월. 케빈씨는 성실 근로자가 됐다. 한국에서 한 번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비자 갱신 후 다시 들어온 한국은 예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코로나19 탓이었다. 특히 대구지역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면서 케빈씨가 다니던 고무공장도 타격을 입었다. 24시간 돌아가던 공장은 주문이 줄어들면서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다행스럽게 케빈씨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공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가동시간이 줄면서 야근이 없어졌고, 자연스레 월급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학비 부담은 더 커졌다. 케빈씨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들이 많았고, 네팔 공동체를 통해 배달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받았다. 오토바이를 탈 수 있었던지라 공장업무가 끝나고 인근에서 배달을 시작했다.

10일이라는 긴 설 연휴가 주어지자 케빈씨는 야간에만 하던 배달업무을 늘리기로 했다. 몸은 더 힘들어졌지만 SNS로 전해지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에 힘이 솟았다. 의지가 강해지니 받는 돈은 많아졌고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러나 그의 희망도 여기까지, 오토바이 사고로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지도 벌써 20여일째다

한국에 온 지 7년. 예기치 못한 오토바이 사고로 케빈씨는 아버지로서 세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4000만원이라는 감당하지 못할 병원비만 눈앞에 두고서 말이다. 사고 소식을 들은 네팔 공동체에서 치료비 온라인 모금을 진행 중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병원 측에서는 깨어날 수 있도록 치료법을 변경하려 하나 시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부작용 탓에 섣불리 시도도 못하고 있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케빈씨의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것 뿐이다.

“형은 저에게 매일 아이들 사진을 보낼 정도로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빨리 의식을 되찾아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고 싶어요. 우리 형을 도와주세요.”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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