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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철 스님과 동행하며 선문의 뜰을 거닐라

  • 불서
  • 입력 2022.02.25 21:35
  • 수정 2022.02.26 10:34
  • 호수 1622
  • 댓글 1

정독 선문정로
강경구 지음·벽해원택 감수 / 장경각 / 1016쪽 / 4만2000원

중국어학과 교수이며 참선수행자인 저자가 10년간 매진
돈점논쟁 시각에서 벗어나 실천론·수행론 측면에서 해설
성철 스님이 부처님께 “밥값 했다”는 선문정로 정수 담겨

저자는 ‘선문정로’가 성철 스님이 도달한 바로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왼쪽부터 강경구 교수, 원택 스님, 서재영 박사.
저자는 ‘선문정로’가 성철 스님이 도달한 바로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왼쪽부터 강경구 교수, 원택 스님, 서재영 박사.

1981년 12월 출간된 ‘선문정로(禪門正路)’는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간 전혀 문자를 세우지 않던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1912~1993)이 직접 글을 써 선문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언어는 직설적이고 간명했으며 파격적이었다. 내로라하는 강백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선어록은 물론 교학 전반을 종횡무진하며 논지를 이끌어갔다. 간화선 수행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이며, 현재 간화선 수행의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정진해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루고 있었다.

성철 스님은 철두철미한 돈오돈수를 주창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대신 아예 ‘견성즉불(見性卽佛)’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견성하면 곧바로 부처이지 더 닦을 것이 없다고 선언했다. 조계종 중흥조인 고려 보조지눌 스님으로부터 이어오던 돈오점수의 완벽한 부정을 의미했다. 또 공안참구 과정에서 자기 점검의 기준으로 3가지 관문을 제시했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화두를 놓치지 않는 동정일여(動靜一如), 깨어있을 때와 잠잘 때가 한결같은 몽중일여(夢中一如), 이를 넘어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숙면 상태에서도 경계가 변함없는 멸진정 차원인 오매일여(寤寐一如)였다. 1940년 29세 되던 해,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오도송을 읊고, 1945년 봉암사 결사 주도, 10년간 동구불출, 해인총림 초대방장, 조계종 종정 등 일생을 수행자로 살아온 성철 스님의 일갈이었기에 불교계 안팎의 반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성철 스님 스스로 “부처님께 밥값 했다”고 했을 정도로 ‘선문정로’는 분명한 깨달음의 기준을 제시해 수행자 스스로 자기수행을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막연히 화두만 붙들고 정진하던 선객들에게는 금과옥조의 활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점진적인 깨달음인 돈오점수를 지지하는 스님들과 학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1990년 송광사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와 1993년 해인사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를 거치며 논란은 더 뜨거웠다. 해외에서도 학자들이 논쟁에 참여했고 발표된 논문이 30편을 넘어섰다. ‘선문정로’는 대중들에게 불교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돈점논쟁의 기폭제로 간주되며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이란 부제가 붙은 ‘정독(精讀) 선문정로’는 논쟁과 시비의 시각에서 멀찍이 떨어져 간화선의 실천론이라는 측면에서 해설한 역작이다. 부산 동의대 중국어학과 교수이며 참선수행자인 저자는 ‘선문정로’가 성철 스님의 고유한 사상을 피력하기 위한 철학서가 아니라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사실부터 명확히 한다. 수행은 깨달음이 아니면 한때의 낭만이 되기 쉽고, 깨달음은 수행이 아니면 공허한 큰소리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선문정로’는 어떤 경계 체험에도 머물지 않고 간절히 화두를 들어 그 알 수 없음과 맞상대해 거듭 뚫고 나가도록 몰아치는 수행자들을 위한 ‘할’이고 ‘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철 스님은 시비분별을 벗어난 무심의 성취를 강조하는 법문을 하면서 시비를 가르는 방식을 취했을까. 저자는 ‘선문정로’가 실참실오(實參實悟)의 경험을 압축한 실천론이라는 사실에서 답을 찾는다. 성철 스님은 궁극의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중간 정거장들을 설정하면 그 순간 분별적 유심에 머무를까 우려해 모든 중간 단계를 없애고 마지막 정거장인 궁극의 깨달음만 남겼다는 것이다. 수행자 입장에서 보면 ‘선문정로’의 강력한 부정과 비판과 배격은 예외 없이 각자의 내면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는 유심적 장애를 향하고 있다. 그 각각의 문장들은 수행자를 몰아세워 옳고 그름의 차원을 벗어나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책은 ‘선문정로’ 19장 체제를 그대로 따르면서 각 장마다 설법의 맥락과 특징을 상세히 설명하고 인용문의 출처를 소개하고 있다. 한문에 능수능란했던 성철 스님의 한문투 번역 원문과 한글세대가 이해하도록 풀어쓴 저자의 현대어역도 실었다.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던 오매일여에 대한 해설도 흥미롭다. ‘성유식론’의 ‘그중 여래와 자재보살에게는 멸진정만 있다. 수면과 혼절이 없기 때문이다.’, ‘종경록’의 ‘부처님과 8지 이상 보살은 오직 멸진정 하나만 있어서 수면과 민절이 없다.’ 등을 인용하며 성철 스님이 말한 오매일여 차원이 경전과 어록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혔다. 특히 저자는 돈오견성이 부처님 원각과 동일하다는 ‘돈오원각론(頓悟圓覺論)’, 무심을 실천하는 실참과 이를 성취하는 실오 이외에 모두 군더더기라는 ‘실참실오론(實參實悟論)’, 유심으로 인한 장애가 완전히 제거된 ‘구경무심론(究竟無心論)’을 성철선(性徹禪)의 3대 종지로 파악했으며, ‘선문정로’는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이들 3대 종지의 거듭된 변주로 이뤄졌음을 구명한 점도 의미가 크다.

10여년 전 부산 고심정사 회주 원택 스님의 간곡한 당부로 해설서를 쓰기로 결심한 저자는 ‘선문정로’를 읽어나가며 끊임없이 “왜?” “어째서?” “이뭣고?”을 던졌다. 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선사였던 성철 스님이 간화선 수행전통을 정립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집필했던 ‘선문정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단순한 학자적 호기심과 연구만으로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오로지 성철 스님을 믿고 따라가보자는 굳건한 신심과 저자 자신의 실경계 체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수를 맡은 원택 스님은 “이 글을 보고 이제야 은사스님께서 부처님께 밥값으로 자처하신 ‘선문정로의 길에 단단한 돌다리가 놓여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강 교수님의 현대어역과 상세한 해설은 그 높은 울타리를 털어버리고 누구나 선문의 뜰을 보고 함께 걸을 수 있게 해주셨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선문정로’가 출간된 지 40여년. 곳곳에 온갖 수행법들이 난무하고 간화선의 위기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저자는 ‘선문정로’가 이 시대 대중들에게 간화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명료한 답을 주고, 성철 스님이 도달한 바로 그 자리로 이끌어줄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갖춰야 할 것이 있다면 진리에 대한 간절함뿐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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