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님·역경위원·언론인 ‘박경훈’ 세연 접었다

  • 부고
  • 입력 2022.03.08 12:35
  • 수정 2022.03.09 04:13
  • 호수 1624
  • 댓글 4

박경훈 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 3월2일 별세
학창시절 소설 ‘유마경’ 읽은 후 불교에 매료돼
근대불교 사료 집성으로 불교사 연구에도 기여

박경훈(본명 박경준) 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이 미국 LA현지시각 3월2일 오후 4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50년대 불교계와 인연을 맺은 후 스님으로, 언론인으로, 역경위원으로 활동하며 현대 한국불교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고인이 법보신문 주필을 맡던 1997년 4월10일 동출 스님과 대담내용을 수록한 ‘(22인의 증언을 통해 본) 근현대불교사’(선우도량출판부, 2002) 등에 따르면 1934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생후 3주일 만에 세례를 받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던 고인은 불교를 미신이나 무속으로 여겼다. 편견이 깨진 것은 목포상업학교 시절 읽은 소설 한권에서 비롯됐다. 동국대 전신인 혜화전문 출신 국어 교사 추천으로 일본작가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의 ‘소설 유마경’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불교는 어느 종교와 사상보다 심오하고 생명에 대한 자비심이 넘쳐났다. 고인도 중생의 병을 앓는 보살이 되고 싶었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유마경’ 찾아 읽고, 무샤노코지의 ‘조용한 폭풍’(원제 ‘석가’)을 탐독하며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인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월탑(月塔)이라는 법명과 ‘유찬(幽燦)’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세속 공부 많이 한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려하지만 중노릇 잘 하려면 하심 잘하고 속으로 사무치면서 빛나야 한다는 게 금오 스님의 당부였다.

그러나 고인에게는 출가자가 아닌 재가불자의 길이 놓여있었다. 1961년 환속한 후 1963년 ‘대한불교신문’(현 불교신문) 편집국장을 맡아 불교언론의 기반을 다졌다. 3년 뒤인 1966년 동국대 역경위원, 1968년 편찬부장을 맡아 30여년 간 고려대장경 한글화 사업에 매진했다. 특히 1969년 한글대장경 판권이 동양출판사로 넘어가 역경원이 해체 위기에 처했을 때 소송 등을 통해 이를 되돌려 받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5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을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났던 고인은 불경 번역과 더불어 논문이나 기고를 통해 역경의 의의를 알리는데 힘을 쏟았으며, ‘조용한 폭풍’ ‘불타의 생애와 사상’ ‘불전’ ‘서산대사집’ ‘설국’ ‘유마경’ ‘신팔상록’ 등을 번역·집필했다.

고인은 근현대불교사 연구에도 크게 기여했다. 1965년 이한상 거사의 지원으로 한국불교 백년사편찬실을 만들어 일간지, 월간지 등에 실린 불교 관련 기사와 사찰 문헌 등을 수집해 근세불교백년사자료집 4권을 한 질로 만들어 불교계에 배포했다. 1980년에는 석주 스님이 구술하고 자신이 정리한 ‘불교근세백년’을 펴냈다. 이 책은 1889년부터 일제의 종교탄압, 815해방,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의 역사를 생생한 증언을 통해 서술한 근세불교의 목격기다. 이는 근대불교 연구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두고두고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고인은 1994년 역경원 편찬부장 자리를 떠나 그해 12월14일 법보신문 주필을 맡았다. 40여년 만에 불교언론인의 길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사설과 법보정론을 통해 불교계가 직면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거론하고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안목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불교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 땅의 지성계를 선도할 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의 지도적 원리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불자들은 보살이고자 하는 서원을 품어야 한다. 내 스스로를 향상시키고 불행한 이웃들과 아픔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보살의 서원이 아니겠는가.”(법보신문 1995년 1월2일자)

정론직필을 통해 불교를 감싸 안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은 주필에서 물러나는 1997년 7월말까지 계속됐다. 이후 고인은 한국을 떠나 아들 삼형제가 거주하는 미국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중국 후한 멸망 후 위·촉·오 3국이 대립하던 시대에 승려가 주인공인 장편소설을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박주용(55)씨는 “미국에 살면서 가급적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시고 집필 준비에 전념하셨다”며 “근래까지도 우리에게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을 강조하시며 인생을 허투루 살지 말 것을 항상 당부하셨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장례를 치르며 발인은 3월11일 오전 11시, 장지는 LA 에버그린묘역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24호 / 2022년 3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