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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심오하며 통찰이 번득이는 주련의 신세계

  • 불서
  • 입력 2022.03.14 13:41
  • 호수 1624
  • 댓글 1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지홍법상 지음
문연 / 1056쪽
5만5000원

전국 사찰서 130여개 주련 선별해 오류 바로잡고 상세한 설명
잘못된 글자에 순서 뒤죽박죽…전각과 맞지 않는 내용도 다수

법상 스님(왼쪽)은 좋은 주련의 조건으로 적합한 문구, 반듯한 글씨, 좋은 메시지를 꼽았다. 구하천보 스님(1872~1965)이 쓴 양산 통도사 대웅전에 걸린 주련(위)은 법상 스님이 좋은 주련의 대표사례로 꼽는다.
법상 스님(왼쪽)은 좋은 주련의 조건으로 적합한 문구, 반듯한 글씨, 좋은 메시지를 꼽았다. 구하천보 스님(1872~1965)이 쓴 양산 통도사 대웅전에 걸린 주련(위)은 법상 스님이 좋은 주련의 대표사례로 꼽는다.

주련(柱聯)은 얇고 기다란 판자에 글을 새겨 건축물 기둥에 걸어놓은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전통건축 장식이다. 사찰에도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마다 으레 주련이 걸려 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양각이나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전서와 초서, 고자(古字)로도 쓰여 웬만큼 한문에 정통하지 않으면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문과 동떨어진 세대들에겐 주련 문구는 생소한 아랍어나 히브리어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독해불능 건축 장식으로 와 닿는다.

김해 정암사 주지 법상 스님의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은 전국 100여개 사찰, 130개 주련에 대한 해설서다. 지난해 이어 지금까지 법보신문 연재로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스님은 사찰 주련이 아름답고 심오하며 통찰이 번득이는 문화유산임을 보여준다.

직접 촬영한 사진과 원문, 번역문을 싣고 전체적인 설명과 각각 게송에 대해 상세히 해설하고 있다. 주련에 새겨진 게송을 온갖 교리, 역사, 문화, 인물과 연결해 차근차근 설명해나가는 해박함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사찰 주련 최고 전문가 반열에 오른 스님이 주련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서부터다. 사찰에 갈 때마다 주련 내용이 궁금한데 무척 어렵더라며 이를 풀이하는 책의 집필을 권유했다.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지만 내심 흥미로웠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전국 사찰을 누볐다. 휴전선 인근부터 제주도까지 전통사찰을 샅샅이 훑어나갔다. 팔만대장경과 수많은 선어록에서 골라낸 주옥같은 경전문구와 게송, 뛰어난 서체를 만날 수 있었다. 종종 어려운 문구를 만나면 밤새 경전과 선어록을 뒤적이고, 중국과 일본의 불교문헌 사이트도 검색했다. 마침내 두고두고 고민했던 문구 출처와 내용이 드러날 때면 엄청난 환희심이 솟았다.

스님이 가장 인상적인 주련으로 꼽는 것은 구하천보 스님(1872~1965)이 쓴 양산 통도사 대웅전의 ‘月磨銀漢轉成圓(월마은한전성원)’, 해사 김성근(1835~1919) 선생이 쓴 고성 옥천사 자방루의 ‘三界猶如汲井輪(삼계유여급정륜)’, 위창 오세창(1864~1953) 선생이 쓴 사천 다솔사 극락전의 ‘彌陀無德不備(미타무덕불비)’이다. 문구는 주련에 적합하고, 글씨는 반듯하며,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좋기 때문이다.

사찰 주련을 대할수록 안타까운 사례도 늘었다. 주련 순서를 잘못 걸어 문장이 뒤죽박죽됐는가 하면, 글자가 틀리거나 글을 쓴 묵객들이 글자를 제멋대로 뜯어고치는 일들도 있었다. 더러는 예로부터 전해오던 주련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고 특정 스님의 글로 채워지거나 전각과 부합하지 않는 생뚱맞은 내용으로 걸린 주련이 비일비재했다.

스님은 주련이 삼보 중 법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주로 부처님 가르침을 인용하거나 삼보를 찬탄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포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기에 간혹 한글로 쓴 주련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갑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면 본래 취지를 퇴색하고 만다.

주련에 글을 쓰는 묵객이라면 평범한 글자를 선택해 진중하게 글을 써야지 초서·전서를 함부로 휘두르거나 유명세에 기대 붓글씨 서법도 모르는 이가 쓴 글을 걸어놓는다면 포교는커녕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주련에 담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뒀다. 자신까지 오류를 범하면 주련의 생명력을 잃게하는 것은 물론 대중까지 어리석게 만듦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드커버에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어디를 펼쳐보아도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스님의 박학다식과 스토리텔링에서 비롯된다. 스님의 말마따나 세상 이치는 아는 만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법이다. 이 책은 무심코 지나쳤던 주련 앞에 발길을 멈춰서 그 깊고 그윽한 세계와 마주하도록 이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24호 / 2022년 3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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