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있어 그것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도’의 경지에 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림이나 글과 같은 예술작품일수록 그런 표현들은 흔해진다. 그렇다면 언어에 있어 간결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는 어떨까? 어떤 시들은 언어의 틀을 갖고 있지만 언어를 초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여준다. 그런 시는 언어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도’의 경지나 번뜩이는 깨우침의 세계를 보여준다.
‘첫사랑’ ‘면면함에 대하여’ ‘성숙’ ‘수선화, 그 환한 자리’ 등의 시로 잘 알려진 고재종 시인이 불교의 선문답과 현대시의 교감을 다룬 에세이집 ‘시를 읊자 미소 짓다’를 펴냈다. ‘아함경’을 비롯한 각종 경전과 ‘조주록’ ‘벽암록’ 등 선어록에서 52개의 화두를 고르고, 그에 상응하는 현대시를 접목해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심도 있게 풀어놓았다.
선은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의 지극정성과 함께 마당에서 비질하다가 튕겨 나간 돌조각이 대나무에 탁 부딪히는 그 작은 울림으로도 번개 같은 한 소식을 얻기도 한다. 특히 선문답은 일상 속 사물과 존재를 치켜들어 직관과 통찰, 동문서답과 전복, 격외와 낯섦, 난센스와 촌철살인 등으로 우주와 곧바로 융합하는 걸림 없는 세계를 지향한다. 이렇게 언어가 필요 없는, 아니 언어를 초월한 선과 언어로 표현되는 시의 만남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감각과 사유의 언어적 산물인 시가 언어 너머의 실천적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그 불립문자의 진실을 어찌 간파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 또한 열정과 자유 하나로 부딪치는 체험과 상상력 그리고 직관에 의한 통찰 등을 통해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세계와 존재의 비밀스런 의미를 가끔씩 들여다보기도 한다. 특히 시나 선이나 탁월함의 지혜를 지향하는 무위(無爲)의 정신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52개의 화두와 이에 상응하는 현대시의 만남은 이야기의 주제에 맞춘 리드 글로 시작해, 화두를 소개하고 화두를 관통하는 시인들의 시를 실었다. 고 시인은 책의 서문격인 작가의 말에서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는 질문에 대한 공부노트’라는 말로 책의 내용을 정의한다. ‘만법귀일 일귀하처’는 ‘벽암록’ 제 45칙 화두로 “모든 존재가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는 물음이다. 이 질문이 은산철벽(銀山鐵壁)이 돼 시인은 선의 심연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책은 그 결과물이다. 사물이나 생각의 깊은 심연을 탐구한 시인이기에 시는 화두였고, 화두는 그대로 시가 됐다.
고 시인은 “한 티끌이 일어나니 온 대지가 그 속에 들어가고 꽃 한송이 피니 그 속에 세계가 열리기도 한다는 등의 오도송을 부르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덜 무섭고 덜 고통스런 방편지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시 경천동지할 선의 세계를 환히 열어젖히고 민중 속으로 회향하는 실천적 수행의 삶은 오로지 수행자건 시인이건 모두 각자의 몫이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25호 / 2022년 3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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