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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라면 서양윤리 쟁점들에 어떤 답을 했을까

  • 불서
  • 입력 2022.03.25 21:07
  • 호수 1626
  • 댓글 0

자비 결과주의
찰스 굿맨 지음 / 담준·김진선·허남결 옮김 / 씨아이알 / 482쪽 / 2만6000원

낙태·동물관·안락사 등 현대 쟁점
경전 근거로 윤리학에 영감 제공
서양·불교 윤리사상에 통합 시각

동양에서 불교는 오래된 전통에 그칠 수 있지만 서양에서는 다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1889~1975)가 만년에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을 묻는 질문에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와 기독교를 대체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당시 토인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을 이들이 많았겠지만 지금 그 말에 수긍하지 않은 이들은 드물 듯하다. 철학, 심리학, 의학, 종교학 등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다루는 학문에서 불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인간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판단과 규범을 연구하는 윤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낙태, 동물권, 환경 및 안락사와 같은 쟁점들에 관한 불교전통의 견해를 다룬 피터 하비, 피터 싱어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불교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불교윤리의 해석과 옹호라는 부제가 붙은 ‘자비 결과주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 뉴욕주립 빙햄턴대학 교수인 저자는 하버드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미시건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한 독특한 이력의 학자다. 미국과학진흥협회 회원이며 저명한 윤리학자인 저자는 대승불교 논사인 나가르주나, 다르마키르티, 바수반두, 산티데바 등 논문도 많이 쓴 불교연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불교경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통해 불교가 오늘날 윤리학에 깊은 영감을 제공할 수 있음을 환기시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불교 개념과 서양 윤리학 이론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데 ‘재교육’이란 방법론을 적극 활용한다. 역사적 인물인 붓다를 비롯해 위대한 불교사상가들이 자유의지, 윤리이론, 정의, 덕, 도덕성의 요구나 처벌의 정당성 등 서양철학의 주요 쟁점에 대해 이해했다고 먼저 가정한다. 그렇다면 붓다와 후대 사상가들은 어떤 입장을 내세웠을까. 그들은 언제 어떤 특정한 서양 사상가들의 견해를 지지하고, 언제 그들은 서양전통에 익숙한 모든 선택들을 거부했을까. 저자는 각각의 쟁점들에 대해 불교문헌에 나타난 명확한 입장들로부터 서양철학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낸다.

이런 시도는 그 내용이 철학적으로 흥미로울 때 서양 사상가들이 수천 년 동안 철학 전통을 당황스럽게 했던 쟁점들에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동시에 불교를 해석하는데 있어 서양윤리학 이론은 불교윤리사상의 전 영역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데에서 의미가 크다.

저자는 불교의 주요 교의들에 대한 논의와 서양 윤리이론의 중요한 3가지 이론인 결과주의, 의무론 및 덕론의 중요한 공통 특징과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기술한다. 이어 규칙 결과주의로서의 테라바다 윤리 구조와 윤리 속의 복지, 산티데바 이전의 대승 윤리와 산티데바의 체계, 티베트 도차제(道次第) 문헌, 자아를 갖지 않는다는 무아론 및 공성에 대한 윤리적 견해, 불교윤리와 결과주의 요구사항, 불교와 도덕적 책임 등을 차근차근 논구해나간다. ‘유마경’에 언급된 보살이 갖추어야 할 자비의 종류를 설명한 뒤 의사, 사회복지사, 치료사 등이 그렇듯이 사람들을 돌보며 스스로 황폐해지기 쉬운 ‘감성적 자비’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것을 뛰어넘은 대승보살의 자비와 원리를 설명한다.

이외에 나가르주나가 왕에게 보낸 편지 분석을 통해 현대 미국의 응보주의적인 형법제도가 갖는 폭력성과 부작용, 그것을 보완할 불교적인 방법까지 제시한다. 불교사상 전통이 칸트에 의해 제기된 도전에 답변할 근거와 그의 의무론적 윤리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을 감당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주장도 흥미롭다.

저자는 불교와 서양윤리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 후 불교윤리는 그 중심에 덕과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특별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온화하고 관대하며 자비로운 불교 정신은 세상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도록 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책은 서양윤리학적 전통에 익숙한 인문학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뿐 아니라 지적 자극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번역은 조계종 교육아사리 담준 스님, 김진선 동국대 철학박사,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가 맡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26호 / 2022년 3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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