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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창원 원흥사 주지 월도 스님

마음으로 만족 알고 보살행 실천할 때 큰 운의 주인공 된다

이 세상의 주인은 부처님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미소 짓는 얼굴‧긍정적 생각‧좋은 말이 좋은 운 불러
만족 모르면 영원히 가난, 만족할 줄 아는 순간 부자

월도 스님은 “채워서 만족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적게 가져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월도 스님은 “채워서 만족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적게 가져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새 봄, 이 시기가 되면 많은 분이 새삼스럽게 궁금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하고 어떻게 해야 더욱 소원을 이룰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편안함을 가질 수 있을까.’ 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을 궁금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찾아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올해는 복이 있을까, 없을까? 그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올해 나의 운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운명은 내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은 법문을 통해, 기도를 통해, 불서를 통해 익히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랜 습관을 바꾸지 못한 채 운명을 밖으로만 찾으러 다닙니다. 내 운명은 내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깥에서 그 운명을 알아보고자 애를 쓰는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운이라고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인류가 이 세상에 출연하면서 자연을 통해 원하는 것을 모두 잘 이루었으면 종교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큼 행복이 채워지지 않고 고통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삶을 ‘고해(苦海)’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인간이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세상이 이루어진다면 종교는 존재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런데 나의 노력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므로 그 원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여기거나 제3의 어떠한 에너지를 통해서 채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과거 과학이나 학문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신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운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중심이 누구일까요? 과거에는 창조자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창조자는 누구일까요? 불교의 가르침을 배운 분이라면 이 세상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창조자는 여러분 자신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입니다. 부처님만이 세상에 존귀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불성을 가진 모든 존재가 이 세상에 존귀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운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운명을 누군가에게 맡기려고만 한다면 어리석음의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30여년 전 제가 첫 주지로 나갔던 지역에서 겪은 일입니다. 그때는 주지가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새 주지가 왔다고 하니까 신도님들이 좋아하십니다. 어떤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자동차를 샀는데 사고가 나지 않게 불공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동차 무사고 안전 불공을 열심히 했습니다. 조금 뒤 또 다른 분이 오셨습니다. 이분은 자동차 정비공장을 만들었는데 정비공장 사업이 잘되게 불공을 해달라고 합니다. 난감했습니다. ‘참 부처님 골치 아프시겠다.’ 조금 전에는 무사고 안전운행 기원, 자동차 고장이 나지 않고 안전하게 해달라고 불공을 올렸습니다. 그다음에 조금 있으니까 자동차가 고장이 나도 수리를 하면 되니까 정비공장 사업이 번창하게 해달라며 불공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때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누구의 운을 들어 주어야 합니까? 저는 어떤 축원을 해야 합니까? 
이 세상의 주인, 이 세계의 중심은 부처님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자동차를 산 사람은 자동차 무사고 안전을 위해서 열심히 정진하고 기도하면서 운영 방법을 제대로 지키고 실행하면 안전할 것입니다. 자동차 정비공장을 하는 사람은 자동차를 정성을 다해서 잘 고치고 그 기술이 신용을 얻어서 한 번 고친 자동차가 더는 고장이 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이 곧 사업이 잘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에게 있다는 얘기입니다. 누군가에게 운을 달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스스로 좋은 운을 만들어내는 삶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운을 만드는 이상적인 방법을 제안하겠습니다. 첫째, 마주치는 사람에게 항상 미소로 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사를 하든, 가정의 살림을 살든, 절에 오든, 친구를 만나든, 누굴 마주하든 항상 상대방에게 잔잔한 미소로 함께하는 마음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운을 붙드는 방법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스스로 이로움을 갖고 그 이로움을 나눌 수 있는 삶이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입니다. 가족, 형제, 이웃부터 미소로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하심 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으로 미소를 지니며 산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운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여유로운 삶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돈이 없어도 있는 척 하시기 바랍니다. 돈을 막 쓰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없다고 투정을 해봐야 자신만 손해라는 것입니다.  ‘안 된다’ ‘안 된다’ 이러면서 인상만 쓰고 있으면 저절로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옛 말에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밝게 보는 사람에게는 밝은 기운이 오고, 어두운 기운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면 어두운 결과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꿈 하나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습니다. 만약 악몽을 꿨을 때는 거꾸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길몽을 꾸었을 땐 꿈이 딱 맞을 거라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해몽이 맞아도 맞지 않아도 본전입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 자체가 바로 꿈이 중심이 아닌, 살아있는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 두 번째는 바로 여러분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노력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희망과 행복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누구나 하셨을 겁니다. 왜 좋아지는 것일까요? 복 짓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관세음보살을 불렀는데 어떤 제3의 에너지가 나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좋아진 게 아닙니다. 복 짓는 일을 스스로 했기 때문에,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가벼운 혀로 만 가지 화를 부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 식구끼리 주로 무엇 때문에 싸웁니까? 말로 인해서 싸우는 일이 90%를 차지할 겁니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고 전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것은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말은 참으로 절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묵언(默言)의 가르침을 이야기합니다.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적게 말하는 것이 득이 된다는 이유에서일 겁니다.

제가 원흥사에 왔을 때 여러분께 부탁드린 점이 있습니다. 우리 도량에서는 귓속말하는 사람이 없자고 했습니다. 귓속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만 알고 있어.” 그 순간 거의 다 속습니다. 저 사람이 정말 귀한 말을 나에게만 해주는 줄 압니다. 하지만 계속 귓속말을 하다 보면 오히려 사람의 사이는 벌어집니다. 귓속말을 한 사람은 불안합니다. 저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정말 자신만 알고 있을까? 딴 사람한테 일렀을까? 들은 사람도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일파만파 갈등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이왕 할 말이라면, 상대방이 들어서 기분 좋을 말은 아끼지 마시고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미소로 인사하기,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그리고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해서 상대방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말하기, 그것이 진정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고 나쁘다는 기준도 조석으로 바뀝니다. 오늘 좋았던 사람이 내일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고, 오늘 나빴던 사람이 내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좋고 나쁨이 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생각만 바꾸면 복이 되는 것이 우리 삶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돈 많은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는 어떤 게 복입니까?” “돈이 있으면 뭐 해요. 건강해야죠.” 건강한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건강해서 참 좋겠습니다.” “건강하면 뭐 합니까 화목해야 복이죠. 아무리 건강해도 만나서 싸우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그래서 또 화목한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참 행복할 텐데 어떤 게 복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화목하면 뭐 합니까? 자식이 있어야 복입니다.” 또 자식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어떤 게 복이라고 생각합니까?” “무자식이 상팔자입니다.”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입니까? 가장 잘 사는 방법은 채워서 만족하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적게 가져도 만족할 줄 아는 삶입니다. 만족을 모르는 자는 영원히 가난한 사람입니다.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 부자입니다. 이것이 소욕지족(少欲知足)의 가르침입니다.

생각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용기 있는 자가 공덕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욕심으로 운을 채울 게 아니라 마음으로 만족을 알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이가 가장 큰 운의 주인공입니다. 열심히 정진하는 불자, 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불자, 희망으로 함께할 수 있는 불자, 그래서 코로나도 능히 뛰어넘을 수 있는 불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3월6일 경남 창원 원흥사에서 봉행된 ‘유튜브 월도스님TV 구독자 3만 돌파 기념 불기 2566년 신춘특별대법회’에서 주지 월도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28호 / 2022년 4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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