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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내 삶의 최고 작품…흔들릴 때마다 불교가 큰 힘 됐어요”

KBL 최고 스타 허씨네 안주인 이미수 불자

맹모의 마음으로 남편·아들 선수 생활 뒷바라지
어머니회장 맡아 열악한 운동환경 개선 앞장서
사찰 다니며 아들 위한 기도…인생 2막 준비도

맹자가 성인의 경지에 오르는 데에는 어머니의 숨은 피와 땀이 있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이 있으니 맹모의 노력도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됐지만 말이다. 맹모는 어린 맹자가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세 차례나 이삿짐을 쌌다. 자식 교육에 있어 부모를 비롯한 주위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

이는 현대 운동선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견실한 운동선수의 뒤에는 항상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 부모가 있었다. 한국 프로농구 허재 명예 부총재의 아내이자 KBL의 간판선수로 성장한 허웅, 허훈 선수의 어머니, 이미수씨가 바로 그렇다. 30여 년간 숱한 풍파를 겪으면서도 늘 사랑과 불심으로 스스로를 다잡고 물심양면 남편과 두 아들을 뒷바라지해왔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에 친숙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이미수씨 삶의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온실 속 꽃 같았던 그녀의 인생은 우연한 만남으로 180도 달라졌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부모가 정해준 길을 군말 없이 따르는 딸이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는 그런 순탄한 삶. 모든 형제가 그랬기에 자신도 마땅히 그래야 된다고 여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부모가 주선한 선자리에 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부산의 호텔 로비에서 한 남성이 다가와 삐삐 번호를 물었다. 그녀의 이상형에 부합했던 그였기에 주저함 없이 번호를 건넸다. 그의 적극적 구애로 연애에서 결혼까지 급물살을 탔다.

한 남성의 정체는 다름 아닌 허재 부총재. 선수 시절부터 국가대표, 프로팀 사령탑을 맡는 등 한국 농구 역사에 한 획을 명실상부한 ‘농구 대통령’이었지만 그녀의 결혼은 순탄하진 않았다. 집안에서 운동선수와의 만남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가 정해준 길이 아닌 나의 길을 가겠다며 집안 식구들의 마음을 돌렸다. 결혼 후 혼자만 농구공처럼 통통 튀는 삶을 산다며 가벼운 푸념을 하고플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을 선택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허웅, 허훈 두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왼쪽부터 둘째 아들 허훈, 남편 허재, 큰 아들 허웅
왼쪽부터 둘째 아들 허훈, 남편 허재, 큰 아들 허웅

학급 임원을 도맡고 공부까지 잘하던 아들들이 어느 날 농구선수의 꿈을 전해왔다. 미국 생활 때부터 두 아들이 푹 빠져있던 농구였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남편이 연수를 가게 되면서 네 식구는 미국에 둥지를 텄다. 암암리에 벌어지는 인종차별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농구로 두 아들이 동네를 휩쓸면서 인종차별을 극복했으니 일찍이 농구의 힘과 매력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남편의 개인 레슨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에 UCLA 농구 코치가 눈여겨 봤을만큼 두 아들은 실제로 재능이 넘쳤다.

처음에는 덜컥 걱정이 앞섰다. 부모의 마음이 늘 그렇듯 중도에 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연필을 집었을 때 공부에 뒤처지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다. 일단 시작했으면 남편처럼 끝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의 마음을 먹었다. 맹자가 중간에 학업을 중단하고 찾아오자 맹모가 짜던 베를 잘라 아들을 훈계했던 자세였다. 농구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임을 엄하게 가르쳤고 때로는 다 잘 될 것이라고 어르며 두 아들의 농구 인생을 힘껏 응원했다.

한국으로 건너온 허씨 형제의 농구부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중고교 운동부의 현실은 그녀를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감독진의 구타와 욕설, 벌레가 들끓는 컨테이너 숙소까지 당시만 해도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이미수씨는 형제의 어머니이자 든든한 조력자로서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용산중학교 어머니회장, 용산고등학교 예체능부 회장을 맡으며 농구부 선수들의 운동환경 개선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덕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모두 실내체육관이 건립되는 등 좋은 결실을 맺기도 했다. 주변에서 극성이라고 비난했을지 모르지만 훌륭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게 당연한 부모 마음이기에 그 부모들을 대표해 악역을 자처한 지난날이었다. 두 아들이 뛰는 농구 경기를 모두 찾아다니고 뒷바라지하며 당시 몸도 많이 상했다. 등받이 없는 관객석에 오랜 시간 앉아 있다가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하고 집에 오면 허리와 눈을 비롯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끼니를 거를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마음 졸이며 경기를 지켜보니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30여 년간 두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꿋꿋이 지켜왔다.

결국 허웅, 허훈 선수 모두 KBL의 내로라하는 선수로 대성했다. 허훈 선수는 2019~2020 국내 선수 MVP에 이어 지난 시즌 올해의 선수상, 베스트5 등 이미 수많은 기록을 일궈냈다. 허웅 선수 역시 3년 연속 인기상 수상에 베스트 5까지 거머쥐며 실력과 인기를 몸소 증명했다.

“무척 자랑스럽고 항상 감사한 마음이죠. 남편도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이 또한 집안의 허씨 남자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겠죠.”

헛헛한 마음도 들었다. 막내까지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나니 어느덧 오십 줄에 들어섰다. 두 아들은 대학교에서 합숙 생활을 하고 남편도 KCC 감독으로 시즌을 챙겨야 하니 혼자만의 시간이 부쩍 늘었다. 남자 셋이 빠져나간 집에 홀로 앉아 과거를 돌아보는 날이 잦아졌다. 오롯이 본인만을 위해 살았던 기억이 없었다. 자신처럼 미술을 전공한 집안의 언니들 모두 지금도 개인전, 그룹전을 개최하는 등 전공을 살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미수씨는 그간 남편을 내조하고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미술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석사 과정에 진학해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당시로서는 가족이 우선이었다.

때때로 한숨과 공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자식들이 자랑스러웠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조소를 전공했지만 남들처럼 걸출한 미술품을 조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자신의 피와 땀으로 허웅, 허훈 선수라는 최고의 작품을 빚을 수 있었기에 지나온 삶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두 아들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는 본인의 사랑뿐 아니라 부처님 가피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허재 부총재가 불자대상 상금을 백만원력결집불사에 기부했다. 전달식에는 아내 이미수씨도 함께했다.
허재 부총재가 불자대상 상금을 백만원력결집불사에 기부했다. 전달식에는 아내 이미수씨도 함께했다.

“어머님께서 곳곳에 작은 절을 짓는 등 스님들의 수행을 뒷바라지하고, 병원비도 지원하셨어요. 이때 쌓은 덕이 아마 손주들에게도 이어져 남편도 은퇴 후 일이 잘 풀리고, 아들들도 잘 된 것 같아요.”

부모의 영향으로 그녀도 어려서부터 불심을 키웠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마음가짐,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에게 배웠고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도 자연스레 몸에 뱄다. 이는 본래 종교가 없던 남편에게도, 어린 두 아들에게도 스며들어 네 가족이 모두 불자가 됐다. 지금도 허재 부총재와 허웅, 허훈 선수가 기부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그녀의 불심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절에 다니기 시작했던 것은 두 아들이 농구선수로서 첫걸음을 떼면서부터다. 중·고등학교에 이어 프로 농구선수가 된 아들들을 뒷받침하면서 힘들 때마다 불교에 의지했다. 경기 때마다 경기장 근처 사찰을 찾아 건승을 빌고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스스로도 경기의 승패에 따라 감정의 휩쓸림에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사찰을 찾아서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다 잡았다. 원주에서는 구룡사를, 영주에선 부석사를, 김천에선 직지사, 제주에선 관음사, 약천사 등을 방문해 땀이 흐를 때까지 절을 올리곤 했다.

“훈이가 고등학교 때 볼거리를 앓았는데 에이스다 보니 경기를 쉴 수 없었어요. 해열제를 먹여도 아이는 계속 아프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요. 매일 아침마다 원주 구룡사를 찾았고 시합 내내 기도를 올렸죠.”

많은 사찰과 인연을 맺어왔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을 가장 편안케 해주는 곳은 조계사다. 거주지와 가까워 일과를 시작하기 전 새벽 조계사를 찾아 ‘천수경’을 독송하고 기도를 올린다. 조계사 불교대학에 등록해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다. 삶의 희로애락을 마주하는 데 있어 불심이 줄곧 큰 힘이 되어줬다. 특히 두 아들을 키우며 자신이 가진 에너지가 한계에 부닥쳤을 때, 인내하는 마음이 심하게 흔들릴 때 늘 불심이 자신을 다잡아줬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쭉 사찰을 찾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할 것이라고 웃음지었다.

“올해는 가족들에게 최고의 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기운으로 앞으로 10년, 아니 평생 쭉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절을 찾아 기도를 해야겠죠.”

그동안 남편의 아내로, 두 아들의 어머니로 숨 가쁘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인간 이미수의 삶에 좀 더 충실해보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간 못했던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미술 공부를 쭉 이어가겠다는 계획이 어느새 이미수씨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성인이 된 맹자를 떠나보낸 맹모의 모습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힘차게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그녀의 맑은 웃음이 싱그럽다.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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