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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에 만난 큰 스님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

선·시·서·화 매진하며 ‘한 올 사심·한 점 물욕’까지 털어낸 선사

6·25한국전쟁 학교 폐허
서당에서 사서삼경 배워

월하 화상 은사로 출가 후
통도사서 60년 머물며 정진

봉암사 태고선원 수선안거
26안거 성만…강주도 역임

환성 문하 13세 손 인정
“법 크게 펴라” 당부 생생

“통도사 자체가 ‘무가보’
일초일목도 버릴 게 없어”

주지 때 통도사박물관 건립
서운암 중창·무위선원 개원

“시, 강처럼 흘러야  해”
시조·소설 등 전방위 지원

성파시조문학상 38년 지속
작품 무크지 ‘화중련’ 40호

쪽·한지 연구 끝 ‘감지 재현’
옻칠 불화…미술 새 지평

중국에서 펴낸 ‘성파화집’을 본 신항섭 미술평론가의 평은 의미 있다. ‘그의 산수화에는 조급함이나 욕심이 검출되지 않는다. 속된 욕심을 걷어낸 자리를 찾아 담담하게 움직이는 필선이 한가롭게 느껴진다.’ 사진=주영미 기자
중국에서 펴낸 ‘성파화집’을 본 신항섭 미술평론가의 평은 의미 있다. ‘그의 산수화에는 조급함이나 욕심이 검출되지 않는다. 속된 욕심을 걷어낸 자리를 찾아 담담하게 움직이는 필선이 한가롭게 느껴진다.’ 사진=주영미 기자

통도사 적멸보궁에서 울린 예불 소리 새벽 공기 가르고 금강계단에 닿는다. ‘이 절을 창건하신 남산종의 종주 자장율사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귀의하며 예를 올립니다!’ 영축총림 예불 의식에서만 들을 수 있는 구절이다. 이 산사에 부처님 사리가 봉안됐음을, 하여 통도사가 한국의 대표 ‘불보종찰’임을 천명함이다. 출가 원력을 세운 사람은 모두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하기에 ‘통도(通度)’라 했고,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뜻에서 또한 ‘통도(通度)’라 했다. 

영축산의 깊이는 큰 절 뒤의 암자로 난 길을 걸어야 맛볼 수 있다. 중국 송대 곽희는 화론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산은 물로써 핏줄을 삼는다… 그러므로 산은 물을 얻어 비로소 산다(山以水爲血脈...故山得水而活)’고 했다. 암자 곳곳마다 솟아오른 샘물과 계곡이 핏줄이 되어 영축산을 꿈틀거리게 한다. 통도천 동쪽에는 극락·비로·반야암 8개의 암자가 앉아 있고, 서쪽에는 서운·백련·자장·사명·취운암 등 9개의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조계종 제15대 종정 중봉 성파(中峰 性坡) 대종사는 상서로운 구름이 내려앉는 서운암(瑞雲庵)에 주석하고 있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1939) 6·25한국전쟁으로 학교가 폐허 되자 서당을 찾아 한학을 익혔다. 사서삼경을 마치고도 유학자의 길을 걷지 않고 산문으로 들어섰다. 숙연이다. ‘법의는 여러 생에 걸친 원력의 막중함과 일찍이 심어 둔 지혜의 종자가 성숙되어야 입을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노천당 월하(月下·조계종 제9대 종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1960)한 스님은 통도사 품에서만 60여년 동안 머물렀다. 불보종찰이 내어 주는 향훈이 그대로 배인 듯 눈길이 그윽했다. 시인들은 저 그윽한 눈길에서 ‘평온’과 ‘평화’를 느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통도사는 국보와 보물로 가득한데 ‘영남 알프스’라 명명될 만큼 절경까지 품고 있다. 통도사 주지 때 성보박물관을 지을 만큼 유물유적에 대한 조예가 깊다. 유독 마음 가는 성보나 쉼터가 있을 법하다. 

“심산명당(深山明堂)은 월정사이고 야지명당(野地明堂)은 통도사라고 했습니다. 산은 웅장한데 땅은 고르게 펴있어요. 물, 쌀, 약초, 산나물 풍부하니 수행자에게는 그만입니다. 통도사가 국보고 보물이지요. 아니 무가보(無價寶)입니다! 일초일목(一草一木)도 버릴 게 없어요.”

2002년 당시 영축총림 방장이었던 월하 스님은 “환성(喚惺) 문하 13세손으로서 크게 법을 펴라”며 중봉(中峰)이라는 법호를 내렸다. 환성 지안(喚惺 志安·1664~1729) 스님은 선 사상사와 법맥의 흐름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선종 다섯 종파의 핵심 개념을 정리한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를 남겨 조선 후기 선(禪)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환성 스님의 통도사 주석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한 적이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환성 스님이 사용했던 송낙(송라립·松蘿笠), 백련암에 걸려 있던 환성 친필 시 현판, 환성조사종계안(喚惺祖師宗契案)’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백련암을 중창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수많은 고승이 통도사에 머물면서 시문학을 꽃피웠는데 환성 지안 스님이 그 초석을 다졌다. 

‘골짝 입구는 평야로 이어져 있고(洞口連平野)/ 누대는 작은 봉우리 아래 보일 듯 말듯(樓臺隱小岑) / 스님은 게을러 쓸지 않으니(居僧懶不掃) / 지는 꽃잎 뜨락에 가득 하누나(花落滿庭心)’(환성 스님의 시 ‘무제’)

시상에서 직감할 수 있듯이 ‘게으른 스님’이 아니라 ‘삼매에 든 스님’이다. 고요한 공간 속에는 꽃잎 떨어지는 소리만 가득한 듯하다. 

성파 대종사의 시에서도 선기를 엿볼 수 있다. ‘혹 글을 읽다 혹은 나무를 하는 것이 나의 인연(或讀或樵是我緣·시 산거 중)’ ‘바람 고요하니 근심 떨어지고(風靜愁心遠·시  춘일한음 중)’ ‘구태여 번거로운 일 쫓아갈 게 무언가(何必追種紛難事·시 포독산창  중)’

‘한가히 심근 기르며 입 다물고 있노라(閑養心根似閉脣·시 술자회(述自懷) 중)’

시 ‘산밭(山田)’이 백미다.

‘한 그루 과목이 산밭에 있으니(一木在山田)/ 뿌리는 깊고 가지 또한 온전하다.(根深枝亦全)/ 주렁주렁 그 수량을 헤아릴 수 없다.(實實數無盡)/ 많은 대중이 그 진미를 가히 맛볼 수 있다.(能衆喫味眞)’ 

출가 전 한학·도학·역학·성리학에 통달했다는 정산 한서태 선생으로부터 한학을 배워 한시에도 능통했었다. 선시를 많이 짓는 건 아니지만 지인들 사이에서는 ‘시인’으로 불린다. 

‘범속한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것들로부터 지극히 세속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지상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든 무형의 소재든 간에 그 본래의 모습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심오한 마음밭을 일구시는 분이다.’(김연동 시인·‘서운암의 향기’에서)

1984년 ‘성파시조문학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38년을 이어왔을 정도로 시조를 향한 정성이 대단하다.

“1970년대 초 일본에 건너가 한 2년간 거주한 적이 있어요. 옛것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걸 창조하려는 모습에 감명받았지요. 그 사람들 하이쿠(俳句)를 정말 좋아해요. 중국에 한시가 있고, 일본에 하이쿠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시조가 있잖아요. 그런데 점점 사라져가는 겁니다. 참 안타까웠어요. 우리 문학사에서 여러 형태의 시가(詩歌)가 형성되었다가 멸렬했지만 시조문학(詩調文學)만은 500여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 겨레와 생명을 같이 해 온 문학입니다.”

성파시조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집을 담은 ‘화중련(火中蓮)’ 창간호를 발간했다.(2004)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와 올해 상반기에 통권 40호를 내놓았다. 시조 무크지에 ‘불 속의 연꽃’이라는 격외선을 접목한 점이 신선하면서도 놀랍다.

“선에서 비논리의 논리, 비합리의 합리를 쓰는 이유는 분명해요. 중생이 헛된 망념을 버리고 진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법의 실상을 제대로 깨우쳐 진리에 이르게 하는 방편인 거예요. 시조는 선어처럼 간결해요. 요묘(要妙)의 실상을 함축하면서도 격조 높게 표현하고, 절제된 형식미를 통해 민족의 얼, 삶의 양식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이 또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방편입니다!”

시조에만 열정을 쏟아부은 게 아니다. 야생화 축제에 맞춰 시인들을 위한 ‘꽃 문학회’를 여는데 올해 12회째를 맞이했다. 이때 시인들은 모두 신작시를 선보인다. 

“신(神)도, 원숭이도 시는 못 써요. 오직 인간만이 시(詩)를 쓸 수 있어요. 시는 강물처럼 흘러야 해요. 허하고 아린 가슴 시가 적셔 위로해야지요. 시심(詩心) 자라는 세상이 멋진 세상입니다.” 

영축총림 방장에 오른 후 2019년 제정한 영축문학회는 올해 4회째를 맞이했다. 시, 소설, 수필 등 전 장르를 포함하고 작품집도 발간한다. 

“기독교 경전은 ‘성경’ 한 권이지만 거기서 파생된 기독교 문학은 엄청납니다. 반면 팔만대장경을 소유하고 있지만 여기서 파생된 불교문학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요. 문인 육성은 못 해도 독려는 해야지요. 전국 규모의 문학회를 여는 이유가 있어요. 불자만 불교 시 짓고, 불교 소설 써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감정·시각·사상으로 창출된 작품이 더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를 더 깊이 이해하고, 문학의 힘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 않겠어요!”

한시를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건 붓으로 글을 써 보았다는 얘기다. 사경 전시(1983), 서예 전시(1990)를 선보일 수 있는 원천이었을 터다. 2002년 중국으로 만행을 떠나서는 북경화원에서 3년 동안 산수화를 배웠다, 중국 국가 1급 화사인 왕문방의 지도를 받으며 300여점의 작품을 완성해 북경 중국미술관 초대로 개인전까지 열었다. 

“삼절(三絶)이라고 하잖아요. 시와 글을 해 보았으니 그림도 그려보고 싶었지요. 내 생각, 나의 언어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중국에서 펴낸 ‘성파화집’을 본 신항섭 미술평론가의 평은 의미 있다. 

‘그의 산수화에는 조급함이나 욕심이 검출되지 않는다. 속된 욕심을 걷어낸 자리를 찾아 담담하게 움직이는 필선이 한가롭게 느껴진다.’ 

선시(禪詩)에서 보인 선기(禪機)가 화선지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2011년 ‘성파 스님 산수화전’을 감상한 윤범모 미술평론가도 “한마디로 불음이 가득 찬 법계이며 수행승이 이미지로 표현한 깨달음의 세계”라고 평한 바 있다. 

옻과 천연안료를 배합한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독창적인 회화기법도 창안했다. 2003년 세상에 처음으로 ‘옻칠 불화전’을 선보인 후 다음 해인 2014년 ‘옻칠 민화전’을 열었다. 옻이 들어가면 어둡고 둔탁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작품을 마주한 순간 단번에 깨진다. 밝고 투명하다. 성파 대종사의 특유 기법에 따라 질감과 입체감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유화보다 깊은 맛을 내는데 1000년도 버틸 수 있으니 보존문제에서 유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 

“국내외 옻칠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익혔어요. 아예 서운암에 옻칠방을 마련하고 일념으로 작업했지요. 검고 두껍게 덧발라진 옻칠을 깎아내는 건 무지와 삼독을 벗겨내는 일의 다름 아니에요.” 

그렇게 버려 얻은 색은 불성(佛性)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작품 속 ‘금강계단’, ‘적멸보궁’에서 오묘한 서기(瑞氣)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옻은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자연의 순수한 기품과 오묘한 색을 드러내 줍니다. 불멸의 향기도 더해주니 자연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사경에 매진하던 1980년대 초 통도사에 소장된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물 757호)’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기법으로 사경을 하려는데 감지(紺紙)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2년간의 수소문 끝에 동국대 총장인 황수영 박사로부터 전통 한지에 쪽물을 들인 종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복원 원력을 세웠다. (1983) 
 

서운암 천연염색 축제.
서운암 천연염색 축제.

“염색 장인을 찾아가 배워 쪽물을 내는 건 성공했어요. 그런데 한지에 쪽물을 들이면 금방 쳐져서 쓸 수가 없는 거예요. 하루를 못 가요. 알고 보니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가 아니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닥나무 껍질을 베고, 찌고, 담그고, 짜고, 말리는 등 99번의 과정을 거쳐 100번째 장인의 손에 나오는 게 전통 한지입니다. 전문가를 서운암으로 초청해 3년 동안 배웠어요.”

끝내 전통기법에 의한 감지를 재현했다. 당시 섬유전문가들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완벽한 쪽빛”이라고 평했다. 서운암에는 많은 닥나무가 자라고 있다. 한지 연구를 거듭하고 있음이다.
 

조계종 15대 종정 성파 대종사는 “숨을 쉰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자 기적 같은 일”이라고 전했다. 사진=주영미 기자
조계종 15대 종정 성파 대종사는 “숨을 쉰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자 기적 같은 일”이라고 전했다. 사진=주영미 기자

“지상 최고의 보물은 ‘시간’…난, 한시도 허투루 쓰지 않아!”

“내 마음 물들지 않는다”
‘평상심시도’ 삶 영위

언어·문화 동질감 잃어가
남북교류 활성·순례길 기대

야생화 축제에 10만 인파
“꽃 보는 것만으로도 정화”

정견 확립·“휘둘리지 말라”
“매일매일 부처님오신날!”

 

16만도자대장경 경판.
16만도자대장경 경판.

경전은 필사·목판경이 주류를 이루지만 석경도 있다. 목판경으로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대표적이고 석경으로는 중국 방산석경(房山石經)이 유명하다. 하나 더 있다. 도경(陶經)이다. 남북통일과 인류평화의 발원이 담긴 세계 유일의 16만도자대장경 또한 성파 대종사의 손에 의해 빚어졌다. 이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포장(2013), 옥관문화훈장(2017)을 수훈했다.

“분단국가로는 우리가 유일하지요. 두 갈래의 기억을 갖고 살아온 지 벌써 70년입니다. 100년이 지나면 언어도 급격히 달라져 소통하기도 버거워진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민간교류를 통해 언어·문화적 동질감을 잃지 않으려 또는 회복하려 무던히도 애써왔습니다. 이 분야에 관한한 어느 종교계보다 우리 불교계가 성의를 갖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어요. 신계사 복원도 해내지 않았습니까! 남북 주민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불교입니다. 남북 성지 순례길이 하루속히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그 길에서 ‘평화의 꽃’이 피리라 확신합니다.”
 

장경각에 봉안한 세계 유일의 16만도자대장경.
장경각에 봉안한 세계 유일의 16만도자대장경.

도자대장경은 900도의 불로 초벌한 도판에 팔만대장경 인출본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새긴 후 유약을 발라 다시 1200도의 가마에서 구워냈다. 도판 한 면에만 새길 수 있기에 경판은 총 16만 장이다. 1991년 시작해 2013년 서운암 장경각에 봉안되기까지 22년이 소요됐다. 참으로 고된 여정이다.

“부처님 말씀 새기는 일이니 그리 고단할 건 없었어요. 흙의 알갱이를 모두 거른 후 물에 섞어 반죽하고, 하나도 남김없이 불에 태워야 해요. 그래야 흙은 도자기로 다시 태어납니다. 흙 알갱이 하나하나가 번뇌예요. 반죽하는 과정이 의단독로이고, 태우는 건 치열한 정진이지요. 완전히 태우면 열반입니다. 확연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도자기가 불성이고 성불이지요.”

시·글씨·그림·염색·도예를 관통하는 핵심어가 있다. ‘수행’이다. 강원에서 경전을 마주할 때, 선원에서 가부좌를 틀었을 때, 붓을 잡거나 흙을 만질 때도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온전히 지키고 있었음이다. 시·서·화·도예·한지염색 매진은 한 올의 사심, 한 점의 물욕까지 털어내는 치열한 구도행이다. 법납 60년 여정 자체가 정진일로인 것이다. 이것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 입각한 삶을 영위했음을 의미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선원에서 정진하던 30대 초반 내어 보인 일언에서 추론할 수 있겠다.
 

4월이면 16만5289㎡(5만평) 대지에 야생화가 피어난다.
4월이면 16만5289㎡(5만평) 대지에 야생화가 피어난다.

‘내 마음은 맑은 거울 같아 티끌이 비치되 물들지 않는다.(我心如明鏡 照塵不染塵)’
서운암은 ‘꽃 암자’이다. 2001년부터 서운암 주변 16만5289㎡(5만평) 야산에 100여종의 야생화 수십만 송이를 심어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해 왔다. 4월이면 ‘들꽃 축제’를 여는데 10만명이 꽃향기에 젖는다. 저 들꽃. 새벽, 아침, 초저녁, 밤 어느 때 가장 아름답게 다가올까?

“그때마다 이뻐요! 들꽃은 많은 걸 원하지 않아 더 이쁜 것 같아요. 흙 한 줌, 물 한 모금에 만족하며 자신이 간직해 온 색과 향기를 모두 내어 주거든요. 우리 암자에 매년 보시도 해요. 염색할 때마다 보라색, 파란색, 붉은색 등을 통째로 주고는 말없이 떠나갑니다. 그러고도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완벽한 무주상보시예요.”

꽃, 들, 산, 바람, 연못, 시냇물 어우러져 있으니 자연학습장이기도 하다.

“야생화를 보다 이 꽃이 살아 있는 생명임을 새삼 느끼다 보면 ‘나도 살아 있구나’ 하고 웃곤 해요. 숨을 쉰다는 거!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자 기적 같은 일입니다. 웃는 아이, 사진 찍는 청년, 서로 손 잡고 거니는 연인. 손자 어깨 짚어 가며 걸어 올라가는 노인. 그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은색으로 물들고, 검은색을 가까이 두는 사람은 검은색으로 변한다(近朱者赤 近墨者黑)’고 했어요. 잠시 머문 순간에도 정화되고 있음을 직감하지 않을까요?”

법납 60년 여정에 나름의 고난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 극복했을까?

“고난? 즐거움? 이미 지난 일을 왜 기억해요. 저 소나무 봐요. 늠름한 기품 하며 일품이지요? 100년 세월 동안 큰 아픔 한번 없었을까요. 아픈 기억 있다면 숲으로 들어가 화해를 시도해 봐요! 그래도 아물지 않으면 ‘죽었다’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시비가 끊어집니다. 그다음 새 마음 새 출발하는 겁니다.”

종정에 오른 후 첫 교시의 하나로 ‘청규를 따르라’ 했다. 반드시 지켜야 할 항목이 있었던 것일까?

“형법 몇 조 몇 항 지키듯 청규 세부 항목을 지키자는 게 아닙니다. 청규 항목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실천궁행하면 될 일입니다. 우리 모두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 공양받고 헛일하지 말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방일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면 그것이 청규를 올곧이 지키는 겁니다. 산문 밖 지상 최고의 보물로 하나 꼽는 게 있어요. 시간입니다! 저는 세부 계획을 세워가며 일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시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서운암은 고려 충목왕 2년(1346) 충현 대사가 창건한 암자이지만 임시법당 하나 남아 있었다. 삼천불전과 무위선원 등을 세워가며 가람을 중창했고, 손수 대규모 차밭과 과수원,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했다. 30여년 쏟아부은 노동의 결과이다. 

“세간의 사람들도 청규는 지켜야해요. 승객을 안전하게 모시는 게 운전자의 청규입니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어 주는 게 아버지의 청규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게 정치인의 청규입니다.”

빈부·계층·젠더 등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국민 메시지 차원에서 전한 ‘상불경보살’의 가르침이 활로를 열어줄 수 있을 법하다. ‘언제나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보살’ 아닌가. 

“갈등은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마음에서 분출합니다. 겸양의 미덕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양보하는 자세부터 몸에 배어야 한다고 봐요. 평생 동안 길을 양보해도 100보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終身讓路 不枉百步) 조금, 아주 조금만 양보하면 서로 웃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기후위기 대재앙이 엄습하며 ‘자연과 나’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꽃을 키우고 농사짓는 사람은 알아요. 온도의 변화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요. 봄철 꽃 피는 시기도 결정합니다. 평년보다 꽃이 조금 빨리 피거나 더디게 피면, 사람들은 예년보다 꽃을 일찍 보았다거나 다소 늦게 보았다고 말할 뿐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해요. 하지만 꽃과 공생관계에 있는 곤충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입니다. 수분(受粉)해 줄 곤충이 적어지니 식물도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육상 생태계의 교란은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급기야 인간의 식량난까지 불러일으킵니다. 나와 꽃, 곤충 모두 존귀한 생명입니다. 상생하려는 마음 하나가 참 중요해요. 꽃 꺾지 마세요, 그냥 보시고 느끼세요!”
현대인들이 음미해 볼 글귀를 청했다.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구르는 흙덩이를 뒤쫓아 입으로 물지만, 사자는 흙덩이 던진 인간을 찾아 문다(韓盧逐塊 獅子咬人)고 했어요. 진실과 허상을 분간해야 합니다. 수행정진을 통해 나름 체득한 게 있다면 자신이 설정한 길을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걸어갑니다. 옛날 선사들이 한 말에 얽매이거나 무작정 쫓아가지 않아요. 세간의 사람들도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해요. 그래야  한마디 말에 현혹되지 않지요. 선동과 현혹이 난무할수록 사회는 어지러운 겁니다. 내가 바로 서 있어야 사회도 바로 섭니다.”
부처님오신날 메시지도 청했다.

“부처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365일 매일매일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중봉 성파 스님은
1960년 통도사에서 노천당 월하 화상을 은사로 득도. 통도사 강원 졸업 후 ‘한영-운허-홍법’으로 이어지는 강맥 전수. 통도사 강주 역임. 1998년 봉암사 태고선원 수선안거 이래 26안거 성만. 통도사 주지, 제5·8·9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조계종 총무원 교무·사회부장, 학교법인 원효학원 해동 중고등학교 이사장 등 역임. 2000년 서운암 무위선원 개원. 2013년 조계종 원로의원. 2014년 조계종 대종사 법계 품수. 2018년 영축총림 제4대 방장 추대. 2021년 조계종 제15대 종정 추대. 대한민국 국민포장(2013), 옥관문화훈장(2017) 수훈.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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