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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올 봄 꿈꾸며 매일 참회의 기도 올립니다

기자명 법보

교정교화전법단장상 - 이○○

2006년 영어의 몸 되어 많은 날 현실 부정하며 절망의 시간 보내
슬퍼하는 가족 모습에 잘못 깨달아…불서 읽고 공부하며 마음정리
검정고시 합격 대학도 입학…마음공부 통해 행복해지는 법 깨달아

그림=정은주
그림=정은주

2006년 봄. 판사님의 냉랭한 판결을 뒤로 한 채,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버스에 올랐다. 이때까지도 차 창밖 세상이 동경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한 평 남짓한 방. 사방이 까만 일명 ‘먹방’에 갇힌 뒤에야 비로소 긴 한숨과 함께 자유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참으로 처량하고 절망적이어서 이런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더해가고 끝내 정신마저 불안해져 약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흐리멍덩한 상태가 됐으니 차라리 아무 생각도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꽤 많은 날이 그렇게 지나갔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가려는데 벽에 붙어 있는 작은 거울이 손에 닿았다. 얼떨결에 들여다보니 며칠을 씻지 않았는지 눈곱마저 덕지덕지 붙은 때투성이의 얼굴을 약에 취해 반쯤 풀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섬뜩해 놀랐으나 금세 내 자신임을 깨달았다. 스스로 불쌍하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거울을 닦아내며 소리 없이 울었다.

시간은 무의미하게 사라져 갔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시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리길 바랐는지 모른다. 내 자의식이, 내 전부가 사라져 버리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수많은 시간을 보낸 뒤 간신히 여명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5개월도 더 지난 후였다. 그때까지도 자아가 모두 상실된 상태였기에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했고, 육신만이 습관적인 배설을 위해 매일 조금씩 깨어났다.

친누나는 나보다 열 살이 많다. 나에게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 시도 때도 없이 업어 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누나가 업어주면 나는 재잘재잘 수다쟁이가 됐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누나는 정말 예뻤다. 커가면서 동생이 이곳저곳 피워 놓은 말썽을 처리하느라 누나는 분주했다. 지금은 또 이렇게 옥중 수발까지 들고 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초라한 모습의 노년의 여인은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목 매인 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만 연신 닦아내느라 옷소매는 이미 흠뻑 젖어 있다. 허락된 십여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다. 어쩌면 시간이 짧아 다행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눈물도 그만큼 더 많이 흘려야 했을 테니. 너무 울어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누나를 뒤로 한 채 무거운 걸음을 돌렸다. 철부지로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후회스럽고 죄송할 뿐이었다.

방에 들어와서 멍하니 초점 없는 눈동자를 아무렇게나 두고는 가슴 속에 복받치는 슬픔을 애써 참아내려 했다. 하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엄마” 하는 소릴 입 밖으로 토해내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 태어나 가장 오랫동안 울었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내가 면회를 왔다. 만나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스무살에 시집와 두 아이를 낳고 20여년을 함께 살며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서로 의지하며 잘 견뎌 왔는데, 이번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어린 두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이때는 차마 할 수 없었다. 결국 면회를 거부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내는 계속해 찾아왔고, 더 이상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거운 걸음으로 아내 앞에 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내는 더 지쳐 보였다. 야윈 얼굴과 부르튼 입술만으로도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화를 내다가 울기도 하고,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난 그런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돌아섰다. 그 이후 아내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수인이 되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책 읽기다. 평생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이도 이곳에서는 시간을 보내려고 마지못해 한 권쯤은 건성으로라도 읽게 된다. 장르나 작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권해 읽게 되거나, 아무렇게 굴러다니던 책이 갑자기 눈에 들어와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임에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웃음이 지어졌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서 웃는다는 게 창피해 심각한 표정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이내 다시 웃고 말았다. 이렇게 책은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책이 이끄는 대로 웃고, 울고, 화도 내보았다.

점점 책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생겨났다. 이를 통해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 마음먹기에 따라 이곳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될 수도, 또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이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할머니가 되어버린 누나는 늙어가는 동생 수발을 하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심할 때 보라며 경전은 물론 다양한 책을 넣어 주었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책을 보냈지. 아직도 내가 어린애로 보이나….’

그 책은 ‘국사’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책을 펼쳤다. 한줄 한줄 읽어가는데 자꾸만 학창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이건 시험에 꼭 나오니까 밑줄 그어라” 하시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내용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추억여행을 하게 됐다. 단짝인 선호가 장난을 걸어오고, 뒤에 앉은 영필이가 떠들어대는 교실과 학교도 보였다. 그 덕에 잠시나마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2011년 봄,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28년 만에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됐다.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수인이 되고 5년 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정말 잘했다. 정말 잘했어.”

누나도 이 소식을 듣고 축하해 주었다.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도 오랜만이라서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문득 깨달았다. 이날 이후 누나를 기쁘게 해야겠다는 또 하나의 목표도 생겼다. 이곳에서도 나 외에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천수경’에 “죄에는 자성이 없고 마음속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 죄는 저절로 사라진다”고 했다. 수계를 주신 스님이 이를 말씀하시면서 “죄란 생각은 다 거두고 인연 따라 왔으니 인연이 다하면 떠날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인연에 맡기고 뇌세포를 깨우고 맑히며 밝히는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면 이곳에서의 생활도 어느새 지나갈 것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2016년 봄, 10년 만에 아내가 찾아왔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아내가 “많이 늙었네”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순간 설레는 마음이 사라지고 예전에 친근했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손 부여잡고 ‘나 좀 꺼내줘. 나 좀 안아줘’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그동안 하지 못하고 참아왔던 얘기까지 하게 될까 겁이 났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못난 짓을 한 내가 얼마나 미웠으면 10년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십여분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여운이 채 식기도 전에 아내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을 함께 했던 아내가 이제 제 곁을 영원히 떠나겠다고 했다. 그런 아내를 붙잡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아내가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차라리 감사한 일이었다. 모두 부처님의 뜻일 것이다. 참회진언을 열심히 한 덕일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금도 꾸준히 참회진언을 하고 있다.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는 그저 나 자신을 달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어이없게도 가끔 내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운명을 탓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생겨났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한 나머지 머리를 쥐어박곤 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108배를 시작으로 참회진언을 하며 마음을 다잡아 갔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2017년 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이곳 여건상 대학에 들어간다는 게 여간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부처님 전에 기도한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부처님 가피를 입어 입학을 하게 됐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2021년 4년 종합성적 우수자로 당당히 상도 받았다. 

나는 1960년대 후반 어느 봄날에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유독 봄이면 새로운 일들이 많이 생겨나는 듯하다. 어느 해 봄에는 기쁜 일이, 어느 해 봄에는 슬픈 일이 생겼다. 하지만 괜찮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머지않은 봄엔 기쁜 소식이 찾아올 것이다. 

용타 스님은 저서 ‘생각이 길이다’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하면 불행이요, 긍정적으로 인식하면 행복이며, 초월적으로 인식하면 해탈이다”고 했다. 절망뿐이었던 내가 매일매일 참회진언을 통해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는 법도 알게 됐다. 사소한 일에도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매일 지극정성으로 부처님 전에 서원한다.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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