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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의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지원 현장기

기자명 혜민 스님
  • 기고
  • 입력 2022.05.04 17:37
  • 수정 2022.05.04 17:59
  • 호수 1632
  • 댓글 26

혜민 스님, 5월4일 법보신문에 기고 보내와
4월24일 출국해 베를린·폴란드서 구호활동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돕지 않겠습니까”

바르샤바 난민들을 위한 물품 전달. 고담선원 제공
바르샤바 난민들을 위한 물품 전달. 고담선원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으로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고담선원 주지이자 더프라미스 이사인 혜민 스님이 4월24일 출국해 독일 베를린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불교계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 현지 구호 단체 ‘아사달’과 함께 긴급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혜민 스님은 5월4일 폴란드에서 난민지원 현장 활동기를 담은 기고 '힘내라 우크라이나!'를 법보신문으로 보내와 이를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주

 

베를린 중앙역 3번 플랫폼. 우리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자들의 연락책이 되는 단체 메신저 대화방에 따르면 폴란드에서 출발한 이번 기차 편에는 총 71명의 난민이 타고 있다 한다. 녹색 조끼 차림의 나를 포함한 여러 봉사자들은 긴장된 모습으로 그들의 도착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우리가 기다렸던 기차가 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먼저 보이는 난민들은 주로 할머니로 보이는 여성들과 엄마, 그리고 어린아이들이었다. 기차가 멈추자 그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들을 넣은 두세 개의 피난 가방을 들고 플랫폼으로 내렸다. 긴 여정에 몹시 피곤해 보였고 그들의 눈빛은 많이 불안해 보였다.

우리는 다가가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종이에 적힌 우크라이나어 문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나누는 대화였지만, 당장 지낼 장소가 마땅히 없다는 분, 독일의 다른 곳으로 가는 무료 기차표 예약이 필요하다는 분, 핸드폰 충전과 와이파이가 필요하다는 분, 배가 많이 고프고 좀 쉬고 싶다는 분, 당장 쓸 치약 칫솔과 같은 개인 위생용품이 필요하다는 분 등등의 요구에 맞게 그들을 안내했다. 아주 어린 꼬마 아이들은 같이 온 엄마나 할머니와는 사뭇 다르게 지금 이곳이 신기한듯 아주 귀엽게 우리를 바라보았다.

만약 설마설마했던 전쟁이 지금 우리의 이 땅에서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들렸던 반복적인 북한의 으름장이 우리 눈앞에서 무차별 미사일 폭격으로 펼쳐진다면, 그 상황을 목도하는 충격과 공포는 지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지금 그런 충격적인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평범했던 일상은 일순간에 멈춤과 동시에 파괴되었고, 내가 사는 동네, 평소 자주 다닌 길 위에 언제라도 러시아의 폭격을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오직 생존만을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료 물품을 받으러 온 바르샤바 난민 아이.
무료 물품을 받으러 온 바르샤바 난민 아이.

지난 4년간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어온 불교계 국제구호 단체 ‘더프라미스 The Promise’의 부름을 받아 전쟁의 위기 속에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얼마 전 독일 베를린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우크라이나를 떠난 여러 난민과 그들을 돕는 구호 단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고 여러 구호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게 되었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부족한 글이지만 독자 분들과 나누고 싶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설마 러시아가 대규모 전쟁을 시작할까?’라는 의구심을 계속 품었다고 했다. 물론 많이 불안했지만 러시아와의 갈등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었고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의 국지전은 종종 발생했기 때문에, 올해 초 러시아 정부의 강경한 발언들이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크게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임박했다는 미국 정부의 여러 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설마 그럴 리가’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고 했다. 결국 러시아 폭격이 시작되고서야 공습을 피해 단 몇 시간 안에 피난길을 떠나는 짐을 싸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한꺼번에 국경 지역으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 봉사단의 영어 통역을 맡았던 우크라이나 난민, 레아도 이런 말을 했다. 본인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공습 후에야 짐을 싸서 엄마와 함께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지만 계속되는 공습에 보통 30분이면 갈 수 있던 기차역까지 가는 데 8일이나 방공호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고 했다. 막상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서쪽 리브(Lviv)와 폴란드 국경을 향해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간신히 서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고 17시간 동안 가면서 혹시라도 러시아가 기차 철로나 본인이 탄 차량을 폭격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도 떨었다고 했다.

국내외 구호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더프라미스 상임이사 묘장 스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연 재난이 난 곳에 가서 구호활동을 하는 것과 전쟁 상태에 있는 지역의 구호활동이 많이 다르다고 말이다. 아무리 큰 자연 재난이 일어나도 보통 현지 정부 시스템이 무너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나라 다른 지역의 의료 단체가 발빠르게 투입되거나 기존 복지 시스템이 가동되어 그들을 결국 구조해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전쟁 상황에서는 이런 기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병원엔 부상자들로 넘쳐나는데 안정된 의료 용품 수급은 불가능해진다. 전쟁으로 인한 각종 피해와 더불어 그 나라 사람들은 기존 일터 대신 전쟁을 하러 나가거나 피난 행렬로 향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로 보낼 구호품들
우크라이나로 보낼 구호품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을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도와 달라고 우리를 믿고 기부하고 지지해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웠다. 우선 다년간의 경험이 많은 더프라미스 스텝들은 먼저 현지에서 꾸준한 구호 활동을 해온 우크라이나 안의 네트워크를 찾아냈다. 공습이 빈번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피해 중부 도시인 드니프로(Dnipro)에서 3천 명의 동부지역 난민을 돌보고 있는 단체장과 먼저 연결이 되었다. 화상 통화를 나누고 지금 피난처에는 아이들에게 줄 우유와 각종 음식, 다양한 의료품, 개인 위생용품과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불어 우리가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드니프로까지 난민 구호품을 우송할 수 있는 고려인 네트워크를 또 찾아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위험천만한 수송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쪽으로 갈 때는 구호품을 큰 차에 직접 실어 나르고, 반대로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 쪽으로 나올 때는 현지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긴급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고려인이 우크라이나 사람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폴란드에서 대량 구매한 구호 물품들을 담은 운송차량을 몰고 드니프로까지 갈 한국인 3세였다. 아이 셋을 둔 아버지라는 그는 전쟁이 나기 몇 개월 전만 해도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나자 그의 삶도 멈추게 되었고, 평소 인연이 있던 고려인 네트워크의 요청을 받아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이끌림 그가 처한 상황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구호 식품을 받으러온 폴란드 성당 난민들
구호 식품을 받으러온 폴란드 성당 난민들

그와 함께 폴란드에서 가장 큰 창고형 대형마트에 가서 요청한 물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유통 기간이 비교적 긴 멸균 우유와 아이들 줄 분유, 각종 음식들과 의료용품, 장난감과 속옷 등을 우리의 예산 안에서 최대한으로 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로 들어갈 운송차량에 물품들을 적재하고, 다음날 그 차량이 우크라이나로 떠나기 전에 묘장 스님과 나는 그의 안전한 도착을 위해 관세음보살 기도를 드렸다. 부디 그가 아무런 사고나 장애 없이 드니프로까지 잘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더불어 전쟁이 속히 끝나 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빨리 멈추어지기를 발원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와 독일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떠난 난민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대략 300만 명의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우크라이나 거주 외국인들이 국경을 넘었다고 하는데, 삶의 터전을 벗어난 그들의 생활이 결코 편할 수가 없었다. 먼저 심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남은 남편과 아버지, 아들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폴란드나 독일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무작정 탈출한 난민들은 어려운 조건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예를 들어 폴란드 대도시 기차역 근처에는 난민을 수용하는 큰 흰색 텐트가 쳐 있는데 그 안을 보면 그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간이침대가 가득 차 있다. 며칠 간 거기서 머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의 긴 시간 동안 그 안에서 지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내가 베를린에서 만난 난민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몇 년간 유학 생활을 하던 아프리카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전쟁을 피해 탈출했지만 백인 우크라이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다른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서쪽으로 가는 기차를 탈 때도, 국경을 통과할 때도 우크라이나 사람에 비해 2~3배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정말 힘들게 폴란드나 독일에 와 보니 그곳에서조차 그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구조의 사각지대에 놓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는 터브만 네트워크(Tubman Network)와 연결되어 부족하지만 ‘더프라미스’는 이분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법회를 진행 중인 원학 스님.
우크라이나에서 법회를 진행 중인 원학 스님.

바르샤바에서는 현지 구호활동을 돕고 있는 폴란드인 조불 스님을 만나 우크라이나인이면서 숭산 스님의 제자 원학 스님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이 두 분은 각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구조 활동을 하고 계신다. 조불 스님을 통해 500여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성당에 가서 식료품 구조 물자를 전달했는데, 여러분들이 우리에게로 다가와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데 더 크게 못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미안했다. 특히 전쟁 통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난민의 아이들이 이번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우크라이나 언어로 된 책과 티셔츠, 가방을 선물했는데 너무도 기뻐하는 모습에 마음이 복잡하게 울렸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 것 같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지금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면 수년 내로 러시아가 또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바로 끝이 나기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도움을 주는 현 상황을 잘 활용해서 러시아가 또 다시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자국의 피해가 계속 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본인들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긴 미래를 보고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생각이라면 짐작하건대 이번 전쟁은 한두 달 안으로 종식되는 것이 아니고 일 년 이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난민을 위한 배식 봉사를 혜민 스님과 묘장 스님.
난민을 위한 배식 봉사를 혜민 스님과 묘장 스님.

사실 생명은 우크라이나 사람이든 러시아 사람이든 똑같이 소중하다. 만약 한 사람이 내 눈앞에서 부상당해 쓰러져 있다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분별하지 않고 주저 없이 그를 도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전쟁만을 두고 본다면 분명 우크라이나가 약자이다. 러시아 푸틴은 힘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쟁은 지금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돕는 데 마음을 다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선방에서 수좌 생활을 하셨던 폴란드인 조불 스님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떻게 한국 사찰에 계시다가 여기에 와서 난민들을 도울 생각을 하셨냐고. 질문을 받고 조불 스님은 반문하셨다.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돕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이다. 그렇다. 불성은 본래 일체의 차별상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자리지만, 그와 동시에 인연에 따라 묘용을 일으켜 스스로가 이렇게 펼쳐진다. 불성의 입장에서만 보면 허공에 그림을 그린 듯 펼쳐져도 펼쳐진 일이 없지만,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내 앞에 이렇게 또 있는 법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 양쪽 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수행자가 나아가야할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슴으로 응원한다. 힘내라, 우크라이나!

[1632호 / 2022년 5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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