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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희랑대 감원 경성 스님

“일상서 ‘두타행’ 실천하면 무소유·소욕지족 삶 영위해!”


동국대 계율 전공 박사취득
해인사·범어사 등서 정진

값비싼 옷·집·음식 욕심
털어내면 ‘나만의 행복’

깨달음 성취 안주 지양
자비로 구현될 때 가치

좋은 직장·높은 연봉 받으면
배려·양보심 더 키우며 보시

세계 이상기온은 지구 절규
기후위기 방관…인류 무너져

우주법계 생명·사물 ‘부처’
물·바람도 제소리로 법설

“우린 위엄·신통 구족 한 존재
나의 몸짓·언어로 법 전해야”

해인사 희랑대 감원 경성 스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경계에 안주한다면 참된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며 “이 또한 자비를 구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해인사 희랑대 감원 경성 스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경계에 안주한다면 참된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며 “이 또한 자비를 구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의상(義湘) 스님으로부터 본격화된 신라의 화엄학(華嚴學)은 말기에 이르러 남·북악(南·北岳)으로 나뉜다. 화엄사(華嚴寺)를 기반으로 활동한 남악의 대표 학승은 관혜(觀惠)였고, 부석사(浮石寺)를 근간으로 활동한 북악의 대표 학승은 희랑(希朗)이었다.

해인사 주지 소임을 보았던 희랑 스님은 ‘화엄경’을 강했는데, 친분 있던 최치원(崔致遠)은 시 ‘희랑화상에게(贈希朗和尙·총 6련)’를 통해 가야산의 ‘화엄 대종장(大宗匠)’을 찬탄했다.

‘진실한 말 비밀스러운 가르침 하늘이 주었고(天言秘敎從天授)/ 해인의 참된 깨달음 바다에서 나왔네.(海印眞詮出海來)/ 훌륭하여라 바다 한구석에서 깊은 뜻 일으켰으니(好是海隅興海義)/ 그야말로 하늘의 뜻을 천재(天才)에게 맡겼네.(只應天意委天才)’

희랑대 전경.
희랑대 전경.

독성(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본사(本師)로 수행한 희랑 스님은 바위와 소나무 틈 사이에 희랑대를 앉혔다. ‘층층으로 된 바위에 조용히 머물러 선정을 닦고, 축축 늘어진 소나무 사이에서 오고 감이 자유로운’ 나반존자의 삶을 투영시켰음이다.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문화재청]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문화재청]

‘산 깊어 물 졸졸 흐르는 한 칸 난야에서 앉거나 누운 채 소요’한 나반존자는 바위와 소나무 사이로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깊은 뜻 헤아렸던 것일까? 희랑 스님은 비문과 영정을 허락하지 않고 열반에 들었다. 하여 후학들은 그 유지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은사를 기억할 묘안을 내었다. 나무, 삼베, 종이, 옻 등을 절묘하게 사용하여 희랑 스님 노년의 생생한 모습을 완벽하게 조성했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실존 스님의 진영 조각상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국보)’이다.

협소한 공간 속의 희랑대를 증·개축한 중창주는 보광 성주(普光 性柱 ·희랑대 조실) 스님이다. 그 곁에서 묵묵히 감원 소임을 보며 암자에 배인 희랑대사의 숨결을 잇고, 불자들의 기도 정진을 도와 온 스님은 지엄 경성(智嚴 京性) 스님이다.

아버지가 병고로 돌아가셨다. 부친의 부재에서 비롯된 혼돈과 방황.  사춘기에 접어들며 ‘모든 존재는 소멸해 버린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 단견(斷見)은 어느새 공포마저 초래했다. 그때 어머니가 새벽마다 독송하던 ‘금강경’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 어떤 고정불변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품고 가야산에 입산했다.(1979) 은사는 월천 혜총(月泉 慧聰) 스님과 맺어졌다.

해인사 궁현당 앞.(1984)
해인사 궁현당 앞.(1984)
범어사 청풍당 대나무 숲. (1988)
범어사 청풍당 대나무 숲. (1988)

 

해인사 강원과 율원을 나와 중앙승가대(불교학 전공)와 동국대 대학원(계율 전공)을 졸업했다. 해인사, 범어서 등의 선원에서도 정진했다. 현재 해인사 율주이자 희랑대 감원이다.

경성 스님 저서 ‘버리고 덜어내고 닦고 나누기’
경성 스님 저서 ‘버리고 덜어내고 닦고 나누기’

2016년 산문집 ‘버리고 덜어내고 닦고 나누기’를 선보였다. 월간 ‘해인’지에 연재한 글을 담았는데 법랍 40년 율사의 사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풍요로운 삶 속에서도 정신적 공허함을 안은 채 인간다움을 상실해 가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좌표를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특히 두타행(頭陀行)의 필요성을 역설한 점이 이채롭다.

‘소욕지족은 번뇌와 집착을 대치하는 전통적인 불교 지침이다.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필요하고 요긴한 것만을 소유하여 지나친 과소비에 대응하자는 무소유의 실행과 다르지 않다. 소욕과 지족은 두타행을 통해 일상의 생활에서 실현 가능해진다.’

두타행이 참된 만족과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다는 뜻이다.

“두타는 털어낸다, 털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묻어 있는 탐욕과 진에와 우치를 털어버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 지침이 두타행입니다. 전반적인 생활지침 12가지가 있는데 분소의(糞掃衣), 걸식(乞食), 아란야(阿蘭若)가 대표적입니다. 분소의는 의복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이고, 걸식은 음식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하심과 전법을 구족 하는 본연의 공양법입니다. 소박하고 조용한 곳에서 수행에 전념하라는 조처로 아란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승가에서는 가능한 일이지만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실천하기엔 부담스럽다. 경성 스님은 ‘유가사지론’이 제시한 두타행을 전했다.

“많은 옷을 소유하려는 다의탐(多依貪), 아름답고 비싼 옷을 입으려는 미의탐(美依貪)을 줄여가는 것으로 분소의 두타행을 대신합니다. 많이 먹으려는 다식탐(多食貪)과 산해진미의 뛰어난 미각을 과시하는 미식탐(美食貪)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걸식 두타행을 대신합니다. 웅장한 집에 머물려는 옥개탐(屋蓋貪)과 좋은 침구와 가구를 사용하려는 와구탐(臥具貪)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란야 두타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운동을 통해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처럼, 일상에서 두타행을 실천해가면 소욕지족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010년 무렵 영미권에서 등장한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와 결이 같아 보인다.

“일맥상통합니다. 미니멀 라이프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해 본 결과 소비가 미덕이 아니고, 영원히 소유한다는 것도 불가하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삶의 방식입니다. 반면 두타행은 전제조건이나 경험 없이 탐진치를 털어버리려는 자발·능동적으로 일어난 획기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과학 문명이 준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반면 생명을 경시하는 폐단도 커지고 있다. 율장에 함의된 생명관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율장을 비롯한 전체적인 불교 생명관의 원칙과 핵심은 모든 생명과 존재를 향한 연민과 구제의 ‘자비’입니다. 5계(五戒)에서도 생명을 위협하거나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계’가 우선입니다. 생명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일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기 때문입니다. 도둑질이나 거짓말도 살아 있어야, 즉 생명이 전제되어야 가능합니다. 지혜, 깨달음을 성취한 경계에 안주한다면 참된 지혜·깨달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자비를 구현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지혜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자비가 가능하지만, 자비로 구현되지 않는 지혜는 생명력도 없고, 진정한 가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이 코로나19를 초래했다. 그 이기심을 다스리려면 무엇부터 살펴야 할까?

“인간의 편리와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자연을 개발하고 환경을 보호한다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개발이 아니라 훼손·파괴이며, 보호가 아니라 참견·만용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만적인 고정관념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인간은 만물의 일부분이며 구성원입니다.”

희랑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방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비닐 사용 전면 금지도 시행하고 있다.

“이상기온, 대홍수, 폭우는 ‘지금 너무 아파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지구의 절규입니다. 방관·외면하면 결국 사라지는 건 지구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나도 하고 너도 하면 전 인류가 하는 겁니다. 희랑대는 평평하거나 넓은 도량이 아닙니다.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층층이 계단식으로 마련해 나무를 심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랑이 도량’이 되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이렇게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은 도량 정비 목적뿐 아니라 지구를 돌보고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편하고 넘치는 풍족함을 누리는 만큼 지구의 몸살은 가중됩니다. 불편을 감수하고 부족한 상태로 만족할 줄 알아야 열받은 지구도 안정될 수 있다는 이치를 항상 잊지 않고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말로 지구에 거주할 자격이 있습니다.”

1997년 가을 희랑대에 왔으니 25년을 머물렀다. 이 암자를 찾은 불자들이 무엇을 안고 돌아갔으면 하는지 궁금했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와튼스쿨 역대 최연소 종신교수인 석학)는 저서 ‘기브앤테이크’에서 먼저 양보하고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걸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경제성이 함축돼 있습니다. 승가에서는 보상을 바라거나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무주상보시를 전제로 합니다. 회향 차원으로 격상한, 순수한 배려·양보입니다. 좋은 대학·직장·직업을 갖고 풍족하게 살아가겠다는 단순한 희망을 너머야 합니다. 좋은 직업, 높은 연봉 받을수록 어려운 사람들을 더 돕고, 더 아낌없이 나누겠다는 원력을 세웠으면 합니다.”

희랑대 솔숲 오솔길.
희랑대 솔숲 오솔길.

“소나무 숲을 스친 봄바람이 상쾌하다”고 하니 “가야산 숲에서 잠시라도 홀로 머물러 보라”했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부처님이 법계에 가득하다.’ 우주 법계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불위신연묘법(佛威神演妙法), ‘부처님의 위엄과 신비한 능력으로 미묘한 법을 설한다.’ 꽃, 나무, 물, 바람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사물들은 부처로서의 위엄과 신통을 구족하고 법계의 구석구석에서 저마다의 몸짓과 언어로 미묘한 법과 진리를 설하고 있습니다.”

소동파도 “계곡 흐르는 냇물 소리 부처님의 장광설(溪聲便是長廣說)”이라 했다. 언제쯤 ‘산색 그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山色豈非淸淨身)’임을 알 수 있을까! 경성 스님이 한마디 일렀다.

“우리도 위엄과 신통(佛威神)을 구족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내 언어로 진리를 표현하고 전하는 방편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살피면 길이 보일 것입니다.”

솔숲의 맑은 바람이 또 한 번 스쳐 간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경성 스님은
1979년 해인사로 입산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과 율원을 수료한 후 해인사·범어사 선원에서 참선정진 하다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계율 수행을 구현하고자 중앙승가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계율을 전공했다. 의식주 생활에서 소욕과 지족의 무소유를 실천하는 두타행이야말로 청정한 지계의 근간이자 수행의 지침이라는 것에 주목한 결과 청정한 계율의 수지를 보장하는 두타행에 매진하여 2004년 ‘불교수행의 두타행 연구’로 동국대학 불교대학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계종 단일계단과 중앙승가대, 동국대학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강의했다. 현재 조계종 단일계단 계단위원과 조계종 해인총림 해인사 율원에서 율주(律主) 소임을 맡아 계율을 전공하는 스님들을 이끄는 한편 희랑대 감원을 맡아 대중과 가람의 外護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저서로는 ‘버리고 덜어내고 닦고 나누기(올리브 그린)’가 있다.

[1632호 / 2022년 5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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