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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익의 『사명대사』

기자명 윤창화
  • 불서
  • 입력 2004.03.22 13:00
  • 댓글 0

불자들에게 긍지 심어준 역사소설

출가 수행-구국의 삶 수행자 표상처럼 보여

초심자들 ‘선풍’ 일으킨 1960년대 베스트 셀러



내가 이종익 선생(19 12~1991)의 소설 『사명대사』를 읽은 것은 입산한 지 3년쯤 되던 1968년(17세) 여름이었다. 해제를 얼마간 남겨 두고 지객 소임을 맡고 있던 스님이 하루는 걸망을 정리하고 있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정기적인 예행연습이었다.

<사진설명>1992년 간행된 개정판.

그 스님은 좀 지적(知的)이었다. 나이는 꽤 위였지만 몇 달 간 한 도량에 살면서 나는 그 스님을 좋아했다. 적막한 산중에서 그런 스님은 흔치 않았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그 스님은 책 한 권 내밀었다. 소설 『사명대사』였다. 소설이니 문학이니 하는 말이 왠지 낯설고 어색하게 들렸던 문화의 벽지에서 한 권의 책은 내용을 떠나서 반갑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몇 달 동안 정(情)도 들었으니 그 책은 울적한 내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밀양부사의 딸 윤낭자(동옥)와 임응규(사명)의 슬픈 러브스토리, 스승의 딸 ‘현옥’이의 순정,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천애(天涯)의 고아가 되어 황악산 직지사로 입산하는 임응규, 여인사건으로 동료로부터 누명을 쓴 채 추방당하는 사명대사 유정, 한마디로 유정의 10대는 너무나 슬픈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마치 비련의 당사자나 된듯 애잔한 감상과 분개에 젖어 틈만 나면 읽고 또 읽었다. 기어이 내 눈앞에는 밀양의 영남루가 아련히 서 있었고 강가의 수양버들이 봄바람에 흩날렸다. 비명에 죽은 윤낭자의 호곡 소리가 대나무 숲 사이로 이명(耳鳴)이 되어 들려 왔다. 직지사에서 쫓겨난 뒤 영취산 바위 아래에서 고행하는 유정의 모습은 훌륭한 수행자의 표상이 되어 상념 속에 각인되었고, 승과에서 “청정본연(淸淨本然)커니 운하홀생산하대지(云何忽生山河大地)리오”하고 강하게 반문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도통한 스님,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 날 밤 날이 새자마자 당장 인적 없는 골짜기로 들어가 도통하기 전에는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다. 결심은 3일도 못되어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내 생에 처음으로 느꼈던 종교적 신앙심이었다. 강렬한 구도적 욕망과 승려생활에 대한 의지, 인간적인 진한 감동을 주었던 소설 『사명대사』는 벽촌 아이의 이상향이었다. 아마 당시 이 책을 읽었던 스님 치고 나와 같은 감동을 받지 않은 스님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사명대사의 생애와 사상, 애국 등 여러 면모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부모, 형제, 사랑하는 여인 등 세속적인 인연을 끊고 출가 입산하여 시기와 질투, 누명을 참으면서 한 인격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승려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민족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 공(功)을 세웠지만 3일만에 영의정 자리를 그만두고 수행자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진정 불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무소유의 삶이 아닐 수 없다.

작자는 동대 불교대 교수로서 일찍이 입산하여 26세 때에 유점사 강사를 지냈고, 일본으로 유학, 임제대학과 대정대학에서 불교학을 연구했으며, 정화 때에는 보조국사 종조론의 기치를 든 이였다. 본격적인 소설가도, 문학을 수업한 적도 없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감동적으로 잘 썼는지 생각만 해도 의아스럽기만 하다.

물론 지금의 소설적 시각으로서는 통속적인 소설이라고 평할지 모르지만 그런 문학적 평가를 떠나서 불교인, 특히 입산한 초심자들에게 이 책은 신심과 긍지를 심어준 ‘마음의 책’이었다. 대단한 감동과 선풍을 일으켰던 소설 『사명대사』는 1960년대 불교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였다. 1963년 법통사 간.


윤창화/민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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