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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융합 깃든 ‘사이버 화엄도량’ 기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5.23 11:09
  • 호수 1633
  • 댓글 0

각황전·화엄석경 품은 천년 고찰
‘디지털 화엄사지’ 교계 이목 집중
메타버스 시대의 ‘롤 모델’ 절실

지리산 화엄사와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화엄사의 기록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지털 화엄사지’를 제작한다. 유수 사찰의 기록유산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구축되는 건 화엄사가 처음이다. 

화엄사는 우주의 만물이 홀로 있지 않고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한다는 화엄사상이 깃든 도량이다. 각황전, 화엄석경, 석등, 동·서오층석탑, 사사자삼층석탑 등의 보물과 천연기념물 제1040호로 지정된 올벚나무 등 불교문화의 정수가 집약된 찬란한 유산을 올곧이 간직해 온 천년 고찰이다. 

수많은 고승대덕도 배출했다. 신라에서 고려에 걸쳐 명망이 높았던 도선국사는 화엄사에서 출가해 화엄학을 배웠다. 화엄사로 출가한 낭원, 정행, 형미 스님 등은 신라 말의 불교계를 이끌었다. 후삼국 시기 희랑 스님(북악 화엄)과 쌍벽을 이뤘던 관혜 스님(남악 화엄)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화엄사상을 펼쳤고, 대각국가 의천도 이 도량에 들러 화엄학을 융성시킨 연기조사를 추모했다.

조선의 숭유억불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36개 사원만 존속할 수 있었던 선교 양종 시대에도 살아남아 불교 전통을 단절시키지 않고 불조의 혜명을 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큰 위기를 맞이했을 때 절에 남아 있던 승려들은 승병을 조직해 왜적에게 대항했고, 일부는 지리산 토굴에 의지한 채 도량을 지켰다. 물론 피해는 컸다. 화엄사에 침입한 왜적은 당우를 불태웠고, 승려들도 학살했다. 장륙전(현 각황전)의 ‘신라 화엄석경’이 산산이 조각난 것도 이때다. 화엄사 범종마저 배에 실어 일본으로 가져가려 했으나 결국 섬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침몰했다. 범종이 빠져 용두만 보였다 하여 ‘용두리’로 불린다. 

임진왜란 당시 팔도총섭이 되어 승군을 독려해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로 ‘국일도대선사’, ‘대화엄종주’ 예우를 받았던 벽암 대사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화엄사를 중건했다. 31본산에 포함된 1924년 즈음에는 각황·대웅·원통·명부·나한·영산전을 비롯해 탑전, 응향각, 만월당, 구층·봉천·내원·보적·상원암·금정·사성암 등이 서 있는 명찰로서의 위상을 당당히 하고 있었다. 

다양한 창건·중건 설화와 보물들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천년의 세월 속 고찰의 흥망성쇠.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룰 수 없는 소중한 화엄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메타버스로 구현한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닌데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맡는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rchives of Buddhist Culture) 구축 사업을 2012년부터 진행해왔다. 사찰·기관·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불교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발굴한 후 고화질 디지털 영상으로 촬영해 원천 데이터를 보존했고, 조사한 자료 원전의 원문을 입력하고 번역·해설하여 디지털 아카이브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 인터넷과 스마트미디어를 통해 서비스함으로써 불교문화유산의 보존은 물론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 왔다. 동국 불교학술원이 그동안 보여준 성과와 아카이브 구축·활용은 이미 정평 나 있다.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로 진화하는 작금의 시대에 종교문화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 시스템 확장으로 비대면 문화가 형성되면서 신앙 형태는 더욱 빠르게 변할 전망이다. 따라서 뉴미디어 세대가 네트워크를 통해 불교에 접근하게 하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형식의 법회와 문화생활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특성까지도 담은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기반 불교문화 시스템 구축은 절실하다 하겠다. 

전국의 유수 사찰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롤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사이버 세계를 구축할지도 막막한 게 사실이다. 화엄사와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디지털 화엄사지’에 교계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지털 화엄사지’는 이르면 내년 1월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공개 시기는 다소 늦어도 괜찮다. 조화·상생·융합 정신을 입체적으로 응축한 멋지고도 장엄한 ‘사이버 화엄도량’을 마주하기를 기대한다. 

[1633호 / 2022년 5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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