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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교화 펼치다 순교한 선과 교의 대종장

  • 출판
  • 입력 2022.06.20 13:46
  • 수정 2022.06.26 18:35
  • 호수 1637
  • 댓글 0

환성지안 선사
무각 지음 / 운주사
344쪽 / 2만2000원

한국불교 법맥 존속시킨 환성지안 스님에 대한 첫 연구서
저술·선시 분석으로 생애·사상·선종사적 의미 새롭게 조명

당대 ‘화엄학’의 일인자로 손꼽힌 환성지안 스님 진영. 
당대 ‘화엄학’의 일인자로 손꼽힌 환성지안 스님 진영. 

환성지안 스님(喚醒志安, 1664~1729)이 일반인에게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불법이 어떻게 전승됐는지에 관심을 갖는 순간 ‘환성지안’이라는 불세출의 고승은 거대한 산맥처럼 다가온다. 

태고보우에서 청허휴정으로 이어지는 선의 적통을 계승한 대선사이며, 통도사, 대흥사, 금산사, 백양사 등 전국 각지를 종횡무진한 화엄의 대종장이기 때문이다. 선종 5가의 핵심적인 개념을 정리하고 스님이 직접 견해를 피력한 ‘선문오종강요’는 백파긍선, 초의의순, 추사 김정희, 우담홍기, 축원진하 등을 중심으로 100여년간 펼쳐진 선 논쟁의 근간이 됐다. 용성 스님이 자신은 환성지안 스님을 원사(遠嗣, 동시대인이 아니라 직접 배우지 못하고 정신으로 계승하는 것)했다는 선언을 비롯해 근현대 수많은 고승들이 그의 법을 이었음을 공표했다.

이 책은 그 중요성에 비해 지금껏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지안 스님의 삶과 사상을 다룬 첫 연구서로 저자인 무각 스님(여여선원 선원장)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존하는 지안 스님의 저서인 ‘선문오종강요’와 ‘환성시집’을 중심으로 그 속에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선사상, 오도의 세계, 원융무애한 행적을 다각적으로 살피고 있다. 모두 8장으로 전체적인 개괄과 함께 스님의 생애와 가풍, 저서, ‘선문오종강요’에 나타난 선리 및 선교관, ‘선가귀감’과 ‘선문오종강요’의 내용 비교, ‘환성시집’에 나타난 선사상, 교화와 실천수행 및 선종사적 의의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안 스님의 교화행이다. 기록에 따르면 스님의 거처는 일정하지 않았으며 가는 곳마다 스님과 불자들이 모여들었다. 선지(禪旨)를 굴리면 높고 우뚝하여 천길 낭떠러지와 같았고, 교학은 논하면 요지가 현묘하고 의문이 없도록 풀어주었다고 한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함경도 등 각지에 스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중 영호남에는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725년 환갑을 넘긴 지안 스님이 금산사에서 화엄법회를 개최했을 때 1400명이 모이는 성황을 이루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설법을 듣고 환희심을 일으키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지안 스님이 당시 불교계 안팎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금산사 법회의 성공적인 개최는 눌려 지내던 조선의 불교인들에게 자긍심과 희망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유림의 질시와 경계로 이어졌다. 법회가 끝나고 얼마 뒤 관에서 스님을 이인좌의 난에 연루됐다며 호남의 옥에 가뒀다. 뒤늦게 이인좌와 관련 없음이 밝혀졌지만 관찰사는 무죄는 불가하다며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다. 스님은 그곳에 도착한지 7일 만에 입적했다. 제자들에게 임종게를 남기지 못한 채였다. 

저자는 허응보우 스님(虛應 普雨 1509?~1565)이 불교를 되살리려다 제주에서 순교했던 사건과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본다. 유력한 불교 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불교의 재흥을 막겠다는 집권층 유생들의 집념으로 인해 스님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지안 스님의 순교 등을 근거로 근래 일부 조선불교 연구자들이 현종(1641~1674) 시대에 궁중의 정업원과 자수원을 폐지한 이후 공식적인 억불정책이 없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조선왕조 전반에 걸친 유교 신봉 이데올로기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며, 왕에 따라 그 정도가 달랐을 뿐 억불 상황은 조선후기 전반에 걸쳐 행해졌다는 것이다.

‘환성시집’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저자는 144편의 선시를 자세히 분석하고 그 안에 담긴 선사상을 화엄, 법화, 화두선 등으로 분류했다. 이를 통해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종지로 중생교화의 삶을 살다간 참스승이었음을 조명한다.

이렇듯 저자는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이어온 지안 스님의 선사상과 위법망구의 삶을 새롭게 밝히고 드러낸다. 또한 조선후기 불교계를 풍미한 스님의 교화 행적으로 통해 오늘날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시한다. 책 말미에 스님의 계보 및 관련 사항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들과 관련 사진들도 자료적 가치를 더한다.

한편 저자 무각 스님은 서울 승가사 상륜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무문관 등 제방 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했다. 동국대대학원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BBS불교방송에서 ‘선어록 강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과 치유 세계’ 등 저서가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37호 / 2022년 6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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