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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야 이창구 전북불교대학 학장

재화를 갖지 않는 게 아니라 소유물에 집착 않는 것이 무소유

무소유는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갖지 않는 것
소유 했던 모든 것 미련 없이 세상 환원한 사람 많아
법정 스님 삶‧가르침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남

일야 이창구 전북불교대학장은 “무소유는 재화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며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몇 해 전 어느 잡지사로부터 ‘무소유와 풀소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무소유와 풀소유는 과연 대립 관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반대 개념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해도 얼마든지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다간 인물들도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은 없으면서도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무소유의 정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법정 스님의 생애, 특히 마지막 유훈을 통해 이를 음미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법정 스님은 젊은 시절 6.25 전쟁이라는 참화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과연 삶이란 무엇이며, 죽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님은 경남 통영에 자리한 미래사(未來寺)에서 출가를 하게 됩니다. 당시 그곳에는 효봉학눌(曉峰學訥, 1888∼1966)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는데, 스님은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종정(宗正)을 지낸 고승이었습니다. 오늘날 법정 스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무소유는 효봉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였습니다.

법정 스님은 승려이면서 동시에 타고난 문필가였습니다. 스님은 당시 대강백으로 알려진 운허용하(耘虛龍夏, 1892~1980) 스님과 함께 불교 경전을 번역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1971년에는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 참여하여 함석헌 목사,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유신철폐 운동을 펼쳤습니다. 불교가 개신교나 천주교에 비해 사회 참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정 스님이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 증오의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승려인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런 물음을 던진 스님은 모든 활동을 멈추고 조계산(曹溪山) 작은 암자에서 수행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곳이 바로 송광사(松廣寺) 불일암(佛日庵)입니다. 법정 스님을 유명하게 만든 저서 ‘무소유’를 비롯하여 ‘산에는 꽃이 피네’ ‘텅 빈 충만’ 등을 집필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스님은 많은 책을 쓰면서 문필가의 자질을 여지없이 발휘하게 됩니다.

법정 스님이 유명해지면서 불일암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수행하고 글 쓰는 입장에서는 그리 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스님은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깊은 산골로 몸을 옮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회와 완전히 단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교 시민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설립하여 이 사회를 청정하게 만드는 일에 진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길상사(吉祥寺)를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길상사를 세웠지만 법정 스님이 주로 지낸 곳은 강원도 오두막이었습니다. 정기법회가 있을 때만 서울로 오고 대부분의 시간은 산골에서 수행과 집필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오두막 편지’라는 작품은 그곳에서 쓴 글을 모아 출간한 책입니다. 그리고 2010년 어느 이른 봄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요 속으로 들게(入寂) 됩니다. 수행자의 맑고 향기로운 기운이 묻어나는 스님의 유훈 가운데 일부를 소개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법정 스님의 베스트셀러 ‘무소유’에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상태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게 만든 일성입니다. 저는 오래 전 이 말에 꽂혀서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실천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세탁기 없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문명 기기가 필요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비록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일상에서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문득 떠올라 선택한 것입니다. 두꺼운 외투나 겨울 이불을 빨래할 때면 세탁기를 살까 하는 유혹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때로 그 무슨 청승이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고 손빨래를 수행 삼아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습니다.

무소유가 불교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소유는 본래 자이나교에서 강조하는 계율입니다. 그들의 철저한 무소유 정신에 비한다면, 불교는 명함 내밀기도 힘들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옷도 소유물이라 생각해서 벌거벗은 채로 생활합니다. 인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거리를 다니는 수행자를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이 바로 자이나교 사문들입니다. 우리에겐 민망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어느 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는 실천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자이나교 교단이 분열된 것도 바로 옷 입는 문제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인도의 북부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흰 색 천으로 만든 얇은 옷을 걸쳐 입었는데, 남쪽의 보수 교단에서는 그것이 무소유 계율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이나교 교단은 흰 옷을 입는 백의파(白衣波)와 아무 것도 입지 않는 공의파(空衣波)로 분열하게 됩니다.

옷의 소유 문제로 자이나교가 분열된 모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무소유를 지나치게 외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무소유 정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화의 크기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있어도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얼마든지 무소유의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을 바라보는 마음, 즉 집착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법정 스님의 삶, 특히 마지막 모습을 보면 스님이 무소유 정신으로 살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은 자신에게 남은 재산이 있다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사용해달라는 유훈을 남기고 시간과 공간을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났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했다면 나올 수 없는 언어인 것입니다. 요즘말로 참으로 쿨하게 고요 속으로 떠난 셈입니다. 문득 2015년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한 이인옥 할머니의 명언이 떠올랐습니다.

“돈은 똥이다. 쌓이면 악취를 풍기지만, 흩어지면 땅을 비옥하게 한다.” 

음미할수록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명언입니다. 할머니는 가진 것을 모두 다른 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정작 자신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생활한 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돈마저 아끼고 아껴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무소유 정신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존경의 마음이 절로 이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소유한 돈을 나누어서 사회를 비옥하게 만든 할머니와 같은 분도 있지만, 돈에 대한 집착으로 악취를 풍기는 이들 또한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풀소유라고 할 만큼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다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했다는 것입니다. 모두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돈이란 어떻게 써야 가치가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돈을 쓰는 모습에서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돈은 인성을 확인하는 믿을만한 도구인 셈입니다. 무소유란 결국 재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었던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세상과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주변 사람들에게 다비식 같은 것은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몸 하나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저 산골 오두막에 남아있는 땔감으로 화장을 하고 남은 유해는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것이 죽어서나마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입니다. 삶을 잘 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모습입니다. 스님은 참으로 잘 살다 잘 간(善逝) 수행자였습니다.

무소유의 아이콘은 그렇게 떠났지만 스님이 남긴 무소유의 정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귀한 가르침으로 남아있습니다. 몇 해 전 송광사 가는 길에 불일암을 들러 법정 스님을 뵙고 왔습니다. 스님의 유해는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 모셔져있는데, 여전히 무소유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 맑고 향기로운 기운이 제 마음도 비옥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정리=신용훈 기자 boori13@beopbo.com

이 내용은 일야 이창구 전북불교대학장이 6월5일 불교대학 일요법회에서 설한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637호 / 2022년 6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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