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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행 이옥선(지혜장·51) -  상

기자명 법보

둘째아들 대안학교 진학한 후
일 없자 “난 쓸모없다” 자괴감
명상하며 내 삶 소중함 깨달아
나 자신 사랑하기로 마음 먹어

지혜장·51
지혜장·51

진짜 나로 살게 된 이야기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불자인지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절에 가서도 불상 앞에서 삼배를 올리기보다 사찰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 산책을 즐긴다. 사찰보다 산과 들의 자연에 더 경외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자 했지만 아직 어렵게만 느껴진다. 청소를 하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님의 제자처럼 나도 쓸고 닦으며 수행하는 편이 더 낫겠다 싶다. 스님들을 만나면 존경심은 들지만, 어린아이나 욕심 없이 웃는 노인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니 내가 불자라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 같아서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불교를 처음 접한 건 어릴 적 엄마를 통해서였다. 엄마는 열심히 절에 기도하러 다녔고, 가끔 어린 나를 절에 데려갔다. 하지만 나는 절을 하고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가족의 복만 비는 것 같아 부정적이었다. ‘부처님은 사람들이 돈을 내거나 절을 하면 자신 혹은 가족들의 복을 빌면 들어주는 그런 분이 아닐 텐데’ 그래서 맛있는 음식과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부처님오신날이 아니면 절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 10년 전 쯤 우연히 한 불교수행단체를 알게 되며 불교인연이 시작됐다. 자기 수행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보시와 봉사를 실천하자 참된 수행자의 모습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 같았다. 6년 동안 불교대학에도 등록하고, 날마다 108배를 하며 수행·보시·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매일 아침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묵언 명상도 하며 나의 업식이 많이 씻겨 내려감을 경험했지만 몸과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여러 일로 몸이 바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길 새가 없었다.

직장·종교활동·아이들 돌보는 일이 내게는 너무 버거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그 많은 일들을 내가 어떻게 다 하고 다녔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 불교단체를 그만두었다. 그래도 재가 수행자로 살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늘 가슴속에 새기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이 학교를 자퇴했다. 아들을 돌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아들이 지인의 소개로 대안학교에 진학하자 나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졌다. 매일같이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뛰어다녔는데, 갑자기 찾아온 고요함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니 너무 좋았다. 그러나 곧 불안이 밀려왔다.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뭐라도 할 일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득 땅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벌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론가 열심히 기어가고 있는 저 벌레가 나보다 더 쓸모 있어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인 걸까?” 하지만 견뎌보기로 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진정 누구인지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나보다 남이 더 행복하기를 비는 그 명상이 훌륭하다고 생각해 실천에 나섰다. 어릴 적부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교육을 받아왔기에 내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늘 남을 먼저 챙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명상을 시작하며, 내 마음 속 어딘가가 크게 불편했다. 남을 사랑하며 살려는 나의 삶에 정작 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 불행했던 것이다. 그것을 ‘마음의 씨앗’이라는 마음공부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살고 있었구나! 

수행 생활에 대단히 큰 반전이었다. “이제는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행복해야 그 행복이 남들에게도 자연스레 전해짐을.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들도 사랑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때 나와 남이 동시에 성불한다는 ‘자타일시성불도’가 소원인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을지 몰라 막막했다. 이해하기로는 ‘나와 남이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로 내가 불도를 이루면 남과 나를 둘이 아닌 실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 길이 결코 이기적인 것이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1637호 / 2022년 6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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