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 지하철 이용 시민들에게 감동과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준 풍경소리의 ‘포교 게시판’이 전면 교체된다. 올해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2년에 걸쳐 서울 수도권을 비롯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780곳 역사의 2547개 ‘포교 게시판’의 액자와 내용을 새롭게 바꾼다. 1999년 시작했으니 23년 만에 새 단장 하는 불사인데 어떤 글과 말씀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벌써 기대된다.
지하철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무료함을 견디다 글 판을 발견하고 무심코 읽던 시민들은 한 발 더 다가가 지긋이 바라보며 사유에 잠긴다. 산사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에 바람이 닿으면 청아한 소리가 울리듯, 글 판에 시선이 닿으면 인식의 대 전환을 일으키는 ‘깨달음의 종소리’가 울린다.
누군가는 장용철의 ‘인생의 일기’에서 슬픔과 고통 너머의 평화를 읽었다. ‘삼일은 춥고 사일은 따스한 삼한사온의 겨울 날씨처럼 우리들 인생도 그와 같이 행복과 불행한 날들이 번갈아 듭니다. 두 가닥 새끼줄이 같은 굵기로 꼬여야 튼실한 것처럼 인생살이도 고통과 기쁨이 엮여서 더욱 건강하고 알차게 됩니다.’ 또 누군가는 법정 스님의 ‘깨어있는 시간’에서 지혜를 얻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시간의 잔고는 아무도 모른다. … 보다 값있는 시간을 활용하라.’ 또한 누군가는 ‘자기 자신은 즐겁고 풍족하게 살면서 늙은 부모를 모시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에의 문이다.(숫타니파타)’ 대목에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풍경소리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던 고 김원각 시인은 생전에 풍경소리의 지향점을 이렇게 피력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휴식을 줍니다. 산사의 풍경소리가 그러하듯이 소리치며 강요하지 않는 언어, 소박하지만 영혼을 맑혀주는 언어, 침묵의 공간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지친 영혼과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그늘진 곳에 스며드는 햇살과 같이 사람들 가슴 속에 생각의 뜰을 가꾸어 주길 바랍니다.”
시, 수필, 경구, 선구 등 주옥같이 빛나는 글이 23년 동안 새겨졌다. 5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4000여편의 글을 선보였다. 화가와 전각작가들의 솜씨가 돋보인 간결하고도 명료한 삽화는 글의 이해와 깊이를 더했다. ‘포교 게시판’ 자체가 경전이고 문학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찰과 도서관, 지하철역에서 ‘풍경소리 게시판 전시회’ 요청이 쇄도했는데 2009년에는 전국 지하철‧철도 역사 300곳에서 ‘나를 찾는 지혜’를 주제로 ‘희망 나눔’ 전시회를 개최했을 정도다. ‘포교 게시판’은 지하철과 터미널을 넘어 병원, 교도소, 구치소, 보호감찰소 등으로도 확대됐다. 문서 포교의 백미이자 불교사에 길이 남을 불교문화 운동이다.
‘포교 게시판’ 하나가 걸리기까지는 글과 삽화 선택, 인쇄, 부착 등 상당한 공정이 필요하다. 비용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절감은 하지만 절대 부족은 필연이다. 풍경소리 불사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후원금과 전국의 유수 사찰‧조계종중앙신도회‧생명나눔실천회의 협찬, 풍경소리 이사들의 분담금으로 충당했다. 그리고 천연비누, 액자, 양초, 연등을 제작 판매하여 부족분을 채웠다. 재정적 난관에 직면했음에도 특정 사찰이나 단체로부터의 ‘거금’은 정중히 사양해 왔다. 풍경소리의 자유‧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깊은 고뇌 끝의 결단이었을 것이다.
풍경소리가 추진할 ‘포교 게시판 새 단장’에 필요한 불사금은 대략 1억5000만원이다. ‘거금’은 또 사양할 것이다. 이 불사의 목적에 눈을 돌려 보자. ‘불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일반 시민에게 부처님 말씀을 알기 쉬운 언어로 전달하여 평화롭고 자비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일반 회사인과 자영업자는 물론 가톨릭 등의 이웃 종교인들도 후원하고 있다. 나누는 것이 참된 행복이고, 다툼‧차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조성하자는 운동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불자들의 수희동참을 기대한다. 1구좌 5만원으로 여는 정토세상이다. 올해부터는 후원인이 원하는 글귀를 담은 ‘포교 게시판’을 원하는 장소에 부착할 수도 있다.
[1638호 / 2022년 6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