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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어려움, 갈등 그리고 혐오

기자명 남춘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년여 간 코로나로 겪은 어려움이 이제는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로 인한 원자재 수급 차질, 급격한 물가 상승, 기준금리 인상 등 힘든 시기를 예고하는 뉴스뿐이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즐겨하는 짜장면 가격이 오른 것으로 실감하며, 경유값이 부담돼 출항을 포기했다는 고등어선단의 이야기는 우리의 친척 누군가의 이야기일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더 불안한 것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부풀었던 시장의 거품이 터지면 기업은 도산하고, 구조조정의 압박은 높아질 것이다. 언제 상황이 악화될지 모르니 신규채용은 급속히 얼어붙을 것이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 간의 관계는 위축되고, 근로의 질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성장이라는 장미빛 희망을 꿈꾸던 시장이 불안에 잠식당하면 휘청거리고 주저앉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이나 목격한 바 있다. 

한국은행 총재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부, 한국은행, 기업 등 특정 영역의 주체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복합 위기 상황에서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다 같이 피해를 감내해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희망적인 모습은 현실에서 잘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나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갈등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갈등상황이 발생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악화된 상황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가령 이주노동자나 중국교포가 서민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선동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갈등이 높아지면 혐오가 되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갈등과 혐오는 다른 것이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갈등 상황의 행태는 혐오의 그것과 비슷할 수 있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약간의 갈등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며 문제의 해결과정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달리 혐오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일시적이고 광기어린 화풀이에 불과한 것이다.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Carolin Emcke)는 혐오의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이라는 성격에 주목한다. 동질성은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것이고, 본연성은 최초부터 그랬을 것이라는 신화적인 개념이다. 순수성은 이러한 본연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즉, 혐오는 “저 집단은 우리 집단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는 문제를 일으키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거야. 그러므로 저들을 빨리 추방해서 우리 공동체의 순수성을 지켜야 해”라는 광기의 외침인 것이다. 이런 광기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과 장애인이 희생되었고, 관동대지진에서 우리 선조가 학살당했다. 혐오가 팽배할 때마다 인류의 문명이 후퇴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혐오 현상을 조장한다는 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튜브같은 매체를 통해 혐오 발언이 여과 없이 전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이에게 불성이 있다고 설파한다. 불성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고, 그래서 모든 이는 부처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혐오에 맞서서 모두가 불성을 가진 존재이며, 모두가 변화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살인마 앙굴리말라가 수행자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붓다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겨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의 생각이나 성향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 때문에 차별하고 배제하고 혐오해서는 안 된다. 인류 문명은 같음과 다름이 공존하고 화합하면서 성장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namchoonho@naver.com

[1638호 / 2022년 6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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