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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 글로벌웹진 ‘뉴스로(NEWSROH)’ 대표기자

불교문화유산은 민족 화합‧평화 통일로 가는 중요한 가교

2018‧2019년에 네 차례 방북, 직접 사찰 참배하고 취재
스님들 삭발하고 사찰에 상주 등 불교 고유 모습 회복 중
불교 복원노력 인상적…관심‧교류확대가 평화통일 첩경

로창현 ‘뉴스로’ 대표기자는 최근 북한 불교 현황을 전하며, 불교 고유의 모습을 찾아가며 불교문화 복원에 관심 갖는 상황을 설명했다.
로창현 ‘뉴스로’ 대표기자는 최근 북한 불교 현황을 전하며, 불교 고유의 모습을 찾아가며 불교문화 복원에 관심 갖는 상황을 설명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기자로 35년간 생활했습니다. 한국에서 16년, 미국에서 16년, 최근 3년간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뉴욕의 원각사라는 절을 다니고 있습니다. 원각사도 이곳 홍법사와 비슷한 자연 속에 있는 대도량입니다. 대부분의 미주 지역 사찰은 도심의 작은 포교당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원각사는 상당히 넓습니다. 한 30만 평 되니까 미주 최대 규모의 도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불교가 미국에서 그만큼 넓은 부지를 차지한 도량이 있고 역사도 48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평양의 모습과 북녘 불교’입니다. 저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네 차례 방북하여 북녘을 취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직접 여러 사찰을 참배할 수 있었고 북녘 스님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북녘 사찰과 불교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제가 직접 보고 취재한 북녘 불교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북녘에는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500곳이 넘는 사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돼 현재는 50여 곳의 사찰이 남아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북녘 스님들이 대부분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출퇴근하는 형식으로 지내셨는데 남북 불교교류를 통해서 옛 모습을 찾아갔습니다. 이제는 북녘 스님들도 100% 다 삭발하시고 있으며 절 안의 요사채에서 기거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만큼 불교 고유의 모습을 많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교류도 교류지만 우리 불교계는 북녘 불교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특히 우리 스님들과 불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습니다. 물론 남북 불교교류의 영향도 있지만 유명한 산마다 아름다운 대찰들이 있었기 때문에 북녘 사람들에게도 절은 굉장히 익숙한 곳입니다. 비록 불자의 비율이 높지 않더라도 불교 자체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아마 여러분께서 가시면 큰 환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제가 직접 가보았던 북녘 대표 사찰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북녘 불교, 특히 평양 불교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량이 정릉사(定陵寺)입니다. 동명왕을 다 아실 겁니다. 동명성왕, 즉 고주몽은 고구려의 시조입니다. 북에서도 정릉사는 1970년대 김일성 종합대학교 고고학과 학생들의 발굴을 통해서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출토된 기와를 봤더니 정할 정(定), 릉 릉(陵) 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주몽의 묘는 한 차례 이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장을 하고 나서 능을 지키는 하나의 사당처럼 만들어졌다가 규모가 커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능을 지키는 절이라고 하여 정릉사가 되었습니다.

정릉사에 가기 위해서는 동명왕릉부터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명왕릉에는 고주몽이 활의 달인이었음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또 이곳에 가면 무척 신기한 풍경이 있습니다. 절하는 나무들입니다. 능을 중심으로 양쪽의 소나무들이 한, 두 그루가 아니라 10여 그루가 절을 하는 모습입니다. 일부러 구부렸다고 생각하기 힘든 이 절하는 나무들은 아마도 왕을 모신 곳이니까 나무들까지도 이렇게 예를 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또 저는 보진 못했는데 동명왕릉 뒤에는 온달 장군의 묘도 있다고 합니다. 동명왕릉에서 나오다 보면 왼쪽에 광활한 땅이 나옵니다. 이 뒤로 복원된 정릉사가 있습니다. 자그마한 구멍들은 모두 옛 사찰 건물들이 있던 자리로 추정됩니다. 규모로만 보면 황룡사를 능가하는 부지라고 합니다.

북쪽은 대부분 고구려 사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고구려 역사를 물려받은 곳이니까 당연한데 사실상 남쪽에서는 고구려 사찰을 찾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신라와 백제 유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 양식도 조금씩 다른 면들이 있습니다. 이곳도 완전히 출토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온전한 복원은 어렵기에 중요한 시설만 복원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정릉사에 들어가면 1탑 3금당이라는 고구려 양식의 사찰 구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가운데 탑이 있고 세 개 전각이 둘러싸듯이 위치합니다. 왼쪽 서금당 극락전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동금당 용화전에는 미륵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8각7층탑이 있습니다. 탑 역시 한국전쟁 때 다 파괴되어서 옛 모습을 복원한 것인데 고구려 양식은 맞습니다만 사실은 나무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북에는 물자 등 여러 가지가 부족하니까 모양은 똑같이 복원했으나 시멘트와 돌로 복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불자들이 힘을 모아서 제대로 된 고구려 탑을 복원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대웅전 격인 보광전에는 석가여래부처님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법당에서 보는 부처님의 상호와는 약간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엄격해 보이기도 한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정릉사.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정릉사.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그다음으로 광법사(廣法寺)라는 고구려 최초 사찰이 있습니다. 서기 372년 소수림왕 때 아도화상에 의해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광법사는 서기 392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안타깝게도 대웅전은 한국전쟁 때 불타서 복원한 것입니다. 옛 모습은 아니더라도 북에서는 중요한 사찰입니다. 평양에서 가까운 대성산에 있어서 평양 주민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이곳에 고구려 시대의 사찰을 입증하는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 주지스님께서 나오셔서 사찰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해탈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대웅전이 나오고 탑도 있습니다. 대웅전에 들어가서 삼배를 올릴 때 느낀 환희심이 생생합니다. 광법사 주지스님과 부주지스님께서는 제가 해외에서 온 동포라니까 우리 일행을 위해서 예정에는 없던 ‘반야심경’을 독송하면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또 북녘 사찰에서는 신도들을 만날 일이 많지 않은데 광법사에서는 신도로 보이는 보살님도 뵐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같은 불자라고 말씀드리니까 굉장히 반가워하셨습니다.

광법사 주지스님(오른쪽)과 부주지스님.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광법사 주지스님(오른쪽)과 부주지스님.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이어서 소개해 드릴 사찰은 평양 인근 룡악산의 법운암(法雲庵)이라는 암자입니다. 제가 갔을 때 울력을 하시던 주지스님께서 급하게 달려와 도량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곳 역시 고구려 사찰입니다만 오랜 역사 속에서 수차례 불이 났음에도 복원을 거듭할 만큼 굉장히 오래되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찰입니다.

평양에는 영명사(永明寺)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때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법운암은 영명사의 부속 암자로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부속 암자치고는 삼성각, 독성각, 칠성각이 다 있는 어엿한 사찰의 모습을 지닌 암자였습니다. 도량 내 계단은 대부분 고구려 시대 때 축조한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우리에게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독립운동을 하시기 직전 2년 동안 스님으로 출가 생활을 하셨을 때 바로 이 암자에서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법운암의 경우 조계종에서 단청 불사를 지원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도량입니다.

평양 법운암.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평양 법운암.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그다음에 소개할 사찰은 황해도 사리원 정방산의 성불사(成佛寺)입니다. 성불사는 우리가 아는 유명한 가곡 속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이은상 선생님께서는 1931년 성불사 청풍루에서 잠을 자다가 풍경소리에 잠을 못 이루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그 시를 가사로 하여 홍난파 선생님께서 곡을 붙인 노래가 ‘성불사의 밤’입니다. 사실 성불사는 남쪽에도 세 곳이나 있고 정작 이은상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있는 성불사라고 지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불사가 ‘성불사의 밤’ 무대가 되는 도량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방산 성불사에는 아주 특별한 전각이 있습니다. 대웅전 격으로 극락전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불에 타서 새로 복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응진전은 남북을 통틀어서 목조 건물로는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고려 시대 충숙왕 때 지어져 다행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응진전에는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성불사도 전쟁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됐었지만 2004년 뜻있는 남녘 스님과 불교도의 보시로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보물 같은 사찰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정방산 성불사 5층석탑 뒤로 이은상이 풍경소리에 잠못이뤘다는 청풍루가 보인다.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정방산 성불사 5층석탑 뒤로 이은상이 풍경소리에 잠못이뤘다는 청풍루가 보인다.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그다음으로 보현사(普賢寺)를 소개하겠습니다. 보현사는 여러분께서 무척 잘 아실 겁니다. 보현사는 북녘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쪽에는 삼보사찰이 있습니다. 북에서는 아마 삼보사찰을 다 합친 위상이 바로 보현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고려대장경을 모시고 있고 부처님 사리도 모시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서산대사께서 평생을 주석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보현사 수장고에는 5000여 점의 유물들이 있다고 합니다.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의 종까지도 모셔왔습니다. 유점사가 금강산에 있었는데 역시 한국전쟁 때 불타면서 종이 땅속에 반쯤 파묻혔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크게 손상되진 않아서 보현사 쪽으로 이운해 보존되고 있습니다.

남북 불교도가 함께 그 종을 친 행사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현사는 경치가 무척 좋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보현사에 또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수충사(酬忠祠)입니다. 수충사의 사는 절 사(寺) 자가 아니라 사당 사(祠) 자입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승병을 일으킨 스님들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보현사 대웅전에서 주지스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를 올리는 모습.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보현사 대웅전에서 주지스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를 올리는 모습. 사진제공 뉴스로(NEWSROH).

‘명산 고찰’이라는 말이 있듯이 북녘의 수려한 산마다 사찰들이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불교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북에서도 소중히 기려지고 복원에 힘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남북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연결된 우리 불자들이 민족 화합과 평화 통일을 위한 중요한 가교가 될 수 있음을 다시한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조만간 남북 불교교류의 물꼬가 트이길 바랍니다.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염원으로 남북 불교 교류가 더욱 확장될 때 평화 통일의 길도 성큼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강의는 6월16일 부산 홍법사에서 개최된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경남본부(본부장 정관 스님) 제21차 평화통일특강’에서 재미언론인 로창현 뉴스로 대표기자가 ‘달라진 평양의 모습과 북녘 불교’를 주제로 강의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38호 / 2022년 6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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