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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애제자가 가려 뽑고 평론 덧댄 미당의 웅숭깊은 심미안

  • 불서
  • 입력 2022.07.02 11:21
  • 수정 2022.07.02 15:32
  • 호수 1639
  • 댓글 3

서정주 시의 사계(총 4권)
윤재웅 지음 / 동국대 출판문화원 / 170쪽 안팎 / 각 9800원

서정주 시 1000여편 중 사계절 관련 시 24편 선별해 상세한 설명
“스승이 끌고 제자가 밀어 올려 만든 역작”…6월29일 출판기념회

‘남산에서 미당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6월29일 오후 7시 동국대 중앙도서관 3층에서 열린 ‘서정주 시의 사계’ 출판기념회는 미당 시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자리였다. 사진은 윤재웅 교수가 미당 서정주의 ‘부활’을 낭송하는 모습.
‘남산에서 미당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6월29일 오후 7시 동국대 중앙도서관 3층에서 열린 ‘서정주 시의 사계’ 출판기념회는 미당 시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자리였다. 사진은 윤재웅 교수가 미당 서정주의 ‘부활’을 낭송하는 모습.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은 ‘살아있는 한국 시사(詩史)’ ‘시선(詩仙)’ ‘두보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일제에 저항해 퇴학까지 당한 미당에게서 친일시가 발견되며 평가가 엇갈렸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 아래 곳곳에서 미당의 시비(詩碑)가 철거됐다.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작가 박완서도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겪은 칭송과 폄하, 영예와 치욕에 동의하여 고개 숙인 적도 침 뱉은 적도 없지만 어느 한 계절도 그의 시를 떠올리지 않은 계절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미당은 첫 시집 ‘화사집’부터 마지막 ‘늙은 떠돌이의 시’까지 1000여편의 절창을 선보임으로써 한국어가 어느 정도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그의 영토를 밟지 않고 시를 말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여 미당을 ‘시의 정부(政府)’로까지 숭상했던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서정주의 시의 사계’(총 4권)는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의 미당을 위한 헌정이며, 그 자체로 빼어난 작품이다. 그는 미당의 대표작마다 치밀하고 유려한 평론을 덧대었다. 미당의 문학세계 전반과 삶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쓸 수 없는 그만의 통찰이다.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미세한 심상들을 간파하고 선별해내는 혜안과 정성이 놀랍다.

책 구성도 돋보인다. 미당의 전체 작품을 대상으로 각자가 품고 있는 계절의 빛깔들에 따라 분류했다. 그렇게 ‘봄에, 그렇게 느끼려고 애쓸 적에’ ‘그녀, 나뭇잎처럼 초록초록 빛날 때’ ‘서리 내리면 국화꽃으로 돌아올게’ ‘첫눈이 날 위로해줄까’의 네 권이 엮어져 ‘서정주 시의 사계’라는 총서를 완성했다.

윤 교수는 미당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마지막 애제자다. 박사학위논문으로 ‘서정주 시 연구’를 쓴 미당 전문연구자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로서 그는 스승의 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미당 선생님의 언어구사력에 필적한 ‘예쁜’시는 꽤 있을지 몰라도, 그처럼 ‘깊은’ 시는 좀체 찾아오기 어렵다. 풍성한 제재, 간절한 감정, 일상 구어를 문화재의 반열에까지 올려놓는 모국어 운용 솜씨는 개인사의 빛과 그림자를 초월한다.”

미당은 철마다 피는 꽃들, 계절의 사소한 변화까지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정성스레 살피고 노래함으로써 고귀한 생명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미당의 시에 우리의 아름다운 사계절과 인생의 깊숙한 비밀이 가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산에서 미당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6월29일 오후 7시 동국대 중앙도서관 3층에서 열린 ‘서정주 시의 사계’ 출판기념회는 미당 시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자리였다. 동시에 좋은 시란 감동적인 시이고, 감동은 보편성과 진심에서 나옴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학교법인 동국대 출판문화원이 주최하고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후원으로 미당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 100여명이 함께 했다.

미당 서정수 시인. 동국대 출판문화원 제공.
미당 서정주 시인. 동국대 출판문화원 제공.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동국대 출판문화원 제공.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동국대 출판문화원 제공.

미당 연구자인 휘민 시인의 사회로 저자와의 대담, 시낭송, 노래 등 순서로 진행됐다. 시를 선별하고 각각 상세한 해설을 붙인 윤 교수는 미당 시에 대한 느낌, 미당과의 만남, 미당 시를 연구하게 된 계기 등에 대해 들려주었다.

“매혹적인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당 시인의 작품 앞에 서면 많은 시인과 평론가들이 찬탄하죠. 그런데 나중에는 점점 절망하게 되요. 시대의 천재들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와 닿거든요. 미당은 20세기 한국 최고의 시인입니다.”

시인들은 김태연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맞춰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어울리는 미당의 시 한 편씩을 낭송했다. 박판식 시인은 ‘풀리는 한강가에서’, 정재율 시인은 ‘신록’, 휘민 시인은 ‘국화 옆에서’, 박소란 시인은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을 낭송했다. 이들 시인은 미당 시에 대한 생각들도 얘기했다.

“매 학기마다 서정주 시선을 교재로 써왔는데 이번에는 학생들과 뒤에서부터 읽어보았어요. 저는 후반기 시는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명시들이 되게 많았어요. 윤 교수님 말씀처럼 저도 한때 저런 위대한 시인이 돼보리라 속으로 욕심을 냈었지만 안 될 것 같습니다.”(박판식 시인)

“저는 20대 후반인데 미당 선생님의 시를 아주 좋아합니다. 젊은 세대의 감성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미당 선생님의 홍보대사가 되려고 합니다.”(정재율 시인)

“도서관 책을 정리할 때 1972년 출판된 미당 선생님 책을 사서 저희 서가에 꽂아두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미당 선생님의 시를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어요. 미당 선생님의 시는 제게 아주 특별합니다.”(휘민 시인)

“방금 제가 낭송한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을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언어의 문화재’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미당 선생님의 시에 적합한 말인 것 같습니다.”(박소란 시인)

4명 시인의 시 낭송에 이어 소프라노 이정화 성악가가 강형진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단장의 바이올린 등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미당 시에 곡을 붙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였다. 다시 시낭송이 이어졌다. 미당의 시를 ‘추앙’한다는 배우 정경순씨의 ‘추천사(鞦韆詞)’, 장석남 시인의 ‘진영이 아재 화상’, 이연숙 시인의 ‘자화상’, 윤 교수 며느리 허유민씨가 남편 윤큰품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춘 '밀어'를 각각 낭송했다. 특히 장석남 시인은 ‘진영이 아재 화상’에 대해 “미당의 많은 시가 그렇듯 이 시에 대한 해설을 100매도 쓸 수 있을 정도로 광맥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면 볼수록 참 멋진 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윤재웅 교수가 '화사집'에 실린 마지막 작품인 ‘부활’을 격정적으로 낭송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미당의 시가 오늘날까지 두루 읽히고 감동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윤 교수는 그 힘이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정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당이 계절마다 남긴 시들에서도 삶의 보편적이고 진지한 문제들이 층층이 서려 있다. 이 책은 눈물겹고 감미로우며 웅숭깊은 심미안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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