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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 공장일 전전하다 뇌출혈로 죽음문턱

  • 상생
  • 입력 2022.07.02 20:53
  • 수정 2022.07.04 11:34
  • 호수 1639
  • 댓글 0

미얀마 출신 양묘나잉씨 가족 부양 위해 한국행 택해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병원비 5000만원 ‘막막’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양묘나잉씨는 갑작스런 뇌출혈로 이제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미얀마에서 온 양묘나잉(46)씨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정착한지도 19년. 그러나 그는 중환자실에 아픈 몸을 누이고 있다.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이 악물고 버틴 이주노동자에게 남은 건 이제 병든 몸뚱이뿐이다.

한국에 오기 전 양묘나잉씨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건축학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당시 대학 진학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졌다. 이제 가족의 생계는 고스란히 첫째인 양묘나잉씨가 떠안게 됐다. 다행히 친구의 추천으로 동네에 있는 벽돌제조공장에서 근무하게 됐다. 벽돌공장일은 생각한 것 이상 고됐다. 기계가 아닌 수작업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만드는 방식이었다. 체력소모가 상당해 퇴근 무렵이면 녹초가 됐다. 힘들 때마다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묵묵히 공장을 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일해도 입에 겨우 풀칠 할 정도였다. 몇 년 동안 죽자 사자 일했지만 월급은 계속 제자리였다. 결국 친구와 함께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1년간 한국어 공부, 업무 교육을 받으며 한국행 준비에 매달렸다. 집에 와서도 지친 몸을 일으켜 책을 봤다. 그렇게 e-9 비자를 획득한 양묘나잉씨는 2003년 9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 서구에 정착한 그는 플라스틱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첫 번째 공장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공장 내부는 열기로 가득해 눈을 뜰 수 없었고, 안전장비는커녕 마스크 한 장도 착용할 수 없었다. 다른 건 어떻게든 견뎌냈지만 녹은 플라스틱에서 풍겨나는 독한 냄새는 참을 수 없었다. 심할 때는 토하고 쓰러지기도 했다.

몇 년 뒤 플라스틱 공장에서 나와 월급을 더 받을 수 있는 회사를 찾아다녔다. 자동차 부품공장, LED 조명회사 등 여러 공장에 몸 담았다. 온갖 궂은일을 전전한 결과 5년 전부터 지금의 가구공장에 새롭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주어진 업무는 합판 조립이었다. 합판을 빠르게 이어 붙여야 하기에 잠시도 한눈을 팔수 없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종일 서서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숙련된 노동자인 양묘나잉씨조차 버거웠다. 그러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그 일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동생들의 수입만으로는 부모님 병원비와 약값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고국인 미얀마가 군부 쿠데타로 사정이 악화되면서 생활비를 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을 보면서 가족 걱정에 뒤척이는 밤도 늘어갔다. 그러던 5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양묘나잉씨가 쓰러졌다. 한순간 눈앞이 아득해지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크게 부딪혔다. 부상을 입은 그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종합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병원측에서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양묘나잉씨의 수중엔 돈이 없었다. 부득이 간단한 처치 후 동료들과 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자신을 돌보지 못한 자책감,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미얀마에서 자신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들로 괴로워했다.

이대로 무너져내릴 수는 없었다. 며칠 후 양묘나잉씨는 다시 가구 조립 레일 위에 섰다. 고통들을 참아가며 일에 매진했다. 그러나 불행이 그를 다시 덮쳐왔다. 또 다시 쓰러졌다.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했다. 뇌출혈이었다. 한 차례 전조증상이 있었음에도 그냥 넘긴 것이 문제였다. 당시에 대해 양묘나잉씨의 동료는 “드라이버를 든 손이 갑자기 멈추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때 머리를 바닥에 심하게 부딪쳐 의식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료진은 “이번에는 의식도 없고 머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져 당장 큰 병원에서 수술 받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전신마비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양묘나잉씨는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혼수상태였던 그는 수술 뒤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나 한두 마디 말조차 버겁고, 여전히 몸도 가누기 어렵다. 그렇게 양묘나잉씨의 일상은 6월에 멈췄다.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당장 지불해야할 병원비 5000만원이다. 내 것이라곤 가져본 적 없이 가족을 위해 청춘을 바친 그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다. 회사 동료들과 미얀마 법당에서 자체 모연을 통해 1000만원을 마련했지만 남은 병원비 4000만원은 막막하기만 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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