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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 스님

부처님의 지혜와 원력‧가피를 불러오는 것이 바로 기도 

번뇌 망상 떨치고 몸‧마음 편안한 니르바나가 최상의 행복
우리는 이미 행복한 존재이니 남과 비교 말고 행복 느끼길
끊임없이 기도 정진하면 부처님 지혜 얻고 행복한 삶 가능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 스님은 “수행은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수행해서 깨닫는 것과 함께 인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 스님은 “수행은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라며 수행해서 깨닫는 것과 함께 인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 저는 ‘니르바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장기간 이어지는 코로나로 인해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있고, 행복하기보다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번뇌 망상을 다 떨쳐버리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니르바나’라고 합니다. 또 ‘열반’이라고도 합니다.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이 있는 최상의 행복한 상태가 열반일 것입니다. 

열반이란 괴로움, 분노, 망상, 분별, 집착, 시기 등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최고 상태에 도달한 경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취멸(吹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불행과 절망과 번뇌와 망상의 불을 다 꺼서 그야말로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을 현대적 의미로 ‘영원한 평안’ ‘완전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이 됐든 열망이 됐든 내면의 삶이 편안하지 못하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루에 거울을 몇 번이나 보십니까. 또 누구를 위해서 보십니까. 나를 위해서 보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뭐가 묻지 않았나, 모양새가 어떻게 됐나 등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거울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여러 번 거울을 보면서 진정으로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쁘고 힘들게 살다 보면 거울은 고사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고려 시대 이규보라고 하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장난삼아 지었다는 ‘소정희작(炤井戱作)’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부대청동구(不對靑銅久) 오안막기수(吾顔莫記誰) 우래방소정(偶來方炤井) 사석초상지(似昔稍相知); 오래도록 거울을 안 보았더니, 내 얼굴도 이젠 알 수가 없네, 우연히 우물에 비친 모습을 보니, 전에 어디서 본 듯한 녀석일세.’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거울을 수없이 보면서도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 마음이 지금 어떠하고 어떤 상태인지 살필 새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살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면 진정한 열반이나 행복은 내 마음을 바르게 살펴서 잘 관리하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소 여러 법회에서 법문을 합니다. 법회 때마다 다른 법문을 하려니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말합니다. ‘법사는 법석에서 수행을 한다.’ 여러분에게 “좋은 마음을 쓰세요” “좋은 마음을 가지세요” “보시를 하세요” “도와주세요”라고 하면서, 정작 제가 안 도와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음이 아프고, 좀 찔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법사는 법석에서 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제가 법회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행은 관리다”라는 말입니다. 수행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에게 항상 이렇게 답을 하는데, 수행은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30년, 40년을 수행한다고 해도 인격이 형성되지 않고 제대로 삶이 관리되지 않으면 그런 수행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수행은 관리라고 말합니다. 수행해서 깨닫는 것과 함께 인격도 갖춰져야 하는 것입니다. 

인격이 갖춰지지 않는 깨달음이라면, 굳이 깨닫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수행이나 기도 정진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계속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108배 한두 번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계속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앞서 ‘행복’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행복한 존재입니다. 너무나 많은 행복의 조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요즘 흔한 말로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이전과 비교하면 이미 진 것과 같습니다. 나와 남을 비교했기 때문에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교하기 전에는 행복했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지 비교하고 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무수한 행복의 조건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데, 그 새는 하늘을 알까요. 물고기가 물속을 마음대로 헤엄치면서 사는데, 물고기는 과연 물을 알까요. 우리가 행복함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행복은 느끼는 자의 것입니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재화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느 신문에서 4인 가족이 식당에서 고기와 냉면을 먹었더니 44만원이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물가가 올랐다는 이야기였고, 그래서 외식하기도 힘들어졌으니 웬만하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이미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불편하고 좋지 않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때문에 인생에서 습관이 중요합니다. 생각과 몸도 습관이 중요한 법입니다.

대만에 불광산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 불광산사 복도에 ‘애호상주물 여호안중주’라는 글이 있습니다. 내가 먹고 사는 것은 물론 공공의 물건들을 모두 상주물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상주물을 아끼고 보호하여 소중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내 눈의 눈동자를 지키고 보호하듯이 이 생활용품을 아끼고 보호하라는 말입니다.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대사는 또 ‘삼호운동’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좋게 하자는 운동입니다. ‘좋은 말을 하자’ ‘좋은 일을 하자’ ‘좋은 마음을 쓰자’가 그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뢰야식이라고 하고, 팔식이라고도 합니다. 무엇이든 내 마음에 들어오면 절대 잊지 않고 기억을 했다가 다시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종자식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기억은 종자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과거 내 마음속에 어떤 DNA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스님의 좋은 법문, 경전의 좋은 가르침 한 구절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기만 해도 그것이 바로 영원히 종자가 되어서 악도에 떨어지지도 않고 다음에 좋은 인연을 만나면 발현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의 제사를 지낼 때도 그 영가에게 부처님 말씀을 일러드리는 것도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으로 바른 마음을 가지고 가야만이 극락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교 제사는 음식을 올리고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어서 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좋아하고 화를 싫어합니다. 어느 것이 화이고 어느 것이 복인지는 잘 모릅니다. 내가 지금 복을 받고 살아도, 그 복이 앞으로 화가 돼서 돌아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복이 화로 변하는 경우도 있고, 화가 오히려 복으로 변해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화는 독이 의지하는 곳’이고 ‘독은 화가 숨어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잘 먹고 잘살고 재산도 많아 부유하게 살고 있지만 언제 화가 들어올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독은 화가 숨어 있는 곳이고, 화는 복이 의지하는 곳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온다.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라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즐겁게 살다 보면 나중에는 또 괴로운 일이 생깁니다. 저는 가끔 템플스테이에 중‧고등학생들이 참가하면 “3년 괴로울래 30년 좋을래, 3년 좋을래 30년 괴로울래”라고 묻고는 합니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기는 하겠지만 3년을 잘 참고 지내서 이후 즐겁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라는 뜻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시도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가피를 받습니다. 신심은 믿는 마음입니다. 부처님이 항상 나와 함께 계시다고 하는 것을 믿는 마음이 신심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런 부처님을 나에게 불러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부처님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지혜를 불러오는 것이고 부처님의 원력을 불러오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피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기도를 하면 부처님의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쓰는 것이고, 부처님의 신통을 쓰는 것이고, 부처님의 원력을 내 것으로 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내가 부처님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반야도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야는 지혜이고, 도태는 걸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로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나쁜 것들을 싹 골라내고 좋은 마음과 좋은 것들만 가지고 쓰고 살아가는 것을 반야도태라고 합니다. 한강의 발원지는 우통수라고 하는 작은 샘인데, 그 샘물이 결국 바다를 이룹니다. 샘에서 나올 때는 겨우 작은 잔에 넘칠까 말까 하는 정도의 작은 양이지만, 이것이 멈추지 않으니 결국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이렇게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면 됩니다.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3년 묵은 쑥을 구하려고 9년을 허비하지 않고 지금 볕에 쑥을 말려 3년 뒤에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듯, 지금 바로 기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빠도 지금부터 기도를 시작하시면 그 가피로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 삶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윤지홍 대구 지사장

이 법문은 5월30일 대구 팔공산 파계사에서 열린 초하루 법회에서 경기도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39호 / 2022년 7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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