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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기회 박탈한 ‘사형제 위헌’ 마땅하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7.19 11:23
  • 호수 1641
  • 댓글 0

국가가 사람의 생명을 빼앗나
공익성 전제해도 ‘합법적 살인’
형벌 목적이 ‘응보’여서는 안 돼
교정‧교화 통한 사회복귀에 초점

“국가가 한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범죄자 한 사람에게 사회가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이 맞는가?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일치된 과학적 연구 결과도 없다.” 

“사형은 인륜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엄중한 제재를 통해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적 차원의 ‘심리적 위하(위협)’를 통해 일반예방(一般豫防) 한다.”

헌법재판소 역대 세 번째 ‘사형제도 위헌 심판’ 공개 변론에서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과 사형제 유지를 주장하는 법무부 대리인이 팽팽하게 맞섰다. 2시간 정도로 예정됐던 변론은 격론이 펼쳐지며 5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양측의 변론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중 하나는 ‘생명권’이다.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서고 침해가 허용되지 않는 ‘절대 기본권’으로 본 청구인 측은 “사형제는 생명권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국민생명 보호 등 중대 공익을 지키기 위해 제한이 가능한 ‘일반 기본권’으로 본 법무부 측은 사형제 유지를 강변했다. 

사형이 ‘복수’냐 ‘정의 실현’이냐에 대한 공방도 있었다. 청구인 측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야만적 복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은 “죄의 경중과 형벌의 경중은 비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의 실현 차원에서 보더라도 중대한 불법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헌재가 올해 안으로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공익성을 전제한다고 해도 사형이 ‘합법적 살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서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빼앗는 모순이 발생한다. ‘살인을 범죄로 금지하는 국가가 살인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없는 국가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등의 주장에 힘을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교와 사형제도 사이에서 ‘가치 충돌’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5계의 첫 번째는 불살생(不殺生)이다. 그 누구든 의도성을 갖고 함부로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범망경’에서는 ‘중생을 죽이는 기구를 마련하지 말고, 방화로써 생명을 다치게 하지 말며, 항상 방생하고 구제하라’고 한다. 여기에는 모든 생명이 자신의 삶을 오롯이 영위할 수 있게 자비를 베풀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이 자비는 현재 수감돼 있는 59명의 사형미결수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희대의 살인마이자 부처님의 제자인 앙굴리마라(鴦窶利摩羅)의 본래 이름은 아힘사카(Ahimsaka‧不害) 즉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다. 천명의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을 모으면 수행이 완성된다는 모략에 걸려 살인을 일삼던 앙굴리마라는 부처님마저 해하려 쫓아갔다. 부처님을 향해 멈추라고 고함을 쳤을 때 부처님은 “나는 오래전에 멈추어 서 있다. 멈추지 못하는 것은 앙굴리마라다”라고 하셨다. 부처님 말씀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불교에 귀의했다. 국왕은 “무력으로도 통제하지 못한 범죄자를 교리로 교화시켰다”며 찬탄했다. 

앙굴리마라가 탁발을 나섰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살인자임을 알아본 사람들로부터 돌팔매질과 몽둥이질을 당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수천 년 동안 받아야 할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인욕하라”고 하셨다. 진심 어린 참회와 정진을 거듭한 앙굴리마라는 아라한 경지에 올랐다. 

법무부 측의 주장처럼 ‘응보’는 필요하다. 그래서 사형의 대체 형벌로 ‘종신형’이 대두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응보가 형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앙굴리마라의 일화가 전하듯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참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정‧교화를 통한 우리 사회로의 복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1998년 이후 사형집행은 없어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이지만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그 자체로 ‘생명권’에 방점을 찍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 헌재의 공개 변론에 앞서 7대 종교 지도자들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의 평등한 존엄을 선언”하며 사형제도 폐지 공동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한 연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1641호 / 2022년 7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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