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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수행 강남선무도명상요가센터장 채희걸(현덕·50) - 상 

기자명 법보

어릴 적부터 두려워하던 죽음
불교 공부 후 생·사 둘 아님 알아
반복 수행 속에 환희심 찾아와
판단없이 깨어있는 것이 명상

현덕·50
현덕·50

문경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란 나는 상여 나가는 모습을 유독 많이 보았다. 그때마다 툇마루에 앉아 울곤 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죽음이라는 것이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영원히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불교를 공부하고 인간에게는 8가지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생노병사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운 사람과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려고 하나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이 온갖 탐착을 일으키는 오음성고(五陰盛苦)다. 고통이 있으면 고통의 원인이 있고, 고통의 소멸이 있으며,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 있음 또한 배웠다. 사성제 안에 부처님의 모든 것이 들어있으며, 이러한 진리를 통해 생사가 둘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IMF때 갓 졸업한 나는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하는 일 마다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때 그 바닥을 딛고 일어선다고 했던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국을 떠나 프랑스 외인부대에 갈 준비를 하던 도중 선무도를 만났다. 해병대 부사관 출신으로써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교두보였다. 프랑스어 공부와 함께 무도수련도 병행하고자 했다. 그렇게 만난 선무도는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고요할 수가 없었다. 선무도를 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프랑스에 가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선무도를 한지 5년째가 되던 해에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골굴사 선무도 총본산에 들어갔다. 승가는 나의 보호처요 의지처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예불, 좌선, 행선, 아침 식사, 오전  선무도 수련, 108배, 좌선, 점심, 영어 공부, 좌선, 울력, 저녁, 예불, 저녁 선무도 수련 등 오후 9시가 되어야 모든 일정이 끝나는 강행군이었다. 2년 동안 한 번의 어긋남 없이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행선 시간에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몸이 가벼우며 뼈 마디마디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고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그때의 행복감은 며칠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이 경험으로 반복 속에서 저절로 환희심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무도는 조화의 극치이다’라고 말하신 선무도 대금강문 주 적운 큰스님은 “스승을 어디서 찾으려고 하지 마라. 온 우주 만물 천지 자연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라고 말하셨다. 먼 훗날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스승임을 알게 되었다. 

2016년 세계명상대전을 통해 문경 세계명상마을 선원장 각산 스님을 알게 되었다. 이후 방송을 통해 만난 스님의 특유의 에너지와 카리스마는 불교를 체계적으로 만나지 못해  항상 목말라하고 있던 나를 사로잡았다. 일목요연하게 불교를 정리해주시니 가슴이 뛰었다. 불법을 공부하며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스님 법문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예불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법열을 맛보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달 한 번 5일 동안 집중 수행을 했다. 매일 8시간씩 좌선과 행선을 반복했고, 각산 스님의 강의와 수행점검을 위한 개인 인터뷰도 진행했다. 선무도를 통해 몸 수련을 오래 했음에도 하루 8시간씩 앉아 수행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에 와서는 요가로 몸을 충분히 풀어 주어야만 했다. 40대 초중반이었던, 비교적 젊었던 당시의 나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70대가 넘은 어르신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강의는 들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법구경’에는 ‘혀가 국 맛을 알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이를 섬기면 곧 진리를 깨닫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각산 스님의 지도로 성실히 정진하니 정말이지 곧 깨달을 것만 같았다. 스님은 “판단없는 깨어있음을 이어가는 것이 명상”이라 하시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든지 멈추려고 하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하면 마음이 결국 아주 편안해지고 광대하게 열리게 되는데, 이것이 마음의 본성이고 오고 가는 다양한 생각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배경”이라 하셨다. 그리고 “공부는 자기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1641호 / 2022년 7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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