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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모습, 그대로 죽는다”

기자명 남수연
  • 교계
  • 입력 2004.03.22 13:00
  • 수정 2011.06.14 10:16
  • 댓글 0

장기기증본부, 첫 ‘죽음 준비교육’ 세미나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한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뜻도 아니고 고급 음식에 비싼 건강 용품으로 치장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살자는 ‘웰빙(wellbeing)’이 2004년 문화와 산업을 선도하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시대 ‘잘 살기’에 대한 관심은 이전 세대와는 분명 다르면서도 가히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 흐름을 비웃는 것인가.

<사진설명>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가 지난 2월 28일 서울 YWCA회관에서 개최한 '세계의 죽음 준비교육' 세미나에 200여명이 참가했다.


웰빙의 키워드 ‘죽음’

지난 2월 28일 서울 YWCA회관에서는 ‘죽음’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너도나도 잘 살자고 동서양, 고금의 비법을 섭렵하기에 혈안이 돼 있는 시점에 이 무슨 소린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잘 살기 위해 죽음을 준비한다”고.

세미나 제목은 ‘세계의 죽음 준비교육’, 주제는 ‘죽음준비교육, 왜 실시해야 하는가?’이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이 공동 주최한 이 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 일본의 죽음 준비 교육 현황을 통해 ‘죽음’이라는 자연현상에 대한 동서양의 관점과 문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금기를 다룬 것이 도전정신으로 비춰졌기 때문인지, 이날 세미나 장에는 관련 NGO와 종교인 등 200여 명의 방청객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기독교를 문화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미국-러시아와 불교로 대표되는 동양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죽음관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듯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불교와 유교 교리를 바탕으로 사후 세계와 윤회 등에 관해 견고한 사상 체계를 세우고 있는데 비해 서양의 그것은 분명 삶의 마지막 단계로서만 다뤄지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가 주목 받은 것은 사후 세계나 영혼의 문제 등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논란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예정돼 있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방법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동서양의 두 문화는 놀라울 만큼의 근접성을 드러냈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

철학박사이면서 일본 교토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칼 베커 교수는 ‘미국에서의 죽음 준비교육’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에서는 정책 수립자들에 의해 행정관리 측면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며 “그러나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이 궁극에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삶의 교육에 보다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모습은 러시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호스피스 사업의 확산을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초보 단계이긴 하지만 ‘삶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죽음에 대한 교육이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특징도 보여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비록 미약하지만 제도화된 교육의 틀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이러한 제도 개선의 이면에는 종교계의 변화와 노력이 토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 세계의 학계와 종교계가 ‘죽음’을 극복하기보다는 수용해야할 대상으로서 인정하고 동반자로서의 의미부여를 위해 급선회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죽음’ 더이상 두려워마라”

그러나 아직 까지 우리 사회와 종교계에 있어 ‘죽음’을 수용할만한 여유 공간은 부족한 듯 보인다. 또한 ‘웰빙’이 인기 검색어 순위에 등극하기까지의 급성장세에 비하자면 ‘만족스런 죽음’을 맞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웰빙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모순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극명히 드러난 셈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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