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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보문정사 회주 혜승 스님

타인 구제 포함한 불교정신이 오늘날 인류 정화할 원동력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마음을 갖고 실천하는 이가 불자 
세상 행복‧평화 기원하며 살 때 해탈 가능하고 정토 구현
보시‧봉사하는 삶 추구하며 부모 은혜도 마음으로 새기길

혜승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물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데도 주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혜승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물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데도 주저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을 간략하게 정의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몇 가지 본질적인 것을 들어 불자님들은 물론 국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에 우리 인류의 생활과 연관되어 있는 점도 없지 않고, 또 각 시대를 통해 학자들의 해석이 여러 가지로 있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나라, 그 지역의 민족들이 갖고 있던 사상과 혼합되어 있으므로 오늘 우리가 그 본질의 근원을 밝혀 재조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오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사상적 근거가 되고, 생활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해탈 사상이 있습니다. 해탈은 부처님 가르침의 진수이자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시대 생존경쟁과 물질문명의 시대상에서 우리 인간들은 모두 나름대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걱정이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직장과 자손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갈등과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태에서 지위나 명예를 위해, 생활과 향락을 위해 모든 이들이 망상의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몽유병자가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길에 나서면 자동차 사고 걱정, 집에 들어가면 의‧식‧주 걱정, 자녀들 교육 걱정, 가족들 건강 걱정으로 근심과 불안 속에서 번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고 있고, 다시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번뇌와 망상은 인간의 지식으로도 해결하지 못함을 직시해야 합니다. 오직 일찍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귀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비로소 해탈의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해탈은,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말로 바꾸면 해방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빈곤에서의 해방, 질병에서의 해방, 번민에서의 해방 등 해방을 얼마나 소원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생사에서의 해방이란 종교적인 명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그러한 해탈, 즉 해방의 교리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오직 불타의 가르침 속에서 이러한 해탈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은 넉넉히 관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심신의 해방감을 누리는 것은 나 자신 하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 국가를 넘어 온 세상의 행복이 될 것입니다. 기쁨과 안심이 있는 가운데 온 세상 사람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해탈의 세계가 되면 자연히 극락정토로 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해탈의 정신은 나 하나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자비정신이 곧 온 국민과 온 중생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흔히 인도주의, 인본주의라고 하는 말과 민주와 민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이 말들은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남겨놓으셨습니다.

이 세상 대부분 종교가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부처님은 ‘오직 진리를 따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불교가 진리와 인간을 중요시한 종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재세시에 인도 전래의 계급주의가 부정되고, 그 진리는 모든 중생을 위해 평등하게 베풀어졌습니다.

이처럼 불교는 스님들이나 특정한 존재들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전체를 위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가르친 근본정신은 인간사회를 화합하게 하고, 각 개인에게 안심입명을 주고, 생업에 충실하여 가산을 잘 처리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와 이웃과 화목하는 근원적 본질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는 고행주의도 향락주의도 아닌 건전한 길인 ‘중도’, 바른길인 ‘정도’를 인간에게 가르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중심에 둔 인간의 길을 일러준 부처님 가르침을 잊고 향락주의에 빠지거나 고행주의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고, 그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자의 고집과 아만, 아집을 갖고 폭력과 독선만을 일삼은 집단이나 개인은 아무리 불교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하더라도 불교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불교도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상구보리 하화중생 할 수 있는 자비정신을 새기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불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 도덕의 최고 가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만 가져도 인간 윤리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타인을 구제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불교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생존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인간사회를 정화시킬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론적인 가르침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몸소 실천하며 행동으로 그 가르침을 전하고 보여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보시를 강조하셨습니다. 보시를 ‘재시, 법시, 무외시’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는 금전적인 봉사와 정신적인 봉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로는 불자라고 하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또한 불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비를 행하고, 보시정신을 갖고 있을 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불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불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오늘에 이르러 부처님 정신인 봉사를 통해 이타주의를 스스로 각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실천만이 혼탁한 오늘의 사회를 정화시키는 기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처럼 해탈사상, 자비사상을 근간으로 한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을 체득하여 그 진리가 우리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근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우리 불자들도 자기만족이나 자신의 해탈, 성불만을 구하며 불교사상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근본정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중에는 불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불교가 세상을 초월한 출세간의 종교이기 때문에 부모의 은혜도 모르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指以標月兮(지이표월혜)여 月不在指(월불재지)요 言以說法兮(언이설법혜)여 法不在言(법불재언)이로다.’ 이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이 손가락에 있지 않고, 말로써 법을 설함이어서 법이 말에 있지 않도다’라는 말로,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불교를 함부로 말하는 것이 이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불‧법‧승 삼보의 은혜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중생들의 은혜를 일러 ‘사중은’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중에서 부모의 은혜가 소중하다는 것을 여러 경전에서 역설하였습니다. 부모의 자비하신 은혜를 더 설하자면 끝이 없지만 부모님에게 효도한 복은 부처님께 공양한 복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모은중경’에서 ‘아버지 아니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고 어머니 아니면 기르지 못한다’라고 하신 말씀을 비롯하여 ‘선의 극은 효도 보다 큰 것이 없고 악의 극은 불효보다 큰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또 ‘시왕경’에서는 ‘만일 부모를 해하는 자가 있으면 무량겁에 큰 고초를 받는다’고 하시었으며, ‘심지관경’에서는 ‘아버지는 사랑하시는 은혜가 있고 어머니는 어여삐 여기시어 길러주신 은혜가 있으니 부모의 자비하신 은혜를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 중에 매년 음력 7월15일은 해마다 찾아오는 우란분재일입니다. 원래 우란분이란 거꾸로 매달린 자를 구한다는 뜻이고, 우란분재란 선망부모의 고통을 구제하는 재라는 의미로 우리 불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사후에까지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십대제자 중 한 분인 목련존자가 성자로 득력 한 후에 정(定)에 들어가 선망하신 어머니가 어디에 계신가 하는 것을 관찰한 즉, 불행하게도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무한한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이 참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에 목련존자는 망모를 구원하고자 하는 효심이 불길 같았지만 자신의 법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스승인 부처님께 답을 구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7월15일은 해제일이며 이날 많은 음식을 준비해 재를 베풀어 시방중승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인해 부모는 지옥고를 벗어나리라 일러주었고, 목련존자가 부처님 말씀에 따라 행하자 목련존자의 망모가 지옥고를 벗어나서 생천하였다고 하여 이날을 백중일이라고도 하며, 그 유래를 설해놓은 경전이 바로 ‘우란분경’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불교는 부처님 당시부터 효도에 대한 사상이 투철하였으며 오늘에도 그 사상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음력 7월15일 우란분재일이 되면 사부대중은 불전에 공양을 올리고 선망부모에게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불효를 깊이 뉘우치며 재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회를 돌이켜보면 물질문명이 우선하게 된 여파로 인륜이라는 관념이 점차 희미해져가고, 어버이와 자손들 사이에 꼭 지켜야 할 신의가 차가울 정도로 냉각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같은 때에 선망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은 마음으로 되새기며 천도재에 참여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또다시 우란분재일을 맞이하여 살아계신 부모를 위해서나 돌아가신 선망부모를 위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효도를 다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정리=강태희 지사장

이 법문은 포천 보문정사 회주 혜승 스님이 우란분재 49일 기도 기간 중 7월15일 사내 대중들에게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42호 / 2022년 7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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