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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기 전북대 명예교수

보시는 탐욕심 치유하고 해탈에 이르는 중요한 실천 덕목

육방에 예경하듯 모든 이를 대하고 나누는 게 불자의 길
유주상에서 무주상 보시 될 때까지 행하는 것이 곧 수행
무재칠시가 자연스레 습관 되면 모두 행복한 삶 살게 돼

강건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새가 하늘을 날 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그런 보시를 할 수 있도록 수행하라”고 당부했다.
강건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새가 하늘을 날 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그런 보시를 할 수 있도록 수행하라”고 당부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말씀으로 강의를 대신할까 합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영축산에 계실 때 아침마다 탁발을 가시면서 매일 같은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젊은 청년이 매일같이 강물에 목욕을 하고 동서남북과 상하 여섯 곳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참 이상하다 생각을 하다가 하루는 청년을 불러서 왜 그렇게 매일 목욕하고 절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왜 절을 하는지 뜻은 모르겠다면서,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매일 아침 강물에 목욕하고 여섯 군데에 예경을 드려라’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부처님은 그의 말을 듣고는 동쪽은 부모를, 남쪽은 스승을, 서쪽은 아내를, 북쪽은 친족을 가리키며 위쪽은 윗사람, 아래쪽은 아랫사람을 가리킨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뜻을 알고 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같이 자상하게 알려준 것입니다. 또한 목욕하고 절을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청결한 마음으로 잘 받들고 섬기라는 뜻이라는 것도 더불어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여섯 곳을 향해 예경하는 가르침을 담은 경을 ‘육방예경(六方禮經)’이라 하고, 한역을 하면서 착할 선(善)자 날 생(生)자를 사용해 ‘선생경(善生經)’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이 경에서 “부모는 동방이고, 스승은 남방이며, 아내는 서방이고, 친족은 북방이며, 아랫사람은 하방이고, 윗사람은 상방이네. 모든 장자의 아들들아 모든 방에 예방하고 공경하고 순종해 때를 놓치지 않으면 죽어서는 모두 천상에 태어나고 은혜로운 보시와 부드러운 말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준다네. 너와 나 이익을 공평히 하고 가진 것을 남과 함께 나눠 가져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아주 평이하고 쉬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 우리 불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모, 아내, 스승, 친족, 윗사람, 아랫사람의 육방은 우리가 예경해야 할 사람을 여섯 가지로 구분한 것이지만, 사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그렇게 예경하듯 하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또한 목욕하고 육방에 절하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참배하는 마음으로 잘 받들고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육방예경’에서는 불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데, 알고 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여여한 부처님들입니다. 우리 불교대학 계단을 올라오다 보면 ‘마음이 부처다’라는 글이 있는데, 이것 역시 마음을 가진 우리 중생들이 그대로 다 부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성철 스님은 부처님오신날 따로 부처를 찾을 것 없이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의 생신이니 축하드립니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의 생신이니 축하드립니다. 술집에서 술파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의 생신이니 축하드립니다. 예배당에서 찬송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의 생신이니 축하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전북불교대학에서 법회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이 부처되는 날이니 축하드립니다’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살아있는 부처님들을 잘 받들고 섬기는 것이 참된 불공일 것입니다. 불교는 그런 불공을 가르치는 종교이고, 우리 불교대학도 그런 불교를 하자고 공부하는 곳입니다. 

청담 스님이 도선사에 계실 때 절에 와서 열심히 불공을 드리는 어느 보살님과의 일화 중에 이러한 예가 있습니다. 남편과 자녀들, 그리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보살님인데, 절에 사흘이 멀다 하고 자주 와서는 열심히 절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절에 다니느라 시간이 부족했는지 시어머니 봉양이 조금 부실했고, 그 문제로 고부사이가 안 좋아지게 되었답니다. 여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직장을 잃었고, 아이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데다, 자신은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 보살님이 통증으로 고생을 하다가 하루는 안간힘을 다해 도선사에 올라가서는 청담 스님에게 여기 부처님이 영험이 없어 이제 그만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담 스님이 ‘사흘이 멀다 하고 절에 다니면 집안 살림은 누가하고, 집에 사는 부처님은 어떻게 모시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보살님이 뭔 소리냐고 되묻자, 스님은 ‘나이 드신 시어머니가 부처님이지. 그러니 봉양 잘하면 부처님께서 큰 복을 주시고 집안도 태평해질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우리도 불공 잘 해야 되겠습니다. 그 불공의 구체적인 방법을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육방예경’에서 자세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또 “은혜로운 보시와 부드러운 말,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준다네. 너와 나 이익을 공평히 하고 가진 것을 함께 나눠 가져라”라고 합니다. 불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보시를 잘하는 것입니다. 

보시에 대해서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근본불교나 대승불교를 일관해서 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것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보시입니다. 보시야말로 ‘나다’ 하는 놈, 즉 탐욕심을 치유하고 해탈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탐진치 삼독을 벗어나 해탈을 이루어야 하는데, 삼독 중 첫 번째 독이 바로 탐욕입니다. 이 탐욕을 대체하는 데는 보시가 제일입니다. 그래서 ‘아함경’에서 “탐욕을 버리고 청정한 보시를 행하라. 보시를 행하고 마음에 기뻐하면 이 세상에나 저승에서 복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을 돕고 보시하면 우리 마음 자체가 아주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승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 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가진 것을 나누는 보시, 재시(財施)가 있습니다. 이때 꼭 내가 직접 보시를 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찬탄하고 기뻐하는 것도 똑같은 보시가 됩니다. 

두 번째 보시로 법시(法施)가 있습니다. 진리를 나누는 보시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도 함께 그렇게 하도록 나누는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사구게 하나의 짧은 게송이라도 듣고 수지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하고 나누면 그 공덕은 삼천대천세계에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나누는 공덕보다도 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하고, 또 다른 분들에게 공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돕는 것도 역시 법시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모든 법을 전하러 떠나라. 한 길을 두 사람이 가지 말고 각각 가서 법을 전하라”고 할 정도로 전법, 즉 법시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시를 해야 할까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상이 없이 해야 합니다. 무주상보시입니다. 상은 ‘나다’ 하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까, 무주상으로 복을 지어야 진짜 복을 짓는 것입니다. 무주상으로 하는 보시를 복이 새나가지 않는 무루복(無漏福)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유주상으로 짓는 복을 유루복(有漏福), 즉 새나가는 복이라고 합니다. 보시를 할 때마다 줄줄 새나가면 복이 쌓일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쉽지는 않지만, 상이 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그렇게 보시를 해야 합니다.

물론 무주상보시를 하려면 ‘나다’ 하는 놈이 공한 줄 알고, 또 물질이나 모든 것이 다 공한 줄 알아야 되는데, 그게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보시를 놓고 보자면, 유주상에서 무주상 보시를 할 수 있도록 해나가는 과정이 수행입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마치 새가 하늘을 날 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그런 보시를 할 수 있도록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 무외시(無畏施)입니다. 재시와 법시가 아니더라도 얼굴 표정을 밝게 하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하는 그것이 한량없는 보시입니다. 이런 보시는 특히 우리 보살님들이 평소에 잘 실천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가정이나 사회가 많이 밝아지게 되니 그것이 또한 큰 보시입니다. 이 무외시를 베푸는 보살을 ‘시무외자’라고 했으니, 무외시를 열심히 하시면 관세음보살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이 무외시를 잘 하는 방법으로 무재칠시(無財七施)가 있습니다. 부처님 재세시에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찾아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를 묻자, 부처님께서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사람은 자신은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라고 했습니다. 이때 부처님이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누구나 다 있다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화안시(花顔施)’로 환히 밝은 얼굴이 바로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라고 했듯이, 밝은 표정을 지은 얼굴 그 자체가 한량없는 공양이 됩니다. 두 번째는 ‘언시(言施)’입니다. 말로써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부드러운 말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어 세 번째는 ‘심시(心施)’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내가 가진 선한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마음 역시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안시(眼施)’로, 호의를 담은 눈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호의를 가진 따뜻한 눈길이 한량없는 좋은 보시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신시(身施)’입니다. 나의 몸으로 다른 사람의 짐을 들어준다거나 일을 돕는 것입니다. 운력에 참여하고 자원봉사에 나서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좌시(坐施)’로 노약자에게 자리를 내어 양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찰시(察施)’로,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살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재칠시를 행하면 이 일곱 가지가 습관이 되고, 이 일곱 가지가 자연스럽게 실현되면 모두에게 행복이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행복이 따를 뿐만 아니라 그 순간부터 그저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불공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신용훈 기자 boori13@beopbo.com

이 강의는 강건기 전북대 명예교수(전북불교대학 초대학장)가 7월17일 ‘모든 사람을 예경하라’를 주제로 전북불교대학 4층 큰법당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43호 / 2022년 8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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