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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화와 불교 인드라망 ②

기자명 고용석
  • 기고
  • 입력 2022.08.01 15:27
  • 수정 2022.08.01 15:29
  • 호수 1643
  • 댓글 0

마고성과 키르티무카 신화

포도에서 시작된 인류의 재앙

다른 생물과 더불어 살아가야
자연 보호하는 행위가 인류보호
삶 극명하게 보여준 키르티무카

환경운동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산업화의 무한 질주를 제한하는 규제 위주에서 새로운 차원의 인식으로 전환되며 두 번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환경 평등과 환경 정의를 넘어 모든 사람은 소중하고 모든 생명은 신성하며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수십억 종의 다른 생물 종을 돌보고 그들과 협력하며 이 지구상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의 존재 자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짓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의무적 환경윤리나 도덕적 훈계가 아닌 깊어지고 넓어진 자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연보호가 곧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환경보호가 희생이 아닌 우리 안의 다양하고 숱한 기쁨의 원천을 활짝 여는 심미적 과정이 되는 것이다. 사실 생태와 영성 그리고 음식은 둘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생태주의와 시민운동의 출발은 미국 초월주의 진보적 지식인그룹에 의해 본격화됐다. 대표적 인물이 에머슨과 소로우 등이다. 이들은 영성과 생태를 기초로 교육개혁과 페미니즘 그리고 노예 해방뿐 아니라 미국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또한 음식선택은 높은 법칙에 따른 삶의 필수이며 인류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육식의 습관을 결국엔 버리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신화는 이야기다.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할 뿐 아니라 옛사람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의미이자 세계관 및 우주관이었다. 잠재력을 계발하고 정체성을 찾는 교육의 역할이기도 했다. 마고성과 키르티무카 신화를 통해 먹는 행위와 생명의 실상이 내포하는 의미와 채식과 비거니즘이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 위기를 극복하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탐구해 보자. ‘부도지’는 신라 시대 박제상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비서를 정리하여 저술한 책으로 1만4000년 전 파미르고원을 발원지로 펼쳐졌던 한민족의 상고 문화를 다루고 있다. 이 ‘부도지’의 마고성 신화에 따르면 그때는 우주의 음악과 빛 즉 율려로 세상과 우주를 다스리고 사람들은 대지의 젖을 마셨다고 한다. 어느 날 포도를 따 먹고 처음으로 다섯 가지 맛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생명을 먹은 최초의 일로 이때부터 재앙은 시작된다.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원래 없던 이빨이 생겨나고 피와 살이 탁해져 다툼과 분열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마고성 사람들은 네 무리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것이 인류의 4대 문명이며, 그중 한 갈래가 환국 배달 고조선을 거쳐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고구려의 국시가 마고성의 회복을 뜻하는 ‘다물’이었다고 한다.

키르티무카는 한국과 인도, 네팔, 태국 등등 전 아시아적 현상이다. 힌두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보면 통관절차처럼 이 ‘영광의 얼굴’이란 뜻의 키르티무카를 볼 수 있다. 신화에 따르면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릴라’는 시바 신의 역동적 춤이다. 시바의 아내는 파바티라는 여신인데 어느 날 한 괴물이 시바 신에게 와서 파바티를 애인으로 삼고 싶다고 말한다. 시바 신은 화가 나서 잠깐 제3의 눈을 뜬다. 그 순간 벼락이 땅을 때리고 연기가 일고 불길이 인다. 연기가 가시자 괴물의 자리 옆에 다른 괴물이 하나 더 와 있는 것이다. 이 괴물은 피골이 상접하고 사방으로 뻗어있는 머리카락은 흡사 사자 털과 같았다. 첫 번째 괴물은 두 번째 괴물이 자기를 먹으려는 것을 알고 기겁하여 시바 신의 자비에 자신을 던지겠다고 말한다.

시바 신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누가 자신의 자비 앞에 몸을 던지면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괴물에게 그 괴물을 먹지 말 것을 명한다. 그러자 깡마른 괴물은 배고픔을 호소하고 시바 신은 괴물 자신을 먹으라고 명한다. 괴물은 발부터 자신을 차례로 먹어 올라가 얼굴 하나만 덩그렇게 남게 된다. 이게 바로 남의 생명을 먹어 사는 생명의 이미지이다. 시바 신은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삶이란 게 무엇인지를 이토록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없다고 기뻐하며 영광의 얼굴 ‘키르티무카’라 명명한다. 누구든 이 얼굴을 예배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알거나 자신에게 올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고용석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

[1643호 / 2022년 8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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