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의 하나가 청와대의 활용 방안이다. 청와대를 사적지로 지정하여 일체의 훼손을 방지하자는 안과, 이보다는 청와대 원래 개방 취지대로 모든 국민에게 완전 개방하자는 안, 그리고 사적지로도 지정하고 국민도 활용하는 절충안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안은 세 번째 ‘사적지로 지정하여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국민들도 활용하는 절충안’이 아닐까 한다.
청와대 본관이나 춘추관은 원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역대 대통령의 통치 유물과 외국에서 받은 선물, 소장 미술품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국민들에게 역대 대통령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배려하는 ‘대통령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또본관 앞 광장 등에 ‘야외 공연장’을 마련하여 주기적으로 세계적인 전통 공연을 하는 장도 필요할 것이다.
이와 함께 불교계에는 현안의 과제가 놓여 있다. 바로 대통령 관저 뒤에 봉안된 보물 석불좌상이다. 이 불상의 거취에 대해서는 예부터 이견이 분분하다. 출처는 경주이지만 경주의 이거사지인지 남산인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무작정 경주로 내려가는 방안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박물관(불교중앙박물관이나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는 것에도 별 의미가 없다.
청와대 석불좌상을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은 현재 위치에 잘 봉안해 격에 맞게 모시는 일이다. 현 장소에 경복궁 내불당(內佛堂)을 현대식으로 복원해 내불당 주불로 봉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내불당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경복궁은 1990~2010년 89동을 복원하는 1차 정비사업을 마쳤고, 2011~2045년 2차 정비사업으로 80동을 복원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경복궁 내불당은 궁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용한 이래 궁궐에서 내불당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삼국, 통일신라, 고려시대도 궁중사원을 내제석사(內帝釋寺)로 왕실·국가와 국민을 수호해주는 제석천을 주불로 봉안했던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이를 내불당으로 명명하고 있다. 경복궁 내불당은 세종 때 폐사했다가 세종 30년(1448)에 다시 복원하였는데 위치는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 궁궐도인 내불당도를 보면 내불당이 궁궐 중심부 가까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세종 30년(1448) 내불당을 중창하면서 궁궐 동북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궁궐 동북 쪽으로 이동한 위치는 현재 청와대를 찾는 방문객들의 출입구와 가깝기도 하다. 또 청와대 석불좌상이 봉안된 위치와도 멀지 않은 거리이다.
때문에 불교계가 경복궁 내불당 복원에 대한 논의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내불당이 있던 장소 인근에 마침 청와대 불상 있어 미남불을 내불당 본존불로 삼아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간 청와대 불상을 둘러싼 여러 이견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청와대 불상을 다른 지역으로 이안하지 않고 보물 부처님을 주불(主佛)로 삼아 현대식 내불당을 복원하는 방안이 매우 시급하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