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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 ‘탈북민 자립심 응축’ 모델 제시했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8.22 11:08
  • 호수 1645
  • 댓글 0

탈북 과정에서 엄습해 온 공포
하나원 교육으로는 극복 못해
사회적 편견‧차별 속 ‘극심 고통’
법회 통한 부처님 품에서 ‘치유’

수원사가 탈북민의 친목을 도모하는 ‘동포 모임’을 2년 6개월 만에 개최했다. ‘동포 모임’과 함께 탈북민만을 위한 법회도 봉행해 의미를 더했는데 ‘탈북민 법회’를 갖게 된 연유를 전한 오장미 연꽃쉼터 사무국장의 설명이 의미심장하다. “그동안의 동포 모임은 노래 부르고 이야기 나누고 선물 받아 돌아가는 정도로 운영돼 친목 성격이 강했다. 지난 7월 탈북민과 함께 약식으로 법회를 진행해봤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8월부터 정기법회로 운영하기로 했다.” 남한 정착 과정에서 받은 탈북민의 상처를 불교가 치유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에서 남한 땅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2017년 2만5000명을 넘었는데 2022년 3월 기준만으로도 3만3000명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중국을 포함한 제3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일각에서 10만명을 추정하지만 범위를 중국으로만 한정해도 대략적인 추산조차 어렵다. 국경 통과 자체가 비밀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데다 중국 공안의 단속을 피해 숨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북한의 정치사회적 대전환이 없는 한 탈북민들은 당분간 계속 늘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남한 정착 탈북민 수치는 3만3000명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남한에 입국한 새터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탈북 과정에서 절감하는 건 희망이 아닌 공포다. 중국 등의 해외를 경유할 때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중국 공안이나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면 본국으로 송환되는데 그 후 닥쳐올 고통과 고난은 형언할 수 없다.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한시도 떨쳐낼 수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적을 바란다고 한다. 무사 성공을 향한 간절함이다. 종교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건 이 지점에서다.

탈북에 성공하여 남한 땅을 밟았다고 해서 공포가 희망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 간첩 식별 과정을 거쳐 하나원에서의 12주 사회적응 교육을 받아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12주의 단기교육으로 충분할까? 직업훈련과 진로지도를 받고, 심리검사를 토대로 한 상담을 한다지만 탈북 과정에서 엄습한 공포를 걷어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속적이고도 오랜 상담을 통한 위로와 격려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원도 이 점을 고려해 불교, 개신교, 가톨릭의 수행‧성직자와 만나 종교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직면할 고난도 있다. 편견과 차별이다. “우리 세금으로 살지말고 돌아가라”는 말은 비수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 한복판에 꽂힌다. 탈북 과정에서 감내하는 고난과는 결이 다른 고통인데 쓰라림은 더하다. 10명 중 6명이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편견을 받았다는 설문 결과가 있고, 자살률이 전국 평균보다 2배에서 4배까지 치솟은 적도 있는데 10·20대 탈북민이 253%에 육박했다는 보고서도 제시된 바 있다. 경제, 건강 등의 요인도 있겠지만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북한을 떠나 제3국에 머물 때, 하나원에서 사회적응 교육을 받을 때, 한국 국적을 받아 사회에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의 손을 잡아 줄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린다. 기독교는 탈북 과정에서부터 사회 정착 단계에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지원하고 있다. 그에 반해 불교 대부분의 단체는 세 번째 사회적응 단계부터 시작한다. 북한인구정보센터(NKDB)의 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51.2%가 개신교를 택했고, 10%가 불교를 택했다. 이러한 차이는 필연이다. 그렇다고 불교계가 첫 단계인 탈북 과정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편견과 차별에 흘리는 눈물을 진심으로 닦아 주며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불사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아가 부처님 품에서 홀로 설 힘을 응축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수원사가 봉행한 ‘탈북민 법회’처럼 말이다. 현재 탈북민을 지원하는 단체는 10여개 정도인데 이마저도 개인 원력으로 간신히 지탱하는 실정이다. 사부대중의 좀 더 깊은 관심이 절실하다. 탈북민은 우리의 동포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645호 / 2022년 8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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