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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화와 불교 인드라망 ⑤

기자명 고용석
  • 기고
  • 입력 2022.09.05 14:24
  • 호수 1647
  • 댓글 1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에 대한  ‘알아차림’

지속가능성·생명 선순환 여는 출발점

모든 고통은 서로 연관 돼 있어
팬데믹·기후문제는 위기이자 기회
음식은 문화 패러다임 근본체계

지속가능성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소피아의 회복이 요구된다. 우리 안의 마고할미라 할 수 있는 소피아(Sophia)는 인간 본성의 신성한 여성성을 뜻하는 단어로 양육하고 돌보고 배려하는 사람의 본성을 일컫는다.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양육과 풍요의 여신이었고 인간 내면의 여성적 힘 또는 지혜를 상징한다. 철학(Philosophy)이란 단어 PhiloㅡSophia는 ‘소피아에 대한 사랑’이란 뜻이다. 동물을 학대하고 죽여 먹는 육식 행위는 소피아를 억압하며 인간의 지성과 창의성 발현을 근본적으로 막는다. 인간, 동물, 사회 등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 간의 유의미한 관계를 찾아내는 능력을 원천적으로 훼손할 뿐 아니라 소비행위를 통해 고립감을 해소하고 위안을 찾으려는 왜곡 정서와 소외감을 극대화한다. 자신도 모르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 황폐해진 생태계, 후손에 끼치는 고통과 단절하는 데도 익숙해진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Jung)의 공적 중 하나로 그림자 원형 이론이 있다. 그림자 원형이란 자아가 부정하고 억압하는 내면의 음침한 어둠을 가리킨다. 하지만 억압돼도 그림자는 언젠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알아채기 어려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현실에 자신을 투사한다. 동물을 식용으로 삼아 학대하는 행위는 단연코 우리 문화 최대의 그림자다. 우리의 집단적 죄의식은 먹는 폭력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조장하고 투사한다.

이제 인류는 밥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오랜 문화적 미망과 폭력으로부터 마땅히 깨어나야 한다. 밥상에 오르기 위해 연간 750억 마리의 동물이 무자비하게 도살당한다. 어류 50%와 세계 농지 80%, 물 소비 70%와 세계 식량 40%가 고기 생산과 가축 사료로 투입된다. 자유로운 시장의 힘이 상호작용한 결과, 연간 10억 명은 배고파서 죽고, 15억 명은 배불러 만성질환으로 죽는다. 만성질환에 대한 신약 개발을 위해 연간 수억 마리의 동물들이 희생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코로나19 같은 인수공통전염병과 지구온난화 및 치명적 생태계 파괴가 초래된다. 즉 ① 정치적 보조금으로 값싼 곡물 ② 곡물조차 구입이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 양산 ③ 값싼 곡물을 동물들에 공급하는 게 더 이익되는 악순환 구조다.

사실 폭력, 아동학대, 자살, 약물중독, 비만, 스트레스 등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들도 성찰해보면 우리가 동물과 생명체들에 가한 기 행위들이다. 인공수정을 통해 갓 태어난 새끼들을 떼어놓고 오로지 이익을 좇아 빨리 살찌우고 강제 임신시키는 데 온갖 약물을 투여하는 등 공장식 사육환경과 도살과정은 현대판 홀로코스트와 다름없다.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가축을 인류가 소비하고 처분하는 방식은 가장 끔찍한 범죄이며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시급한 윤리적 문제이다.

식재료로 쓰이는 동물의 고통, 고기를 먹고 이득을 취하는 인간들의 고통, 동물들을 먹이는 곡물이라면 충분히 배부를 수 있는 굶주린 사람들의 고통, 생태계와 뭇 생명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무의식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밥상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에 대한 ‘알아차림’이야말로 지속가능성과 생명의 선순환을 여는 출발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비상사태는 전례 없는 지속가능성의 위기이자 기회다. 인류는 이야기의 과도기 즉 문화 패러다임의 전환 한가운데 서 있다. 소비주의와 인간중심주의 등 문화의 밑바탕에 깔린 억압과 배제, 경쟁과 분리 그리고 단절과 결핍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낡은 이야기를 협동과 자유, 평화와 풍요 그리고 생명과 상호의존을 긍정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대체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에 음식의 역할이 중요하다. 음식은 현대 물리학이나 환경운동의 새로운 인식들을 심화할 뿐 아니라 문화의 패러다임을 공유, 복제, 재생산하는 근본 체계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인간과 지구, 밥상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밥상혁명의 순간이다.

고용석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

[1647호 / 2022년 9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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