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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암 스님(1876~1951)

기자명 안문옥

돈오점수 설파한 근대 선승

1951년 3월 22일 입적


한암 스님은 수행을 ‘소치는 구도행’이라고 비유하며 ‘돈오점수’를 설파했던 근대의 대표적인 고승이다. 일명 ‘오대산 도인’, 오대산의 학(鶴)이라 불린 한암 스님은 27년 간 일체의 외부출입을 금하며 오로지 수행에 매진해 밝은 선지(禪旨)와 높은 학문으로 수많은 납자들에게 존경받아온 시대의 선지식이다.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한암 스님은 천성이 영특하고 총기가 빼어나 한번 의문이 나면 답을 구할 때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경허 문하서 수행 정진


스님은 22세가 되던 해 소시적부터 궁금했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수행이라는 결론을 내고 행름(行凜) 노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에서 수도를 시작한 한암 스님은 진정한 나를 찾고, 부모의 은혜를 갚으며, 극락에 가겠다는 세 가지 원을 세운다.

이후 스님은 1899년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 선사를 만나 설법을 듣고 전법제자가 돼 수년간 문하에서 참선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스님은 금강산 신계사의 보운강회(普雲講會)에서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을 읽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은 청정율의(淸淨律儀)를 하며 참선수행 하는 납자들을 위해 선(禪), 염불(念佛), 간경(看經), 의식(儀式), 가람수호(伽藍守護) 등 승가 5칙을 제정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유고로는 『선문답 2조』, 『참선곡』등이 있다.


41년 조계종 초대 종정

50세가 되던 1925년에는 봉은사 조실로, 1941년 조계종이 출범됐을 때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돼 4년 동안 조계종을 이끌기도 했다.

75세 되던 해, 한국전쟁 당시 모든 사찰을 소각시킬 때 한암 스님이 계신 상원사만이 불타지 않은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때 유엔군의 총알이 스님의 장삼을 뚫어도 꼼짝 않고 좌선삼매에 드니 용무생사의 경계에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설명>돈오점수를 설파한 근대 선지식 한암 스님의 좌탈입망 모습.

1951년 3월 22일, 스님은 자신의 세연이 다했음을 알고 깨끗한 가사와 장삼을 수 한 뒤 정좌를 하고 그 모습 그대로 좌탈입망했다.


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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