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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뒤편에 자리한 승가의 소중한 일상 톺아보기

  • 출판
  • 입력 2022.11.28 15:02
  • 호수 1659
  • 댓글 0

공양간의 수행자들
구미래 지음/담앤북스
658쪽/3만8000원

음식도 수행이 되는 수행자들에게 공양간은 출가와 수행의 이야기가 통째로 버무려진 공간이다. 사진은 서울 북한산 진관사의 장독대. [담앤북스]
음식도 수행이 되는 수행자들에게 공양간은 출가와 수행의 이야기가 통째로 버무려진 공간이다. 사진은 서울 북한산 진관사의 장독대. [담앤북스]

웰빙과 채식의 열풍 속에 한국사찰음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백양사 천진암 주지 정관 스님이 2016년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출연한 것을 기점으로 세계 각지의 유명 셰프들이 사찰음식을 배우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다. 몇 년 전부터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 벨기에, 태국, 베트남 등 서구와 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사찰음식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유럽연합 정상들의 테이블에 사찰음식이 오르기도 한다. 또 지난 5월에는 세계3대 요리학교로 불리는 ‘르 꼬르동 블루’는 한국의 사찰음식을 정규 과목으로 채택했다.

사찰음식이 각광을 받는 것은 인공적인 식재료가 아닌 자연과 환경 친화적인 식재료를 사용하는데다, 음식 속에 평화와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1700년의 한국불교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검박한 수행 전통이 함께 어우러진 음식이라는 점에서 식탐을 돋우는 일반음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러나 음식은 단순히 조리돼 눈앞에 놓인 음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톨의 쌀알에 온 우주가 담겨있는 것처럼 음식에는 그 음식이 있기까지의 역사와 문화, 공간, 사람들의 숨결이 있으며, 이것을 하나로 이해해야 그 음식에 깃든 의미를 내면 깊숙이 음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양간의 수행자들’은 사찰음식을 매개로 전승된 불교의 전통과 숨결, 그리고 출가와 수행의 이야기까지, 승가의 삶을 살뜰하게 살핀 놀라운 책이다.

사찰의 공양간(供養間)은 음식과 관련된 수행자들의 생활문화가 펼쳐지는 곳이다. 좁은 의미로 공양간이 부엌의 의미로 한정된 데 비해 후원은 대방·식당·곳간·장독·우물 등 식생활이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사찰음식을 제대로 알려면 음식을 매개로 삶이 이뤄지는 후원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사찰음식 자체에는 많은 관심이 가지면서도 정작 사찰음식이 탄생한 공간과 배경,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이 책의 등장으로 해소된다. 이 책을 통해 사찰음식은 식품을 넘어 역사와 문화 중심으로, 그리고 수행자의 삶의 현장으로 되살아난다. 

사실 사찰음식은 코끼리의 코나 혹은 다리와 같다. 코끼리의 코나 다리를 따라 계속 만지다 보면 코끼리의 머리와 몸통을 만나게 되듯이 사찰음식은 공양간으로 이어지고 공양간은 결국 음식 뒤편에 자리한 승가의 소중한 일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수행과 정진이라는 수행자의 입체적인 삶과 조우하게 된다. 지금까지 사찰의 식문화 혹은 후원문화와 관련된 연구는 음식 자체에 집중돼 왔다. ‘사찰음식’이라는 명제 아래 사찰의 후원문화가 일부 이야기될 뿐, 식생활을 포함한 승가공동체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양간’으로 대표되는 사찰의 후원문화는 승가의 일상을 다루는 무형의 문화이기에, 전승 양상을 제대로 포착해 기록하고 연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의 저자는 한국불교의 근현대사를 겪어 온 원로 스님들의 경험과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기록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그러한 바탕 위에 무형문화로서 가치를 지니는 승가의 소중한 일상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

식생활은 삶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기에 출가수행자 또한 후원의 소임을 한 단계씩 거치며 정식 스님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단계에서 또 다른 후원의 삶을 열어가게 된다. 그런 까닭에 후원은 수행자의 입체적 일상이 담길 뿐만 아니라 수행정진 및 통과의례로서 삶이 전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탁발과 자급자족, 자비량, 공양간과 대방, 공양주와 채공, 마지 올리기와 발우공양 등 행자에서 학인을 거쳐 노스님이 될 때까지 당연하게 여겨 주목하지 못했던 스님들의 삶이 무형의 문화로서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새삼 일깨운다.

책은 1장 불교와 후원문화, 2장 불교후원문화의 역사, 3장 사찰의 살림살이 공간, 4장 식량 마련하기, 5장 수행정진의 일상사로서 후원문화, 6장 수행자의 일상식 발우공양, 7장 후원의 민속과 세시 음식문화, 8장 불교후원문화의 방향성 등 총 8장으로 구성돼 있다.

오랜 기간 불교 의례와 수행·생활문화를 주된 관심 분야로 삼아 온 저자는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연구함은 물론 7년여에 걸쳐 여러 사찰의 후원을 방문하고 직접 노스님들과 면담하여 얻은 방대하고 실증적인 자료를 토대로 한국사찰의 후원문화를 기록했다. 부처님의 마지를 짓는 경건한 후원문화와 주먹밥을 싸서 소풍을 가고, 풀을 쑬 밀가루를 모아 수제비를 끓이는 유쾌한 후원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승가의 모습은 옛 스님들의 일상이 추억 속 기억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59호 / 2022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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