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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가 보내온 서류봉투 열어보니

  • 기자칼럼
  • 입력 2022.12.02 10:41
  • 수정 2022.12.15 16:38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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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권오영 기자]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한 재소자가 보내온 서류봉투에 담긴 교정노트와 편지.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한 재소자가 보내온 서류봉투에 담긴 교정노트와 편지.

얼마 전 법보신문사 앞으로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가 등기로 전달됐다.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한 재소자가 보낸 서류봉투에는 편지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교정노트가 담겨 있었다.

재소자는 동봉한 편지에서 스님과 불자들의 법보시로 매주 법보신문을 받아보고 있다면서 “보내주신 법보신문으로 올 한해도 부처님의 크신 가피를 입었다”며 “15년의 길고 긴 담 안의 삶을 좋은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줘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어 한 달 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재앙에 가까운 참사에 옥중에 갇혀 있는 죄인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할 듯 싶었다”며 “한 자 한 자 눌러쓴 이 기도와 염원이 하늘에 닿아지기를 부처님께 서원한다”면서 노트를 보낸 이유를 소개했다.

표지에 ‘당신을 추모합니다’라고 적은 노트에는 삼귀의와 반야심경, 발원문, 정근의 글에 이어 ‘천수경’ ‘금강경’ ‘법구경’ ‘법화경 약찬게’ ‘화엄경 약찬게’ ‘우리말 아미타경’ ‘우리말 부모은중경’ ‘이산혜원 선사 발원문’ ‘법성게’ ‘참선곡’ ‘108참회문’ ‘광명진언’ ‘보왕삼매론’ ‘육바라밀’ ‘일타 스님의 법문-마음 다스리는 글’ 등에 이르기까지 법요집 한 권 분량이 그대로 필사돼 있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이 방대한 내용을 필사하기까지 재소자는 밤잠을 설쳐가며 기도했을 법하다.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 희생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의 참담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한 자 한 자 정성껏 필사한 그의 노트에는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더 이상 이런 헛된 희생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발원하는 흔적들이 묻어나 숙연해진다.

표지에 ‘당신을 추모합니다’라고 적은 노트에는 법요집 한 권 분량의 부처님말씀이 빼곡히 필사돼 있었다.
표지에 ‘당신을 추모합니다’라고 적은 노트에는 법요집 한 권 분량의 부처님말씀이 빼곡히 필사돼 있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꼭 한 달이 지나고 있다. 그러나 참사에 대한 진상 및 책임규명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부실대응으로 국민 158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은 사고 발생 1주일이 지나서야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는 유감 표명에 그쳤을 뿐 책임규명에는 선을 긋고 있고, 국가 안전관리의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행안부 장관은 거센 사퇴요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 스님들이 11월2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태원 참사 한 달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냐”며 책임자 처벌 및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는 인재에 가깝다. 경찰과 정부 당국이 사고 수 시간 전부터 접수된 “사람이 너무 몰린다” “이러다 사고 날 것 같다” 등의 신고 전화에 귀 기울이고 대응책을 마련했다면 이 같은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정부는 이번 참사가 발생한 원인을 살펴, 부실대응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영어(囹圄)의 몸이지만 밤을 새워 기도하고, 사고현장을 찾아 슬픔을 나누는 국민들과 생때같은 자식을 한순간에 잃은 유가족들에 대한 정부가 해야 할 책임 있는 자세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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