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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을 부처로, 범부를 조사로 만든 선원의 속살

  • 출판
  • 입력 2022.12.05 14:30
  • 호수 1660
  • 댓글 0

선불교
윤창화 지음 / 민족사
564쪽 / 2만3000원

선종 꽃피웠던 당송시대 선원의 공간·제도·교육방식·문화 등 총망라
사료 근거 철저한 고증…‘한국불교 선의 황금시대’ 바라는 애틋함도

중국 선종의 거목 조주선사가 주석하며 40여년 간 법을 펼친 백림선사의 관음전.
중국 선종의 거목 조주선사가 주석하며 40여년 간 법을 펼친 백림선사의 관음전.

어떤 스님이 영운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당나귀의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도래했다.” 거두절미, 단도직입의 설명으로 ‘분별심을 갖지 말라’고 경책한다. 이것이 당송시대 선원의 문답법이다.

선원에는 불전을 짓지 않고 불상도 모시지 않았다. 반야지혜를 통한 성불작조(成佛作祖)의 중요한 공간은 불전이 아니고 법당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선원 납자들이 조석예불을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선원의 방장은 부처를 대신하는 현신불이었다. 가장 중요한 책무 또한 납자를 지도·교육해 선승, 부처로 만드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납자 지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청규에 규정돼 있으니, 안거 90일 동안 정성을 다했음에도 단 한 명 깨달은 납자도 나오지 않자 자신의 능력과 법력에 회의를 느끼고 탄식하는 방장도 적지 않았다.  

선원에서 부처를 이루고 조사를 만들어 내던 ‘오도’ 시스템, 즉 지도 방식은 법문(法門), 독참(獨參), 청익(請益), 좌선(坐禪), 이렇게 네 가지였다. 이 가운데 좌선이 강조된 것은 남송 무렵부터,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에는 이 네 가지 시스템 가운데 좌선만 남아있다. 

불치불상(不置佛像)이라지만 불상에 합장배례하지 않음을 비판하는 글도 있고, ‘불립문자’라고 하지만 경전을 보관, 도서관의 기능을 하는 장전(藏殿)도 설치돼 있었다. 

우리는 선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전혀 모르는 것도 많다. 선종을 표방하는 한국불교의 뿌리가 선원에서부터 자라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그 뿌리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알까. 

이 책은 선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다 광범위하게 선의 원류, 선불교의 모든 것을 탐구한 책이다. 선원은 선을 위해 탄생한 건축물이자 그 정신이 그대로 투영된 공간이다. 그렇기에 선원의 속살을 샅샅이 뒤지는 저자의 참구는 선의 세계, 그 자체를 향한 단도직입이기도 하다.

선종의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중국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가람, 청규, 조직, 직제 등 구조적 측면과 함께 공안, 화두, 법어의 종류, 선문답의 방식, 선시와 선화의 기준 등 문화 전반까지 두루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무려 8년 간 자료를 바탕으로 당송시대의 선종사원과 선원총림이라는 시공을 뛰어넘는 여정을 이어온 결실이다.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만큼 퇴고와 보완을 거듭’해 2017년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러나 ‘학술 서적의 범주에 가두지 말고’ ‘당송시대로 국한하지 말자’는 독자의 제언을 받아들여 글의 순서를 바꾸고 부진한 설명과 사진 등을 보완해 더 많은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책 곳곳에서 울리는 저자의 목소리가 이를 말해준다. 

‘독참과 청익은 지금은 사실상 사장되었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 깨달은 선승이 출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도의 작불 시스템이라야만 깨달은 부처가 탄생하는데, 독참이 시행되지 않으므로 수행자 지도는 방치되어 있다.’

‘아육왕사와 천동사 두 전좌스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임을 맡지 않고 오로지 좌선만 한다고 해서 부처가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선안(禪眼)은 계정혜를 함께 수행해야 얻어지고 생활 속에서 얻어진다.’
‘한 선종 사원의 주지가 붓다의 법을 오래도록 존속시키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인격과 덕망, 그리고 정견과 정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총림의 납자는커녕, 기복을 바라는 마을의 아낙도 교화하기 어렵다.’

책 곳곳에서 들리는 저자의 음성은 때론 날카롭고 때론 절절하다. 한국불교를 향한 애정의 크기만큼 걱정을 품은 저자의 펜 끝에선 당송시대 열렸던 선의 황금 시대가 지금, 이 땅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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