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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행 이란희(자비화·35) - 상

기자명 법보

슬럼프에 찾은 절서 접한 명상
꾸준히 정진해 삶 태도 달라져
지금 이 순간 마음챙김 중요해
단단·묵직하게 정진 이어갈 것

서른 살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진로와 비전, 대인관계, 직장 문제 등 또래 청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과 어려움이 찾아왔다. 대학생 때부터 꿈꾸며 해왔던 일들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맺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던 시기였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스스로를 위축시켰고, 긍정적이고 활발했던 예전의 ‘나’를 잃어버렸다.

어렸을 적 법당은 놀이터였고, 비구니스님들의 존재가 엄마이자 친언니처럼 느껴졌던 곳이다. 가장 좋아했던 곳, 가장 편안했던 그곳. 절에 다시 찾아가 이전의 나를 되찾고자 했다.

“쓰레기가 많은 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를 버려요. 하지만 깨끗한 거리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죠.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평소에 마음이 어지럽다면 걱정이나 두려움과 같은 번뇌가 쓰레기 더미처럼 쌓이고 말아요. 하지만 평소에 내 마음이 깨끗하다면 번뇌들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금방 사라집니다. 책상 정리를 하는 것처럼 마음도 깨끗이 정리할 수 있어요. 그 방법이 바로 명상입니다.”

매번 다른 스님이 법문을 해주셨는데, 그때 법회를 찾은 모든 스님들이 명상을 강조하셨다.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건 ‘명상은 마음을 청소하는 시간’이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명상이 무엇인지도, 방법도 모른 채 아침, 저녁으로 ‘15분 명상’을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명상이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앉아 있을 때마다 생각이 쉴새 없이 올라왔고, 그럴수록 마음이 더 산만하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택한 방식은 생각의 주제 한 가지를 정한 것이었다.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아침 명상을 할 땐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렸다. 잠들기 전 저녁 명상을 할 땐 그날 했던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했는지 떠올렸다. 

나름대로 주제를 정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매일 명상하는 습관을 갖기 위해 달력에 기록도 했다. 첫 달은 15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달력에 기록한 날이 많아질수록 불안감과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지인들로부터 “내게서 편안함이 느껴진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스님의 말씀대로 명상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명상수행을 시작한 지 5년, 대학원에서 명상심리상담학을 전공했다. 여러 수행처에 다니며 명상수행법을 접하는 기회도 가졌다. 명상수행을 이론적으로 접근하면 명상을 안내하는 지도자와 명상하는 수행자의 성향에 따라 방법이 매우 다양하게 나눠지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어떤 명상수행에서도 빠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마음챙김’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감정에 휘둘리면서 고통, 아픔, 분노, 두려움 등의 불만족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명상수행은 뒤엉켜 있는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마음챙김하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면 나를 힘들게 했던 생각, 감정,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곧 내 안의 견고한 피난처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요즘 하는 명상법이 처음과 같진 않다. 호흡의 들숨날숨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내 안의 자애심과 연민심을 모든 이들을 향하도록 할 때도 있다. 때로는 순간순간 느껴지는 경험에 오롯이 머무르기도 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숙고하기도 한다. 다양한 명상수행을 하면서도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 마음챙김’이다.

틈만 나면 자리에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려고 노력한다.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엉덩이는 들뜨지 않게, 눈은 차분하게 감고, 호흡은 고요히 유지한다. 그 자세를 알아차릴 때면 문득 한 가지 발원을 하게 된다. 내 마음도 명상하는 이 자세를 닮아가기를. 미세먼지처럼 부유하는 게 아니라, 단단하고 묵직하게 말이다.

[1660호 / 2022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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