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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흐름 역행한 한국도로공사의 ‘메리 크리스마스’ 마케팅

  • 사회
  • 입력 2022.12.16 19:44
  • 수정 2022.12.17 07:33
  • 호수 1662
  • 댓글 11

공기업임에도 유니폼에 ‘Merry Christmas’ 버젓이 새겨
‘예수를 경배하자’는 기독교 용어…미국도 대체 표현 사용
선교 목적이나 무지서 비롯…종교감수성 결여가 갈등 유발

유니폼에 적힌 'Merry Christmas'가 방송에 노출되고 있다.
유니폼에 적힌 'Merry Christmas'가 방송에 노출되고 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에 특정 종교 단어를 배제하거나 대체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 시대 흐름이다. 특히 ‘예수를 경배하자’란 의미의 ‘메리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편향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미국 및 서구의 다문화·다민족 국가에서도 이를 대체하는 ‘홀리데이’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가 버젓이 크리스마스 마케팅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해당 기관 및 종사자들의 종교 감수성이 심각하게 결여되거나 의도적으로 기독교를 선양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선수들이 입고 있는 한정판 유니폼[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배구단]
선수들이 입고 있는 한정판 유니폼[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배구단]

문제가 된 건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하이패스 배구단’이 기독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선보인 한정판 유니폼이다. 유니폼은 눈꽃 장식, 별, 나무 디자인을 활용했는데 지적된 부분은 바로 문구다. 도로공사 배구단이 유니폼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새겨 출시한 것. 선수단은 한정판 유니폼을 착용하고 12월9일부터 경기에 출전하고 있으며 중계화면서 ‘Merry Christmas’문구가 계속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프로농구단도 창단 첫 해부터 산타복장을 한 선수 사진과 함께 ‘Merry Christmas~’라는 문구를 SNS에 업로드하고 특별 유튜브를 제작해 올렸다.

공기업이 운영하는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특정 종교의 기념일을 상징하는 용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면서 정부 기관들의 턱없이 부족한 종교 감수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매년 연말마다 기독교 찬양 일색의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리면서 종교 편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에서 종교 중립성을 견지해야 할 기관이 오히려 종교 차별을 부추기는 행태를 일삼는 것은 시대 역행적 사고라는 지적이다.

하이패스 배구단 인스타그램 갈무리
하이패스 배구단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외에 인삼공사 농구단, 우리카드·현대건설 배구단도 한정판 유니폼을 출시했다. 대한항공 점보스 배구단은 유니폼과 함께 경기장 내에서 캐럴을 틀고, 곳곳에 대형 트리와 조명을 설치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기업뿐만 아닌 사기업에서도 기독탄신일 상징물을 대대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기업들이 앞다퉈 배타적인 용어를 지속적으로 사용, 노출시킨다면 결과적으로 종교 갈등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주은 하이패스 배구단 담당자는 “이미 크리스마스는 오래전부터 상업화됐고, 종교행사가 아닌 문화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배구단도 그에 맞춰 패키지를 출시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시즌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기에 올해도 판매하고 있다. 특정 종교를 홍보하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고 문제의식을 전혀 갖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크라이스트(Christ)’와 미사 또는 예배를 의미하는 ‘마스(Mass)’의 합성어다. 즉 크라이스트는 구원자, 예수를 말한다. 결국 ‘Christmas’는 ‘예수를 경배하자’라는 지극히 직설적인 기독교 용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12월만 되면 ‘메리 크리스마스’가 등장한다. 종교 편향 행위가 금지된 공공기관에서조차 이를 사용한다. 종교적 의미가 분명한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낮은 종교 감수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다종교시대인 만큼 종교 간 평화를 위해선 상대 종교를 배려하고 차별을 감지해내는 감수성이 높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매년 반복되는 상황은 결국 국민 대부분 종교 감수성과 언어 민감성이 무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크리스마스가 기독교만의 용어, 종교행사가 아닌 보편적인 문화행사라고 주장하지만 국교가 없는 나라에서 특정 종교의 의미가 담긴 단어를 사용하는 점은 매우 민감하다. ‘크리스마스’가 종교 용어인 만큼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종교 차별적 행위로 볼 수 있음에도 공직자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20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돼 있다. 공공기관이 아닐지라도 공기업의 경우 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출자해 설립됐거나 지분 일부가 정부에 속해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드러내는 행위는 선교의 목적을 띤 명백한 종교 편향에 해당될 수 있다.

기독교가 국교에 가까운 미국에서조차도 ‘크리스마스’ 단어 사용은 극히 조심스럽다. 미국은 ‘메리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도 ‘크리스마스’ 대신 중립적 표현인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 혹은 ‘해피 그리팅(Happy Greeting)’을 사용해왔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 신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종교적 의미를 드러내는 장식 또한 사용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크리스마스를 되찾아오겠다”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서구에선 ‘오 마이 갓(Oh My God)’도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겐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의 판매 중단 조치는 높은 종교 감수성을 보여준 좋은 예다. 아마존은 홈페이지에서 이슬람 글이나 마호메트에 대한 발언 등이 새겨진 도어매트, 목욕매트. 코란 변기커버 등 무슬림 모욕 제품을 삭제하고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면서 아마존은 “모든 판매자들은 판매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며 “불만이 접수된 제품들은 홈페이지에서 제거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이키 또한 신발에 알라를 연상하는 문자가 새겨져있다는 지적을 받자 이를 전량 회수한 바 있다. 이는 상대 종교를 존중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불교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중립성을 지키지 않는 공기업의 기독교 이벤트는 일종의 선교활동으로도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 특별위원회 위원장 선광 스님은 “공기업은 당연히 공공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언어이고 기독교인들의 행사다. 그러나 공기업에서 특정 용어를 사용하고 노출시키는 등 홍보를 하는 건 매우 지능적인 종교차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종교평화위원장 도심 스님도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는 누구나 다 알지만 특정 종교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미국에서는 차별을 조장할 수 있기에 크리스마스 용어 사용을 자제한다. 지금도 종교차별이 만연하고 있어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 부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자들 또한 공기업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 꼬집었다. 이민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여성이나 장애인들을 지칭하는 언어에서 알 수 있듯 종교 언어도 누군가를 배제하고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며 “공공기관이나 대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단체에서는 언어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 분열과 갈등이 아닌 포용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필원 동국대 와이즈 캠퍼스 교수도 “기독교 전통이 강한 서구에서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용어 사용을 꺼려하는 것은 종교 갈등으로 인해 아픔을 겪어왔기 때문이다”라며 “한국에서 공기업이 특정 종교를 찬양하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은 선교 목적이 있거나 시대를 역행하는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662호 / 2022년 1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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