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행과 보시로 채워가는 한해 기원

법보신문 대표 신년사

올해가 유독 궂은 한 해라도
공덕 지어갈 계기로 삼아야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매일 매일이 좋은날 만들길

계묘(癸卯)년이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날마다 좋은날(日日是好日)’이라는 공안을 떠올려 봅니다. 몇 년 사이 날마다는 아니더라도 몇 번이나 좋은날이 있었나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합니다. 3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고통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살림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물가, 고환율에 이자율까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더욱 더 송곳 하나 꽂을 곳 없는 가난한 삶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들이 많습니다. 마음으로나마 날마다 좋은날을 염원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날마다 좋은날’은 ‘벽암록’에 수록된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스님의 유명한 공안입니다. 스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15일 이전은 묻지 않겠다. 그러니 15일 이후에 대해서 말해보라.” 제자들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날마다 좋은날이다.” 스님께서 말한 ‘날마다 좋은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공안이니 평범한 말은 아닐 겁니다. 이 말 한마디를 깨치는 순간 붓다가 된 우리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올해 계묘(癸卯)년의 계(癸)는 물과 검은 색을, 묘(卯)는 토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올해를 검은 토끼해라고 합니다. 검은 토끼해라고 하니, 조금은 우울해집니다. 흰 토끼나 황금 토끼도 아니고 검은 토끼라니. 그럼에도 토끼의 의미에 남다른 희망을 걸어봅니다.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토끼나 혹은 사자를 우물에 빠뜨려 숲속의 짐승들을 살리는 토끼에서 볼 수 있듯이 토끼는 지혜로운 동물로 묘사됩니다. 동물세계에서는 다산(多産)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경전 속에 등장하는 토끼는 조금 다릅니다. 지혜를 넘어 수행자를 위해 자기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부처님 전생담인 ‘자따까’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선인이 숲속에서 수행하는데 큰 가뭄이 들어 산중 과실들이 다 말라버립니다. 그러자 선인은 너무 배가 고파 수행을 그만두고 마을로 내려가겠다고 합니다. 선인과 친했던 토끼는 큰 불을 피우고 그 속에 뛰어들어, 선인이 자신의 몸을 먹고 수행을 다 끝마치도록 돕습니다. ‘보살본연경’에도 선지식인 바라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토끼왕의 보시 이야기를 전합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운문 스님이 말씀하신 ‘날마다 좋은날’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매일 춤추며 놀자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날마다 좋은날은 현재와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매일 매일을 좋은날로 만들어 가자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어느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분별만하지 않으면 어느 날이든 좋지 않은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문제 아닐까요. 마음이 우울하면 화창한 날 또한 화창해서 우울하게 될 테니까요.

김형규 대표
김형규 대표

 

올해는 다른 해보다 유독 궂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궂은 날이 나쁜 날의 조건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고귀한 공덕을 지을 수 있는 좋은 날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올해 우리 모두 우산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요. 토끼처럼 자기 몸을 통째로 바치는 큰 보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세상을 밝혀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올 한 해 각자의 삶을 선행과 보시, 기도와 수행으로 채워가기를 제안합니다. 그 길에 법보신문과 공익법인 일일시호일이 함께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삶이 항상 날마다 좋은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