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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특집] 토끼와 불교

계 지키며 거룩한 보시공덕 쌓아올린 보살 화신

이상향·극락 꿈꾸게 하는 상서로운 동물
순결·평화로운 분위기, 여성·다산 상징해
달나라 토끼·별주부전, 본생경에서 전래

십이지신상 중 토끼. 만봉 스님 작품.
십이지신상 중 토끼. 만봉 스님 작품.

토끼의 해가 밝았다. 2023년 계묘년은 검은 토끼의 해다. 검은색을 의미하는 천간 계(癸)와 토끼를 의미하는 지지 묘(卯)가 만났다. 일찍이 동양에서 검은색과 토끼는 지혜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계묘년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토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꾀돌이다. 현실에서 토끼는 부드러운 털에 앙증맞은 체구의 초식동물로, 호랑이 등 육식동물을 피해 다니는 약자다. 하지만 설화에서 토끼는 주로 선한 동물이자 민첩하고 영민한 동물로 표현된다. 특히 ‘별주부전’ ‘호랑이에게 잡힌 토끼 이야기’ 등 옛이야기 속에서 특유의 지혜로움으로 꾀를 내 위험을 피하거나 우둔한 이를 골탕 먹이는 임기응변의 달인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토끼의 지능은 50으로 호랑이(45)·거북이(20)에 비해 높다.

그런가하면 상서로운 동물로 비춰지기도 했다. 조상들은 한낮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에는 삼족오(三足烏, 다리 셋 달린 까마귀)가 살고 있으며, 한밤중 마을을 은은히 비추는 달나라에는 천년을 사는 옥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생각했다. 달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 즉 극락으로 받아들여졌기에 토끼는 이상향을 꿈꾸게 하는 신비로운 동물로 인식됐다. 토끼 특유의 순결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강한 번식력은 여성과 다산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조선시대 왕비의 침소였던 창덕궁 대조전 굴뚝·경복궁 교태전 석련지 등에 토끼를 새겨 왕가의 대가 이어지길 서원했다.

조상들의 토끼사랑은 현대로 이어져 여러 대중매체에서 깜찍하고 꾀 많은 캐릭터로 각광받고 있다. ‘토끼 같은 자식’ ‘놀란 토끼 눈’ 등 토끼의 생김새와 관련한 우리말에서도 한국인들의 토끼에 대한 친숙함이 드러난다. 이런 애정은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경전에서 토끼는 주로 자신의 몸을 공양하는 헌신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담긴 경전 ‘본생경(本生經)’에 전해지는 ‘사사 자타카(Sasa-jātaka)’다. 부처님은 옛날 한 숲속에서 토끼로 태어나 원숭이·수달·들개와 사이좋게 지냈다. 토끼는 동물 친구들에게 계율과 보살, 보시의 공덕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석천이 나그네의 모습으로 동물들 앞에 나타나자 원숭이·수달·들개는 각각 먹을 것을 구해와 나그네에게 공양을 올렸다. 하지만 토끼는 평소 먹던 풀을 공양으로 올릴 수 없었고, 결국 화톳불을 피운 뒤 몸을 던져 나그네에게 보시하게 된다. 제석천은 이에 감동해 토끼를 구한 뒤 진심으로 보시하려는 마음을 칭찬하며 달에 토끼의 모습을 새겨 귀감으로 삼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당나라 현장 스님이 인도에서 경전을 가져온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위진남북조시대 양나라 보창 스님이 불전 속 비유·전생담을 편찬한 ‘경률이상(經律異相)’ 등에 실리며 민간에 전해졌다. 

또 오늘날 소설로 정착한 ‘별주부전(토끼전)’은 ‘본생경’의 ‘원숭이 왕의 전생이야기’를 근원으로 한다. 한 원숭이가 강가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는데, 강에는 악어 한 쌍이 살고 있었다. 새끼를 밴 악어 아내는 기운차게 돌아다니는 원숭이를 보고 그의 심장이 먹고 싶었다. 이에 남편 악어는 원숭이를 찾아가 “강 건너편에서 맛있는 열매를 대접하겠다”며 꾀어낸다. 원숭이는 남편 악어와 함께 강을 건넜고, 아내 악어를 본 뒤 속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도망가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냈다. 원숭이는 “나는 온갖 진귀한 열매를 먹었기에 내 심장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고 귀하다”며 “누가 노릴지 몰라 집을 벗어날 때에는 심장을 숨겨 놓는다”고 말했다. 그 말에 속은 악어는 원숭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줬다.

이 이야기는 거북이가 토끼의 간을 용왕의 약으로 쓰고자 용궁으로 데려왔으나 ‘간을 연못에 씻어 꺼내놓았다’며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벗어난 토끼와 흡사하다.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며 한자로 번역될 때 악어와 원숭이가 자라와 원숭이, 혹은 용과 원숭이로 서술됐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토끼와 거북이로 주인공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이 ‘삼국사기 열전(列傳)’의 ‘김유신 전’에서 확인된다. 

별주부전은 토끼의 재치와 거북이, 용왕의 우둔함이 계층 간 불만이 심화되던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투영되며 ‘판소리수궁가’로 불리는 등 사랑받았다. 이 영향으로 한국 사찰에서는 자라나 거북이의 등에 탄 토끼가 묘사된 벽화나 부도, 석상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양산 통도사 명부전과 수원 팔달사, 정취암 응진전 등의 벽화가 대표적이다. 해남 미황사 부도의 상대석면 등에도 거북이 등에 실려 용궁으로 가는 토끼 모습이 묘사돼 있다. 

또 서울 화계사, 순천 선암사, 김제 금산사, 여수 흥국사 등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토끼들을 볼 수 있다. 서울 화계사 나한전에서는 꼬리를 늘어뜨린 백호에게 담뱃대를 전달하는 토끼가 그려졌다. 순천 선암사 원통전 출입문에는 둥그런 달 속에서 두 마리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으며 김제 금산사 보제루에는 한 쌍의 토끼가 건물 부재를 받치고 있다. 여수 흥국사 대웅전 축대 위에는 돌을 깎아 만든 토끼 상이 놓여 있다.

2022 임인년은 전염병,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2023 계묘년은 순결하고 지혜로운 토끼의 기운을 받아 행운·행복이 껑충 뛰어오르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663호 / 2023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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