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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해석 벗어나 경론으로 드러낸 반야묘지

  • 출판
  • 입력 2023.01.09 14:17
  • 수정 2023.01.09 17:21
  • 호수 1664
  • 댓글 0

보리수 금강경
지홍법상 스님 지음
문연 / 920쪽 
5만5000원

수많은 경전과 논서 중심으로 금강경 미묘한 이치 풀어내
“금강경 이해가 중요…천만번 읽더라도 모르면 공덕 없어”

중국 선사들의 견해에서 벗어나 ‘금강경’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법상 스님의 해석은 ‘금강경’의 참된 가치를 새롭게 보여준다. 
중국 선사들의 견해에서 벗어나 ‘금강경’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법상 스님의 해석은 ‘금강경’의 참된 가치를 새롭게 보여준다. 

‘금강경’은 예나 지금이나 불교를 대표하는 경전이다. 조계종과 태고종 등 많은 종단에서 근본으로 삼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이며, 가장 널리 독송되는 불교경전이기도 하다. ‘금강경’은 여느 경전과 달리 스님과 불교학자만 해설서를 쓰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안목으로 경전을 풀어낸다. 시인, 소설가, 과학자, 법률가, 사회활동가, 투자가, 예술가, 의사, 방송PD 심지어는 기독교 성직자까지도 해설서를 펴냈다. ‘금강경’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열린 구조의 경전이라는 특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전에는 어땠을까. 조선 초 함허득통 스님이 부대사, 육조혜능, 규봉종밀, 예장종경, 야보도천, 다섯 명의 주석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엮은 ‘금강경오가해설의’에서 보듯 선의 입장에서 ‘금강경’을 풀이하는 게 큰 흐름이었다.

김해 정암사 주지 지홍법상 스님의 ‘보리수 금강경’은 이런 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스님은 경전을 보는 이가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틀에 박힌 사고를 꼽는다. 대부분 ‘금강경’ 해설서가 중국 선사들의 언설에 갇혔다고 보고 한계를 지적한다. 중국 선사들 견해는 그들의 견해이지 옳은 답이 될 수 없으며, 수백 년이 지난 지금과는 생뚱맞을 정도로 거리가 멀다는 것. ‘경의 답은 경에 있다’는 법상 스님은 선사들 해석을 무조건 배제하지는 않되 경전과 논서들을 중심으로 미묘한 이치를 풀어낸다.

일자무식이었던 혜능 스님이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구절을 듣고 깨우쳤다는 일화에 대해서도 사뭇 비판적이다. 이때부터 ‘응무소주이생기심’이 마치 ‘금강경’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폐단 아닌 폐단을 낳게 됐다는 것이다. 선종 제5조 홍인 스님이 법을 전함에 있어서 법답게 전하지 못하고 한밤중을 틈타 남몰래 법을 전했다고 하는 것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경전을 공부하지 않아도 성인의 가르침을 체득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혜능 스님의 우상화로 치달려 끝내 ‘육조어록’도 아닌 ‘육조단경’을 만들어냈다는 것. 부처님 말씀만 경이지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경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 펴낸 전국 100여개 사찰 130여개의 주련에 대해 상세히 해설한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 590수의 게송을 조명함으로써 나고 죽음이 없는 도리를 노래한 ‘불교 재의례 게송’ 등 저서에서 알 수 있듯 법상 스님의 불교 이해는 매우 깊고 넓다. 이러한 특징은 이번 ‘금강경’ 강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스님은 ‘금강’에 대한 의미부터 새롭게 풀이한다. 흔히 ‘금강’하면 아주 단단해 파괴되지 않는 쇠를 떠올리지만 이는 금강을 억지로 끼워 맞춰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지 실재 금강은 ‘여래장’을 일컫는다고 설명한다. 여래장은 곧 마음이므로 불성, 법성, 영지 등등으로 나타내는데 우리 모두는 금강과 같이 견고해 무너지지 않는 청정한 보리심인 금강보장(金剛寶藏)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들었다’는 ‘여시아문(如是我聞)’ 해석도 흥미롭다. 이치에 맞아 전혀 그릇됨이 없기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의미의 여시(如是)는 기존의 그릇된 관념을 타파하는 파사(破邪)에 해당한다. 아문(我聞)은 자신이 직접 부처님께 진리의 말씀을 들었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현정(顯正)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여시아문이 곧 파사현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별도로 사전이나 다른 경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세한 주석을 달고 있다. 덕분에 한 장 한 장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금강경’이 마음에 머무른다. 이는 법상 스님의 경전 공부법이기도 하다.

“‘금강경’을 한문으로 독송할지 한글로 독송할지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문 ‘금강경’을 백번 읽는 것보다 한글 ‘금강경’ 한번 읽는 게 더 의미 있습니다. ‘금강경’은 읽어서 공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읽어서 깨우쳐야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경전은 부적이 아닙니다. 천번 만번 읽더라도 이해되지 않으면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스님은 경전을 공부하는 비법으로 ‘자주 보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 듯 펼치고 또 펼치다 보면 향 싼 종이에 향내가 나듯 자연스레 ‘금강경’이 된다는 것이다. ‘보리수 금강경’은 그릇된 관념을 깨뜨려 참 자유인의 길로 이르게 하는 친절하고 정통한 안내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64호 / 2023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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